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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9월1~2일 진행…‘정부, 유가족 동향 파악에 주력’ 지적

“세월호가 기운 뒤 3층 안내데스크가 있는 곳으로 나왔고, 장인어른을 찾기 위해 CCTV를 확인했다. 헬기가 도착한 소리가 들릴 때까지 CCTV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CCTV 영상 편집·삭제 가능성 제기

 

해경과 해군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두 달 후인 2014년 6월 세월호 선내에서 CCTV 저장장치(DVR)를 찾았다. 여기에 담긴 영상은 오전 8시48분까지였다. 그런데 세월호 생존 탑승자인 강병기씨는 정부가 복원한 영상보다 더 오랫동안 CCTV가 작동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헬기 도착 시간이 오전 9시27분이었기 때문에 40분가량의 추가 영상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생존 탑승객도 “CCTV가 9시48분 이후에도 작동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지난 9월1~2일 양일간 진행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제3차 청문회에서는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침몰 원인 규명, 참사 당시 및 이후 정부 대응의 적정성, 참사 당시 및 이후 언론 보도의 공정·적정성, 선체 인양 과정의 문제점 및 선체 인양 후 보존 등의 주제로 진행된 이번 청문회에서는 가장 먼저 정부의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생존 탑승객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영상 일부가 편집돼 삭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류희인 세월호 특조 위원은 “정부가 참사 두 달이 지나서야 DVR을 확보했다. 그 중요성에 비해 수거 과정과 수거 이후 해군의 조치 기록이 각종 문서에 나타나지 않는 의혹사항이 있다”면서 CCTV 존재 자체를 정부가 감추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9월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9월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구조 초기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에어포켓 확보 노력이 실효가 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상갑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청문회에서 “시뮬레이션 결과 공기 주입을 할 당시 세월호에는 희생자들과 관계 있는 에어포켓이 없었다”며 “공기를 넣어봐야 천장에 조금 들어가는 정도”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에어포켓 공기 주입에 사용한 기구가 구조에 쓰이는 것이 아닌 공업용 소형 공기압축기였다는 데 있다.

 

박종운 안전사회 소위원회 위원장은 “구조구난의 골든타임에 정부가 시행한 에어포켓 공기 주입은 소형 컴프레서 등을 사용했다”며 “수색 실패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사기행각”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을 했던 언딘의 협력사인 금호수중개발 대표 박승도씨 역시 “당시 공기 주입을 위해 준비한 장치는 ‘DENYO-180’으로 이는 암석 등을 들어올리는 공업용 장치”라고 증언했다. 정부가 실제 생존자를 살리기 위한 방법보다 보여주기식 구조에 매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前 KBS 국장 “홍보수석 전화, 명백한 압력”

 

구조작업에 동원된 민간 잠수부들에게는 세월호 선체 도면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해경은 해경대로 해군은 해군대로 하라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구조하라 하고, 다른 파트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라면서 “컨트롤타워가 없어 중구난방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구조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역시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증언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해경이 구조상황을 브리핑했지만 신뢰도는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 실제 참사 당일 브리핑에는 구조작업에 160여 명이 투입됐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도 이를 믿는 유가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정부가 유가족들의 동향 파악에 주력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청문회에서 공개된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중앙구조본부 정보반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가족대표 13명이 구성됐고, 이 중 밀양송전탑 강성 시위전담자도 있는 것으로 추정돼 향후 보상 등 협상에서 주도적 발언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나와 있다.

 

청문회에서는 보도통제에 대한 자세한 정황도 공개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를 책임졌던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길환영 전 KBS 사장은 러닝타임 20분 이내에 대통령 보도를 다루게 하는 원칙이 있었다”면서 “길 전 사장이 세월호 참사 다음 날인 4월17일 KBS 9시뉴스에 13번째로 배치돼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참사 현장 방문 기사를 더 앞쪽에 배치할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길 전 사장은 참사 일주일 뒤인 4월23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기사가 31번째 뉴스로 배치돼 있었는데 이 뉴스도 앞으로 올려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국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부터 보도와 관련해 전화를 4차례 받았다”면서 “보도국장에게 (이정현) 홍보수석이 전화해서 아이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명백한 압력이다”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침몰 현장 © 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침몰 현장 © 해양경찰청 제공

 

정부 “청문회 법적 근거 없다”

 

청문회가 한창일 당시에도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막바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17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특검 의결! 세월호 선체조사 보장!”이라는 함성이 또다시 울려 퍼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특조위의 활동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단식농성 중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해수부는 “특조위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조사활동 기간이 종료됐기 때문에 청문회의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청문회 자체를 부정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특조위 기간을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 다만 이 기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위원회의 의결로 활동 기간을 6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2015년 1월1일 시행됐는데, 이석태 위원장 등 특조위원들이 임명되며 특조위가 모습을 갖춘 것은 3월5일이다. 시행령이 제정되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것은 5월11일이고, 지난해 말 조사 활동기한을 한 차례 연장했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1일을 시작으로 보고 특조위 기한이 지난 6월30일 끝났다고 보고 있다. 반면 야당과 유가족들은 특조위가 실질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시점을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점을 놓고 봤을 때 내년 2월까지가 존속 기한이며, 시행령이 제정된 시점이 지난해 5월11일이기 때문에 최소한 올해 11월까지가 활동 기한이라는 것이다. 

 

야당과 유족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정부의 대처는 단호했다. 특조위에 파견됐던 공무원들은 원대 복귀했고, 예산 역시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청문회가 제대로 준비될 리 없었다. 

 

개최 장소부터 문제였다. 청문회는 대체로 국회 제3회의장에서 개최된다. 특조위는 지난 1차 청문회 때부터 제3회의장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부당했다. “국회 내 회의장은 국회가 주관하는 인사청문회 및 공청회, 원내 교섭단체가 국회의 운영을 위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만 쓸 수 있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이와 관련해 특조위 관계자는 “특조위 청문회는 국회가 만든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 청문회와 특조위 청문회의 주최자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꼬투리 잡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8월2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백남기농민대책위원회 등의 관계자들이 세월호 진상규명 당론 채택과 특별법 개정 및 백남기 청문회 실시를 촉구하며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청문회를 방해하기 위해 정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특조위는 “지난 8월5일 청문회 개최 장소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으로 정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신청도 하고 사용승인도 받았으며, 10일에는 사용료도 완납하는 등 대관을 위한 모든 절차를 마쳤다. 하지만 바로 그다음 날인 11일 사학연금공단 측은 취소 입장을 표명했다”면서 “특조위가 공단 담당자와 통화하는 가운데 교육부에서 공단으로, 공단에서 공단 서울회관으로 압력이 행사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어렵게 열린 청문회지만 증인과 참고인이 무더기 불참하면서 ‘반쪽 청문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강신명 전 경찰청장, 길환영 전 KBS 대표이사 등 증인 39명과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병수 언딘 이사 등 참고인 29명이 채택됐지만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정부가 청문회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굳이 청문회에 참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유가족들의 단식은 지금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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