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1년을 돌아보다
빨간 우의(雨衣)를 입은 남자가 농민 고 백남기씨를 가격했다는 일명 ‘빨간 우의 가격설’은 지난해 11월 일베를 통해 시작됐다. 한 일베회원이 ‘물대포 할배 코뼈가 부러진 이유.gif'라는 제목을 달아 뉴스타파의 민중총궐기대회 시위 인터넷 중계방송 장면을 일부 잘라 올린 것이다. 이 영상을 본 일부 일베 회원들은 "빨간 우의를 입은 남성이 백씨를 일부러 무릎과 주먹으로 때렸다", "80년대에 자살유발조도 있었는데 철저히 밝혀내면 좌파들 까발려질 좋은 기회", "1990년 안팎에 줄줄이 분신자살할 때 자살조 운영조는 지금 엄청 출세했다"며 시민단체들이 ’시체팔이‘를 해 대정부 투쟁 강도를 높이려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여당 의원들이 가세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백씨가 당시 중태에 빠진 이유가 경찰의 물대포 직사 때문이 아닌 시위대의 폭행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동영상이 약간 모호하지만 빨간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쓰러져있는 백씨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찍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 ‘빨간우의 가격설’ 들고나온 새누리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일베에서 떠도는 영상을 직접 상영하고, “지금 다쳐서 끌려가는 노인(백씨)을 빨간 우의를 입은 청년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 가서 확 몸으로 덮친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같은 달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그 어르신(백씨)이 쓰러져 있는데, 거기에 어떤 시위대 중에 한 명이 몸으로 덮쳐서 주먹으로 가격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의혹 제기에 대해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인사청문회직후인 지난해 11월19일 논평을 내 “새누리당 의원들이 ‘시위대 폭행설’을 유포하고 있다”며 “상식의 눈을 갖고 동영상을 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투쟁본부는 “빨간 우의를 입은 이는 백씨가 실려나오는데 경찰 당국이 또 다시 물대포를 쏠까봐 이를 막으려 한 것이며, 실제 그를 향해 날아오는 물대포를 막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반박했다.
‘빨간 우의 가격설’이 점차 확산되자 경찰이 직접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같은 정치권과 경찰의 반응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주장한 내용만을 근거로 직사 살수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민중총궐기 대회 보도가 왜곡∙편파∙불공정의 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故 백남기씨 부검 두고 ‘빨간 우의 가격설’ 재등장
‘빨간 우의 가격설’은 9월 백씨 사망 이후,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검찰의 부검영장 재청구에 법원은 부검 필요성을 소명한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면서, “종래 제기된 ‘살수차에 의한 충격’ 등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제3자에 의한 외력으로 인한 충격이 사망의 인과관계에 영향을 줬음을 밝히기 위함인지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사인 규명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부검을 신청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살수차에 의한 것인지 빨간 우의 남성에 의한 것인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부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9월26일에는 백씨를 모욕하는 기고문이 논란이 됐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정은이씨는 ‘백남기 사망-지긋지긋한 시체팔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면서 “물대포가 아닌 빨간 우의 남성 때문에 백남기 농민이 다쳤다”며 “왜 부검을 하지 않느냐. 불법 시위 참여자였기 때문에 사망은 정부 탓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성신여대 정외과 학생회가 사과문을 통해 “학생 개인의 의견”이라며 “유가족분들께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10월7일에는 보수단체들이 경찰에 ‘빨간 우의’를 수사 의뢰했다. 정의로운시민행동∙바른사회시민연대 등 보수 시민단체 10여곳은 “빨간 우의의 신원이 확보된다면 그가 사건 현장에서 백씨를 보호하고자 행동하였는지, 아니면 세간의 의혹처럼 고의적 테러를 통해 백씨를 사망에 이르도록 하였는지 최선을 다해 수사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밝혔다. 한 보수단체 대표는 “외상에 의해 이뤄진 거라고 판명이 된다면, 그건 분명히 빨간 옷 입은 사람과 관계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빨간 우의 남성 인적사항이 파악돼 조사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일반교통방해 등 2가지 혐의로 해당 남성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기소 의견으로 넘겼는데 사건이 종결됐는지 확인은 못했다”고 말했다.
10월13일에는 검찰이 빨간 우의에 의한 상해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감에서 “검찰이 빨간 우의 남성 가격설을 내세워 백씨의 시신 부검영장을 청구하고 집행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자 김수남 검찰총장은 “‘빨간 우의’는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 중 하나로, 그래서 영장에 포함된 것이지 예단하는 게 아니다”라며 “사법수사로 사법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사망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것”이라 답했다.
‘빨간 우의’,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으로 밝혀져
1년 가까이 ‘빨간 우의’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문제의 ‘빨간 우의’가 모습을 드러냈다. 10월19일 자신을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던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으로 소개한 손 아무개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그날 경찰은 물대포를 직사했고 백남기씨가 쓰러졌다. 저는 쓰러진 분에게까지 계속 직사하는 상황에서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 위해 달려갔다”고 설명했다. 손씨는 “쏟아지는 경찰의 직사 물대포를 등으로 막으려 했다. 그런데 제 등으로 쏟아지는 물대포를 성인인 저마저 순식간에 쓰러트릴 정도로 강해서 넘어졌다. 양손은 아스팔트를 짚었다”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해명했다.
‘빨간 우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손씨는 왜 논란이 처음 제기된 지 1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서 해명을 한 걸까. 손씨는 기자회견에서 “그간 일부의 주장은 너무 엉터리라 굳이 대응해 국가폭력 살인이라는 초점을 흐리기 바라지 않아 침묵했지만 국회의원과 보수언론들이 상황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져 입장을 밝히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그 존재가 드러나 경찰의 백씨 상해 사건을 둘러싼 조직적 사건 은폐 논란을 불러 일으킨 민중총궐기 당시 상황속보 속엔 경찰과 검찰이 백남기씨의 부검 이유 중 하나로 든 '빨간 우의 가격설‘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