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팀, ‘뇌물 대가성 입증’ 자신…박근혜·최순실 ‘뇌물죄 적용’ 향해 재계 수사 급피치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러나 미래전략실 소속의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 그리고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일단 영장청구가 보류됐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와 횡령, 국회 위증 등이다.
당초 지난 주말(1월14~15일) 사이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삼성 경영진에 대한 영장청구가 이번 주로 미뤄지면서 특검 안팎에서는 영장 청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팀)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를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수사는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특검의 칼끝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두 사람이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업들 자금 출연의 ‘대가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다. 수사선상에는 삼성·롯데·SK·CJ·현대차·KT·포스코 등 국내 내로라할 대기업들이 올라 있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출연했고, 청와대 특혜 시비에 휘말려 있다는 것이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다.
이재용 부회장 혐의 입증 증거 확보 자신감
이 가운데서도 특검팀은 그동안 삼성그룹 수사에 주력해 왔다. 수사 대상 기업 가운데 최씨 일가에 대한 자금 지원 규모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우선 미르·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대기업 가운데 최대 액수인 204억원을 내놨다. 이외에도 최씨 일가에게 전달하거나, 약속한 지원금은 모두 480억원을 웃돈다. 이 가운데 특검팀은 430억원을 뇌물공여 액수로 산정해 이 부회장에게 적용했다. 특검팀은 그 대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삼성의 편을 들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순실씨 일가에 수백억원대 자금 지원을 직접 지시했거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다. 결국 이 부회장의 혐의가 소명된다고 보고, 여기에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가 더해졌다. 특검팀은 대가성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가 상당히 진전됐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 특검팀은 앞서 입수한 최씨의 ‘제2 태블릿PC’를 통해 최씨가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인 황성수 삼성전자 대외협력스포츠기획팀장(전무)과 주고받은 다수의 이메일을 확보했다. 여기엔 최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 내역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외에도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를 입증할 핵심적인 증거들을 다수 보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롯데·CJ·부영 등으로 수사 확대 조짐
총수 소환은 기업 수사의 마무리 수순이다. 이를 감안하면, 향후 특검팀의 칼끝이 이제 다른 기업으로 향할 것이 분명하다. 삼성의 다음 차례로는 SK그룹과 롯데그룹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먼저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박 대통령 사이에 ‘사면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7월24일 박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사면 청탁이 이뤄졌고, 그 결과 최 회장이 8·15 특별사면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특검팀은 이와 관련해 2015년 8월10일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최 회장과 그룹 내 대관업무를 총괄해 온 김영태 SK 부회장(당시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면회 과정에서 ‘암호대화’를 나눈 녹취록을 확보했다. 녹취록에는 김 부회장이 최 회장에게 “왕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는 말이 담겨 있다. 특검팀은 이 가운데 ‘왕회장’은 박 대통령을, ‘귀국’은 최 회장의 사면을, ‘숙제’는 그에 대한 대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왕회장이 내준 숙제’는 최 회장 사면 이후 SK그룹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특검팀은 최 회장 사면 과정에서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이 개입된 것으로 판단, 최근 출국금지를 내린 상태다.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사장은 그룹의 대관 업무를 오랜 기간 담당해 온 인물이다.
롯데그룹의 경우는 면세점 인허가 특혜 의혹이 수사 대상이다. 롯데그룹은 2015년 11월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월드타워점 사업권을 잃고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3월 면세점 승인 요건을 완화하는 정책 방안을 발표하고, 관세청이 4월 서울 시내면세점 4곳 신규 설치를 발표했다. 특히 당시 공고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새로 면세점에 입찰할 때 감점을 준다’는 정부의 제도 개선안이 빠져 있었다. 이로 인해 롯데그룹은 면세점 사업 재개 기회를 얻었다. 특검팀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특검팀은 그 대가로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의 자금 지원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K스포츠재단은 롯데그룹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6월, 출연금 전액을 반환했다. 그러나 뇌물죄에서는 금품을 달라고 요구했거나 주기로 약속한 것만으로도 실제로 주고받은 경우와 다름없이 처벌된다. 돈을 줬다가 돌려받아도 마찬가지다. 특검팀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이어, 최근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를 출국금지했다.
“수사 대상 기업들 대가성 입증 자료는 충분”
CJ그룹도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이재현 회장과 손경식 회장을 출국금지한 바 있다. 2016년 8월 특별사면이 미르·K스포츠 재단 기금 출연과 차은택씨 주도의 K컬처밸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운 것과 연관성이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특검팀은 지난해 6월 CJ 주최로 프랑스에서 열린 한류콘서트 현장에서의 박 대통령과 손 회장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이 회장의 사면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 회장의 특혜 사면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개입한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최근 부영그룹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최근 출국금지를 당하면서다. 당초 부영그룹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공소장에 사명(社名)이 거론되지 않았다. 그런 부영그룹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K스포츠재단의 회의록이 공개되면서다. 여기에는 이 회장이 지난해 2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만난 자리에서 K스포츠재단에 대한 자금 출연 대가로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수사가 일단락되는 대로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전망”이라며 “수사 대상 기업들의 대가성을 입증할 자료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