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유가족 담은 사진전 여는 김은주 작가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건 70년 전 제주에서다. 1948년 4월3일부터 7년 동안 제주도민의 10분의 1에 달하는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무고한 일반 주민이었다. 마을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고, 잠에서 깨 집 밖으로 나온 주민들은 총살당했다. “살려줍서” 하며 매달려도 군은 마구잡이로 총질했다. 건장한 청년들은 밭을 갈러 가거나 등교하다가도 군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남은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진 가족을 기다렸다.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한 참혹했던 ‘제주 4·3 사건’ 당시의 분위기다.
70년이 지나서야 유가족들은 가족이 사라진 현장을 찾았다. 남편, 아버지, 혹은 동생은 아침에 인사하며 집을 나갔지만 시간이 흘러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유골이 발견된 건 산 중턱이거나 해변 한복판에서였다. 현장에 선 유가족들은 사라진 자의 온기를 느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앵글을 바라보고 있는 유가족들의 얼굴엔 복잡한 감정이 서려있었다.
이 같은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제주에서 열린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4·3 희생자유족회가 주관하는 사진전 ‘다시, 봄’은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12월17일부터 열린다. 제주4·3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인물(portrait) 사진 104점이 걸렸다. 내년 1월31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회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건 국내서 민중항쟁 및 민간인 학살 사건 다큐사진 전문의 독특한 길을 걷고 있는 김은주 작가다. 김 작가는 2011년 광주에서 5·18 광주 민중항쟁 희생자들의 어머니를 담은 ‘여기, 여기…오월 어머니’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2015년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광주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오월 어머니회’의 사진을 찍었다.
1980년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민중혁명 때 군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어머니 모임이다. 김 작가가 연 세 전시 모두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피해 유가족을 다뤘다. 그는 현재 노근리 사건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카메라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사진을 찍은 유가족들 대부분이 피해 현장에 처음 가봤다고 했다. 가족이 죽은 곳에 발을 디디기 쉽지 않았을 텐데.
“무너지는 분들이 많았다. 그 장소에 가면 급하게 사진을 찍지 않고 정리할 시간을 드린다. 그런데도 감정이 조절 안 되는 분이 있다. 어느 남자 유족 한 분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우시더라. 얼마나 억울하면 저렇게 우실까 싶었다.”
굳이 유족을 피해 장소로 데려간 이유는 뭐였나.
“사진에선 장소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던 장소로 되돌아가 지난날 겪었던 괴로운 시간들을 호출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의 표정엔 절절한 그리움이나 여러 감정이 묻어난다. 나는 유족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과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상처를 치유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했다.”
104점의 사진 중에서 애착이 가는 사진이 있다면.
“바닷가에서 찍은 이임규 할머니 사진이다. 70년 전 남편이 친구 만나러 나갔는데 그 길이 마지막이 됐다더라. 그런데 이미 뱃속엔 아이가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사라졌다. 딸은 올해 딱 일흔이 돼 얼마 전에 칠순잔치를 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바닷가를 찾은 그날따라 파도가 굉장히 높게 쳤다. 출렁이는 바다가 할머니께서 그동안 겪었던 험난한 역경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세 번의 전시 모두 국가에 희생당한 피해자 유족들을 다뤘다. 계기가 있다면.
“처음엔 정치적 이슈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광주 오월 어머니집’을 알게 된 이후로 바뀌었다. 그곳이 5·18 민주화운동과 깊숙이 관련된 단체인 줄도 몰랐었다. 하지만 어머니 한 분 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너무 가슴 아팠다. 그냥 살아도 삶 자체는 쉽지 않은데, 이 분들은 아무 이유 없이 가족들을 잃었다. 그것도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었다. 너무 터무니없지 않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더라. 그렇게 1년 동안 사진 찍게 해달라고 쫓아다녔다. 그때부터 해 온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작가의 작품에선 인물들이 모두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더라. 의도된 연출인가.
“기억해 달라는 의미이다. 사진 속 인물이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면, 그는 카메라나 작가를 넘어 관객들과 눈을 마주하는 게 된다. 관객이 그 눈 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어내면 잔상이 크게 남는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다시, 봄’이다. 무슨 의미인가.
“‘다시’는 영어로 ‘again(다시)’가 될 수 있고, 한자로 ‘多時(긴 시간)’가 될 수도 있다. ‘봄’은 ‘보다’라는 의미도 있고, 계절의 봄이란 의미도 있다. 긴 시간 이후에 다시 봄을 기다린다는 의미, 혹은 긴 시간이었지만 다시 아픔을 마주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제주도의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제주의 봄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아픔을 지닌 시간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이 다시 봄을 기다리며 이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하길 바란다.”
일반 사진작가와 달리 왜 하필이면 이 어려운 다큐사진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건가. 그것도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초등학교 5학년 때(1980년) 성당에서 몰래 보여준 영상이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때 시민들이 죽임을 당한 충격적인 이미지들이었고, 계속해서 잠재돼 있었나 보다. 사진을 전공하고 어머니에 관한 주제로 광주 오월어머니들을 만나게 되면서 같은 연장선에서 노근리 사건, 아르헨티나 오월광장 어머니, 그리고 지금 제주 4·3까지 사진작업이 이어지게 된 거다. 내년에는 고양시에 있는 금정굴과 관련된 유족을 사진 기록으로 담을 예정이다. 굳이 다큐작업이라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사진으로 기록해야할 사건들이 많아서 계속 이 길을 가야한다는 책임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