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미 금리 인상으로 한국 경제 진퇴양난…일단 금리 동결로 추이 관망할 듯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2월14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한국 경제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단 15일 국내 주가지수는 소폭 올랐다. 시장 예상보다 빠른 미국의 긴축 움직임에 경계심이 살아나기도 했지만, 시장 충격은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언급한 내년 세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 미국과의 금리 차이 축소와 가계부채 부담 탓에 한국은행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12월14일 미국 FOMC 회의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기준금리 인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미 지난 6월부터 금리 인상 움직임이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이래 미국 통화정책 긴축 속도에 관심이 집중됐다. 연준이 내년 기준금리를 세 차례 올릴 수 있다고 언급하자, 코스피는 오전 내내 약세를 보였다. 곧바로 세 차례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부각되면서 오후에 하락폭을 만회했다.
연준 위원 상당수가 FOMC 종료 후 공개된 점도표에서 내년 총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이 예상하는 적정 기준금리 수준을 점으로 찍어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 9월 점도표에서는 내년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연준 위원이 많았다. 금리 인상 속도 변화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연준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미국 실업률은 4.6%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 물가 상승 기대감도 올라갔다. 민간소비지출 디플레이터(가격수정계수)는 1.4%로, 지난해 0.4%에 비해 1%포인트 높아졌다. 민간소비지출 디플레이터란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 디플레이터로, 연준이 물가 상승의 기준으로 삼는 지수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FOMC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경제가 계속 전진하고 회복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반영해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내년 금리 상승 속도, 올해보다 더딜 수도
하지만 연준 위원들의 판단과 달리 시장 참여자 다수는 내년 3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리를 올릴 때 미국은 올해 네 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올해 마지막 FOMC 회의를 마칠 때까지 금리는 한 번 오르는 데 그쳤다. 이에 내년 금리 상승 속도는 올해보다 더딜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내년 미국 금리 인상 속도를 가늠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행보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새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맞춰 연준은 긴축 속도를 조절할 듯하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힘든 형편이다. 옐런 의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강조하는 재정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옐런 의장은 “실업률이 5%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완전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재정정책이 필요하진 않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달러 강세도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이 엇갈리면서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통화 강세로 인해 수출 감소와 제조업 업황 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난번 금리를 인상한 뒤 달러 강세가 이어지자 지난 3월 연준과 백악관 모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데 이번 FOMC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 뒤엔 달러 인덱스가 103선을 돌파했다. 2003년 이후 최고치다. 달러 인덱스는 유로화·엔화·파운드화·스위스 프랑 등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낸다.
미국과 달리 다른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통화 완화를 연장하고 있다. 미국은 긴축에 돌입하고, 유럽은 완화를 유지할 경우 달러 강세를 피하기 어렵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2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내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경기 회복세가 나타나면 입장을 바꿀 수 있다지만, 가능성은 낮다. 내년 유럽에는 대형 정치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우선 내년 3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내년 3월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해 탈퇴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4~5월에는 프랑스 대선이 치러진다.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있다. 유럽 내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고 금융시장이 흔들릴 경우, ECB는 완화정책을 확대할 수 있다.
가계부채와 기업 경기침체 부담 혼재
자신감에 넘치는 미국 정부와 달리 한국의 경제 당국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한국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와 기업 경기침체 부담이 혼재된 탓에 정책의 방향성을 잡기 어렵다. 금리 인상 등 긴축 정책을 도입하자니 경기침체가 걸리고, 반대로 기준금리를 그냥 두자니 미국과의 금리차가 사라져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화 유출 염려가 커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미국 FOMC 회의와 같은 날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역시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말 가계신용(일반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나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진 빚을 모두 합해 일컫는 말) 잔액은 1295조8000억원이다. 가계신용 잔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 규모다. 11월에만 은행의 가계대출이 8조8000억원 늘었다. 가계부채가 줄어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금리를 오히려 낮춰야 할 형편인데, 그러자니 또 미국과 금리차가 줄어든다. 실제 이번 미국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25bps(1bp=0.01%)로 줄었다. 만약 연준 위원들 예상대로 미국이 내년 3차례에 걸쳐 금리를 올리면 국가신용도에서 열위에 있는 한국이 미국보다 오히려 금리가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부채와 경기침체가 걱정이다. 이미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 2% 남짓의 현재 성장률마저 건설투자에 몰려 있다. 주택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는 추세에선 내년도 건설경기에 기대할 여지도 낮아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한국은행이 내년 4월까지는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금통위 회의 후 언급한 대로 설령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없어지는 상황이 온다 해도 일정기간은 견딜 수 있다고 예상하는 탓이다. 전병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내년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현재로선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상당히 작다. 하지만 당장 1월에 나올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면 어쩔 수 없이 국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