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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고위임원 인적 네트워크, 대한민국 정·관·재계 모두에 걸쳐 다 뻗어 있다”

2016년 12월28일 아침 출근길 찬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서초동 삼성사옥의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이날 새벽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특검에 긴급 체포되는 장면이 아침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이규철 특검보는 “문 전 장관이 삼성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은 12월29일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소환해 15시간에 걸쳐 강도 높은 밤샘 조사를 했다. 특검 측은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 등의 줄소환을 예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해 특검의 수사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12월6일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8개 대기업 총수가 증인으로 불려 나왔지만, 특검은 사실상 삼성만을 정조준하고 있다. ‘최순실 특검’이 아니라 ‘삼성 특검’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삼성의 정보력’이 가져다준 부메랑이다. 국정원도 능가한다는 삼성의 막강한 정보력은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의 핵심인 최순실이란 존재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보다 빨리 최순실에게 접근했고, 누구보다 많이 최순실과 그 주변을 지원했다. 권력의 ‘핵심’을 파악하고 접근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삼성다운 행보였다. ‘국정원(국가정보원) 위에 삼정원(삼성정보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보력을 자랑하는 삼성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시사저널 포토

“삼성 정보의 핵심 역할 고위임원들이 담당”

 

“삼성그룹이 정보를 위해서 그룹사 모든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정보 보고를 올리게 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삼성 정보의 힘은 ‘양’보다는 ‘질’에 있다. 즉 고급정보만 엄격히 관리되는 것이다. 미래전략실(미전실) 직원은 200명 정도지만, 그중에서 실제 정보를 수집하는 핵심 인원은 40명 남짓이다. 계열사별로 대관(對官)팀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 정보력은 미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역시 삼성 정보의 핵심 역할은 고위임원들이 담당한다. 그들의 탄탄한 네트워크(인맥)가 대한민국 정·관·재계 모두에 걸쳐 뻗어 있다.”

미전실 출신 삼성그룹 한 계열사 간부의 얘기다. 시사저널이 이번 기획 취재를 위해 접촉한 다양한 삼성 전·현직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삼성의 최순실 정보 포착과 접근 과정은 대충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그룹 내 미전실을 비롯한 정보·대관 담당자들이 최순실의 존재에 대해 은밀하게 나도는 얘기들을 윗선에 보고한다. 윗선에서는 최씨의 존재를 주목하며 보다 상세한 정보를 수집할 것을 지시한다. 정보·대관 담당자들은 자신이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서 최씨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을 올린다. 고급 정보망을 가진 고위임원들도 정·관계 고위직들을 통해서 최씨의 존재를 크로스 체킹 한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전실에서 최씨의 중요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 대책을 마련한다.’

 

삼성의 정보 시스템은 크게 그룹 내 △계열사 대외협력·정보팀 △대외협력단 △임원(중역) 정보 시스템 △미래전략실 정보팀  등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역시 핵심은 미전실이다. 약 40명으로 구성된 그룹 정보팀은 부사장·부장·차장이 한 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이 국회·정부부처·사정기관들을 책임진다. 인력은 4~5년 단위로 교체되는데, 공채 직원이 대다수다. 다만 일부 팀장은 경찰대 출신 간부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한다.

 

한때 가장 방대한 조직을 자랑했던 것이 대외협력단이다. 최대 4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위상이 컸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계열사 내 대외협력조직을 확대하면서 지금은 100명 내외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사실상 일선 정보를 저인망식으로 수집하는 최하단부가 바로 대외협력단이다.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독일 지원을 선두에서 진두지휘한 곳도 삼성전자 대외협력단이었다. 검찰과 특검 수사 대상의 핵심인 박상진 사장도 공식 직함은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다. 정무감각을 가진 계열사 내 일선 부서 차장·부장으로 구성된 대외협력단은 삼성 정보 시스템의 뿌리와 같다. 매주 1회씩 정기적으로 동향을 각 정보라인 간사에게 보고하면, 이들이 관련 내용을 취합해 그룹 정보팀으로 보내는 형식이다.

 

삼성 고위임원(중역) 정보 시스템은 다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조다. 국내 한 IT 기업 대외협력팀장은 “삼성에서 임원 자리에 오르면 주요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이 의무시된다”며 “보고된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가 인사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고위임원이니만큼 그들이 가진 탄탄한 인맥은 고급정보로 돌아온다. 사실상 이런 정보들이 삼성의 막강 정보력을 상징한다는 분석들이 많다.

 

그룹 내 각 계열사에도 대외협력·정보·대관팀이 구성돼 있다.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는 주재원들은 국내 조직과는 다르게 각자 정기적으로 해외 동향을 파악해 GLEX라는 사내 정보 시스템에  보내고 있다. 삼성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을 국정원보다 먼저 파악했다는 말이 나온 것도 해외 소식을 취합하는 인력은 물론, 취급 속도 면에서 단연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또 미전실 및 각 계열사 홍보팀에서는 언론사 기자들을 통해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실상 삼성은 그룹 내 정보 담당 인력이 국내 대기업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맡은 분야 또한 청와대·국회 등 권력기관부터 사정기관과 각 정부부처, 심지어 지역 NGO(비정부기구)를 담당하는 인력까지 있다. 이들은 ‘싱글스’라고 불리는 삼성 내부 전산망을 통해 정보를 상부에 보고하며, 이는 고스란히 그룹 정보팀으로 모인다.

 

긴급체포된 문형표 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6년 12월2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 정보력은 돈의 힘, ‘삼성 장학생’ 곳곳에”

 

사정기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삼성 정보력은 돈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소위 ‘삼성 장학생’이 정·관계 요소요소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네트워크는 고급정보가 필요할 때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더해 “또 하나는 수적인 파워다. 생각해 보라. 국내 기업치고, BH(청와대) 따로, 검찰 따로, 국회 따로, 담당을 다 두는 곳이 삼성 말고 어디 있겠나.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동문·기수로 끈끈하게 연결된 엘리트들이다”라고 덧붙였다.

 

삼성 정보력의 또 다른 원천은 기업 특유의 상명하달 구조와 협업 체제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 계열사에서 정보·대관을 담당하는 한 간부는 “미전실에 비하면 계열사 대관팀은 기능이 약한 편이다. 우리 정보는 미전실에 바로 보고되지도 않는다”면서 “그렇다고 삼성이 40명 남짓의 미전실 인원만으로 정보 업무를 다 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미전실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필요시 각 계열사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다. 가령 미전실의 정보 수집 업무에 삼성전자 정보·대관팀이 협업하면 인원은 배가된다”고 밝혔다.

 

충성도가 높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난 인재를 배치하는 인적 구성도 삼성 정보력을 한층 강화시키는 요인이다. 한 금융권 정보팀 관계자는 “정보 또는 대외협력 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조직 내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정보팀으로 발령받은 후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삼성에서 정보 담당 업무는 고위직으로 가는 승진을 보장받았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흔히들 삼성을 가리켜 ‘관리의 대명사’라고 부른다. 시스템에 의해 모든 의사결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을 잘 아는 인사들은 시스템(관리) 경영을 세분화시켜 기획·분석·정보로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 가지 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면서 삼성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삼성에 있어서 ‘정보’ 업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다.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전 회장, 이건희 회장 등 역대 삼성그룹 총수들이 세세한 사항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일본 도쿄 선언,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같은 큰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체계화된 정보 시스템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한 금융권 대외협력담당 부장은 “무엇보다 정보를 대하는 경영진의 마인드가 다르다. 일반 기업 경영진은 일선 정보라인에서 취합한 정보를 증권가 찌라시(사설 정보지) 정도로 여기는 반면, 삼성은 이를 어떻게든 자사에 유리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정보 수집에 대한 경영진의 무한 신뢰가 있기에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그룹 미전실 내 ‘정보팀’은 일종의 ‘별동대’와 같다. 기획·인사·재무·홍보 등 다른 미전실 직원들조차 이들 업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실상 미전실을 총괄 운영하는 장충기 사장이 직접 관리하는 체제다. 1954년생인 장 사장은 마산중·부산고·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에는 1978년 입사했다. 삼성물산에서 경공업품 개발업무를 맡은 뒤부터는 줄곧 비서실에서만 근무했다. 1994년 비서실 기획담당 이사보로 승진한 장 사장은 이후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바뀌는 과정에서 기획홍보와 함께 정보라인 관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삼성이 이토록 강력한 정보라인을 구축하게 된 것은  비서실이 막강한 힘을 갖기 시작한 1970년대 말부터다. 1978년 8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그룹 비서실장을 맡은 소병해 실장은 강력한 추진력과 엄격한 조직 관리로 비서실의 기능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건희전(傳)》을 쓴 심정택씨(삼성그룹 대외협력단 근무)는 “일반 직원들은 사번·본봉·수당·세금 등이 명기되나 예전부터 비서실 정보담당 인력은 내역 없이 현찰로 급여를 수령하는데 일반 직원들보다 많았다. 인사 고과도 역량과 실적 평가 부문에서 상위 평가를 받으면서 초고속 승진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보니 정보 체계를 아는 이도 그룹 내에 많지 않다. 다만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명칭이 바뀔 때마다 조직 구성도 동시에 조금씩 개편됐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크로스 체크를 통해 정보의 순도를 높인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 점에서 삼성과 다른 대기업 간에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한 대기업 정보담당 임원은 “1970년대 비서실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 놓은 데이터베이스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고 해도 다른 기업들이 쉽게 쫓아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 시사저널 포토

고위직 자녀들 채용하는 ‘음서제’ 논란도

 

이와 같은 방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서도 삼성은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한 전직 사정기관 관계자는 “삼성은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으며, 정보를 분석하는 노하우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자체 보유한 인물 데이터베이스(DB)와 연결돼 있다. “삼성이 구축한 정보 데이터베이스에 키워드를 집어넣고 검색하면 A라는 특정 인물이 과거 언제 어떤 자리에서 어떠한 발언을 했는지가 다 나온다. 때문에 간혹 정보기관에서도 삼성 쪽에 키워드를 검색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있다.” 한 공공기관 정보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런 시스템에 더해 고급 인맥을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그중에는 ‘음서제’도 거론된다. 사실 이 논란은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삼성 내에서 직원들 간 이에 대한 얘기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흔히 밖에서 알려지기로는 직원들이 처음 삼성에 입사할 때 가족관계와 주변 인맥을 세세하게 다 적어 넣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디테일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드물다. 그보다는 아예 고위직의 자녀들을 공채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특채로 회사에 입사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고위직은 당연히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가 된다”고 전했다.

 

삼성의 정보력은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다른 기업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2016년 초 삼성 미전실에 근무하는 한 대학 선배와 저녁식사를 가졌다. 매년 2~3차례씩 만나는 사이인 두 사람은 이날 A씨 회사에 대한 검찰 조사 가능성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A씨는 삼성 선배로부터 “조만간 너희 그룹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내사에 들어갈 거라는 소문이 돈다. 잘 준비해라”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 선배의 말은 사실이 됐다. A씨는 “대관 업무를 하는 대외협력 담당 몇 명이 근무하는 우리 회사와 삼성의 정보력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정보담당 직원은 “삼성은 기업 정보 수집의 교과서와 같다. 정보를 대하는 태도부터 조사·분석 능력까지 모든 것에서 삼성의 정보 시스템은 사실상 재계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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