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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인도네시아 교민 400여 명 상대로 ‘불완전판매’ 의혹

인도네시아 교민 이아무개씨는 2년 전 자카르타에 있는 하나은행 A지점을 방문했다. 

“하나은행 상품 중 이율이 괜찮은 거 있나요?”(이씨)

“이게 요즘 잘 나갑니다. 이자도 10%대고 1년간 돈을 예치해 놓으면, 5년간 보험 혜택도 줍니다.”(하나은행 직원)

“보험인가요? 전 보험 필요 없는데….”(이씨)

“국영 보험사가 보장하는 건데, 그냥 예금이라고 생각하세요. 투자상품 아니고, 예금입니다.”(하나은행 직원)

현지 직원 말만 믿고 이씨는 2억원을 은행에 맡겼다. 2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원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불완전판매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다.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인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고객 400여 명은 2016년부터 제이에스 프로텍시(JS Proteksi)라는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 은행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슈랑스 방식으로 판매된 이 상품은 인도네시아 국영 보험사 지와스라야(Jiwasraya)가 기획한 상품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지점. 사진 속 SNS문자에서 하나은행 직원은 고객에게 “이 상품은 투자상품이 아니다(Bukan). 확실하다(Ini pasti)”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 시사저널 송창섭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지점. 사진 속 SNS문자에서 하나은행 직원은 고객에게 “이 상품은 투자상품이 아니다(Bukan). 확실하다(Ini pasti)”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 시사저널 송창섭

 인니 보험사, 유동성 위기로 원금 반환 못 해 

상품 만기일은 지난해 10월과 12월이었다. 당연히 만기 도래 후 약속대로 고객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8일부터 지와스라야가 약속한 날짜에 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영 보험사임에도 불구하고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고객들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은 현재 지와스라야의 유동성 및 회계부정을 면밀히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이 이 회사의 부실을 인정할 경우, 또 다른 국영 금융사의 신용도에도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와스라야는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의 보험사로 운영자산만 40조원에 이른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타붕안 느가라 은행(BTN)·라크얏 인도네시아 은행(BRI) 등 인도네시아계 은행을 비롯해 ANZ·QNB·빅토리아 인터내셔널·스탠다드 차타드 등 대형 은행들이 이 상품을 팔았으며, 한국계 은행으로는 하나은행 인니 법인이 유일하게 판매했다.   문제는 상품 판매에 적극 나섰던 하나은행이 정작 사태가 나자, 나 몰라라 한다는 데 있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은행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 중 교민들의 신뢰가 가장 높았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합쳐지면서 거래금액 규모도 한국계 은행 중 가장 많았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있는 하나은행 본사에서도 해외 진출 성공사례로 이 은행을 많이 홍보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 교민들은 하나은행이 제대로 상품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는 불완전판매에 나섰다는 것이다. 피해자 박지현씨는 “창구 직원과 마케팅 직원이 상품을 설명하면서 ‘예금이며 5년간 보험 혜택도 받는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상품 판매에 있어 하나은행 직원이 아니라 지와스라야 직원으로 추정되는 판매직들이 동원됐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교민 김아무개씨는 “분명 계약 당시 하나은행 로고가 박힌 명함을 받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지와스라야 직원이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최근 이 직원과 고객이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 자료를 입수했다. 자료에는 고객이 투자상품 아니냐고 묻자 “투자상품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Bukan. Ini Pasti)”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교민들이 많이 찾는 현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을 보며 분노를 느낀다”면서 “모든 거래를 중단하는 것은 물론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싶은 심정”이라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계 은행이면서도 교민들에게 상품을 팔면서 최소한의 한국어 자료나 설명도 없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 피해자 이아람씨는 “교민들 대부분이 현지어에 익숙하지 않아 해당 상품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국영 보험사 상품이지만 하나은행의 예금처럼 당연히 예금자 보호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나銀, “우리에게 법적 책임 없다”

이 상품의 전체 판매 수는 1만7721개다. 하나은행은 이 중 2360개를 팔았다. 인도네시아 현지인에게는 1139개, 교민에게는 474개가 팔렸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우리 교민들이 맡긴 원금과 이자만 5720억 루피아(약 454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교민들은 “인도네시아 금융권에 지난해 1분기부터 지와스라야 재정이 불안정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도 문제를 따져보지 않고 상품판매에만 열을 올린 것은 분명 하나은행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하나은행은 문제를 제기하는 고객들에게 분명한 해명 없이 올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원금을 지급하는 데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안내문을 보내 “현 사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미온적 태도로 일관할 이유가 없으며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현재 상황에서 만기 경과 고객에게 은행이 원금을 대신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지금도 하나은행은 “이 모든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니며, 법적 근거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현지 법인장(은행장)은 임기를 끝마치고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져 사태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하나은행 관계자는 “솔직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지와스라야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금융당국 감사를 통해 회계부정이 발생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들어서는 불완전판매로 보이는 또 다른 잘못이 터져 파장이 일고 있다. 교민 한아무개씨는 “지와스라야의 상품 소개 자료에 보면, 중도해지 페널티가 7.5%였는데, 하나은행 인니 법인에서는 10%라고 했고 유인물에도 10%라고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해자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만기 상환에 차질을 빚었는데도 하나은행은 판매를 계속했으며, 만기가 된 고객에게는 1년 연장을 권유했다”며 하나은행을 맹비난했다. 피해자들은 청와대 신문고를 비롯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감독기관에 관련 사실을 적극 알리며 피해자 구제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 한국계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는 데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지에 지점을 설치할 때 해당 국가 금융당국에 우리 쪽이 언제든 감사를 나갈 수 있다고 말할 뿐, 통상적인 관리·감독 업무는 해당 국가 책임”이라면서 “우리 금융당국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한국 본사 쪽에 관련 사태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일 뿐”이라고 말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해외 진출에 나서 교민들을 상대로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법적 보호에 있어선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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