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北도 ‘총알배송 시대’…30여 개 온라인 쇼핑몰 성행
평양에도 온라인 쇼핑과 배달업이 본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당과 군부 고위층 인사나 부유층이 사는 평양 중심가를 주축으로 컴퓨터 인트라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전자상거래와 이를 뒷받침하는 배달 사업이 출현해 인기리에 영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국내외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평양과 지방 대도시에 30여 개의 온라인 쇼핑몰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가입해 상거래를 하고 있는 기관·기업소가 25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3년 전엔 2개에 불과했던 온라인 쇼핑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얘기다.
최초의 북한 온라인 쇼핑몰 ‘옥류’는 2015년부터 내각 봉사총국이 운영하는 체제로 스마트폰과 연계해 주문과 결제·배달까지 가능케 해 주는 서비스다. 또 같은 해 시작한 ‘만물상’에서는 의류와 식료품 및 가정용품은 물론이고 전자제품과 보건·의약품까지 취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평양의 대형 백화점들도 온라인 쇼핑몰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대북 매체들이 전하고 있다. 중구역 경흥동에 위치한 ‘평양 제1백화점’의 경우 식료품과 의류·주방용품·화장품·전자기기·의약품 등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상품을 살 수 있다는 게 RFA가 전한 내용이다. 인트라넷을 활용한 이 쇼핑몰은 무료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2015년 ‘옥류’ 첫선…스마트폰으로 주문
북한에서 ‘전자 상점’으로 불리는 온라인 쇼핑의 확산은 배달업의 등장과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한류의 영향으로 치킨 배달 형태인 ‘닭튀기’(튀김의 북한식 표현)가 대동강맥주와 함께 제공돼 치맥 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평양과 지방 주요 도시를 연결해 주는 초보적 형태의 택배업도 생겨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그동안 평양 최대의 쇼핑몰인 광복거리중심(센터)이나 고려호텔 상점 등을 찾던 특권층 주부들의 쇼핑 방식도 디지털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뉴타운 격인 여명거리나 은하과학자거리 등에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가 속속 문을 열고 영업에 들어가고 있는 데다 이들 상점 대부분이 새로운 방식의 쇼핑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공급 부족에다 전기마저 끊겨 어둡고 썰렁한 모습을 보이던 말뿐인 예전의 ‘백화점’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북한이 대외선전 차원에서 내보내는 영상을 살펴보면 서방국가의 마트나 대형몰에서 볼 수 있는 쇼핑카트와 전산 관리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관련한 북한 매체들의 보도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쇼핑몰 ‘옥류’가 등장했을 때인 2015년 4월 조선중앙통신은 “전자결제카드로 운영되는 전자상업 봉사체계”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고객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상품을 검색해 주문한 뒤 전자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이 도입됐음을 알린 것이다. 중앙통신은 주민들이 상품 생산 측과 직접 연결돼 “질 좋은 상품들을 손쉽게 눅은(값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고 상품배송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쇼핑몰이 이름을 알리면서 상품 생산자들 사이에서 원가와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활발하다는 대목은 마치 자본주의 시장의 유통 공급망을 언급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듬해 3월에는 핵 개발 덕으로 국방비를 민생에 돌릴 수 있게 됐다며 경제·핵 병진노선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약속은 5년 넘게 지켜지지 않았고 대북제재를 자초해 주민들의 삶은 점점 고단해졌다. 결국 지난 3월 병진노선의 사실상 포기를 선언하고 경제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의 특권층 챙기기는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2500만 명의 북한 인구 중 노동당 간부나 군 고위 인사 등 핵심 인사는 6만 명 정도라는 게 우리 당국의 분석이다. 이를 4인 가족 기준으로 따져보면 인구의 대략 1%인 24만 명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이들은 김정은이 체제 선전과 특권층 환심 사기 차원에서 새로 건설한 위락시설에서 여가를 즐기고, 부유층의 전유물인 골프와 승마·스키도 체험한다. 평양 문수물놀이장에서는 우리의 워터파크와 같은 시설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평양 외곽과 지방의 일반 주민들은 식량부족을 걱정해야 하는 궁핍한 삶에 시달리고 있다. 형편이 조금 나은 주민들의 경우 달러의 맛에 빠져 “미국 할아버지(100달러에 새겨진 벤저민 플랭클린을 지칭)가 최고”라고 여긴다. 중국 할아버지(100위안에 그려진 마오쩌둥)에 이어 ‘수령님’(북한 화폐의 김일성을 지칭)이 제일 마지막이란 비아냥이다. 북한이 선전하는 화려한 쇼핑몰의 이면에는 장마당에서 생계를 찾아야 하는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숨겨져 있다.
일부 특권층만 이용하는 서비스
북한이 내세우는 쇼핑몰도 결국 극소수 특권층 평양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유통망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새로 생긴 몇몇 체제 선전성 시설에 국한되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김정은이 직접 지시해 공사에 들어가 모든 역량을 집중해 건설을 마친 뒤 준공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해 ‘인민생활 향상’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방식이란 말이다. 평양판 ‘금수저’로 불리는 일부 특권층을 겨냥한 행보다.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도 실제 우리와 같은 수준의 모바일 이용이나 결제 시스템이 작동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이 통제된 폐쇄적인 북한 체제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분히 외부세계의 눈을 의식한 시범적 사업이거나 선전성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온라인 쇼핑과 배달업의 등장이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장은 일부 계층에 한정된 상황일 수 있지만 이런 현상이 확산되면서 결국 북한 체제의 변화나 주민들의 의식 변동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장마당에서 유통업 등으로 자본을 축적한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노동당보다 장마당’이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온 북한 주민들이 온라인 쇼핑과 배달업의 확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