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 증강현실 세계, 마약 같은 중독성에 빠질 것…빈익빈 부익부 사회적 격차 더 커질 수도

TV를 켠다. 먼 곳 소식을 듣는다. 여행 채널을 돌려본다. 마치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가우디의 건축물’부터 ‘콜로라도 스프링스 신들의 정원’까지 생생하게 본 것 같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직접 다녀왔다는 여행객을 만나거나 먼 곳의 사건 현장에 있었던 누구를 만나면, 그 가슴 떨림과 오감의 전율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하지만 미래 세계에서는 무엇을 먹어보지 않고도, 어디를 가보지 않고도 가슴 떨린 오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시각·청각에서 촉각·미각·후각으로 증강

 

2030년 J는 만물에 연결(IoE·Internet of Everything)된 일상을 구가 중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오물의 찌릿한 냄새가 역겨워지면 바로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의 국화인 ‘바닷가재발톱꽃’의 향기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밤 결제한 스트리밍 향기 서비스인 ‘퍼퓸 플릭스’에서 바닷가재발톱꽃과 자스민 향을 결제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J는 실시간으로 은은하게 전달되어 의복에도 향기가 배고, 초속 3m의 바람에서도 반경 30cm 안에서는 향기가 전달되는 실시간 향기 서비스에 가입한 상태이다. 오늘 출근길이 유난히 가뿐하다. 예전 증강현실은 시각 정보의 증강 수준이었다. 특수한 안경을 쓰면 눈앞에 안 보이던 정보를 보여주는 서비스가 고작이다. 하지만 2030년에는 시청각을 넘어 촉각·미각·후각을 증강하고, 2040년에는 의식(텔레파시)까지 증강할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인 J씨가 매일 점심시간마다 ‘뭘 먹을까’ 고민한다면? 모든 게 인터넷으로 다 연결된 상태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식을 불러와 시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30년, 물리 공간(physical space)에서 축지법 같은 사물의 이동은 실현되기 어렵다. 그렇지만 현실보다 실감 나는 ‘증강현실’ 서비스로 맛을 미리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맛을 자극하는 미각, 시각, 그리고 후각을 느끼는 뇌파 연동 증강현실 기술이 구현되기 때문이다. 증강현실 기술은 2010년대에 1세대인 4D 스크린에서 주로 시각을 증강시켰다. 2020년대에는 2세대인 HMD를 통해 보다 정밀한 포켓몬고(특정 장소에서 팝업되는 수준에서 온몸을 전율하는 자극으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2030년대의 증강현실 기술은 3세대인 뇌파 연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실제보다 더 짜릿하다. 많은 시민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증강현실에 취하게 될 것이다. 단세포적이었던 과거 증강현실 기술과 달리 2030년의 증강현실은 몰입감과 상호작용이 커서 신종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가지게 된다. 

 

© 일러스트 정재환


J는 요즘 슈퍼맨이 된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소개되는 증강 센서는 신체가 감지하는 쾌감보다 더 간지럽고 달콤하며 짜릿하다. 뇌와 바로 연결된 증강현실은 몽롱한 수준이 아니라, 꿈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주변에는 증강된 인간(human augmentation·첨단 장치를 이용해 인간의 신체와 인지 능력을 향상)이 곳곳에 등장한다. 증강된 인간은 ‘스마트스킨’을 부착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형수술을 통해 원하는 신체를 만들었다면, 스마트스킨은 상황에 맞게 부풀어 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할 때는 이두박근과 삼두박근 등이 부풀어 오른다. 이들 근육은 생체 근육과 함께 보조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스마트스킨은 걸을 때, 달릴 때, 수영할 때 등 상황에 적합한 사이즈와 표면으로 자동 성형된다. 

 

미래 세계에서 J는 단지 악수를 했을 뿐인데도, 손바닥의 촉각 감지기가 활성화된 순간 상대방의 전자명함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촉각과 시각 정보가 결합된 형태의 서비스인 것이다. 반면, 스마트스킨과 브레인, 그리고 웨어러블 장비 등을 구입하지 못한 시민은 정보의 비대칭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2030년에도 디지털 격차와 소외감은 존재한다. 온통 환영(幻影)뿐인 세상이지만, 누가 더 정확하고 수준 높은 정보를 실세계에 투영해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증강된 오감은 삶의 풍미를 다르게 한다. 누구는 더 많이 느끼고 체험하고 누구는 소외된다. 

 

 

‘아날로그 윤리, 보다 더 강화되어야’

 

인간으로서 ‘나’의 일상은 경험세계에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직감한다. ‘머리가 찌뿌드드한지, 몸과 마음이 가뿐한지, 야식 때문에 속이 더부룩한지, 눈이 퉁퉁 부었는지’에 따라 아침의 기분이 결정된다. 증강된 오감은 인간의 체험의 결을 달리해 행복과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증강된 신체는 실제 물건을 드는 힘과 달리는 속도, 그리고 지구력을 높여준다. 이 모든 경험과 물리 능력은 경제력이 뒷받침될 때 소비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증강 슈트를 입고 다양한 정보를 실제 경험하듯이 체험하며 자란 아이는 여느 사교육을 받은 아이보다 미래 시대에 훨씬 더 적합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증강현실의 세계는 이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아이언맨 3》(2013), 《킹스맨》(2015) 등을 통해 다양한 증강된 미래를 선보였다. 가끔 우리는 가위손처럼 능수능란하게 손이 움직여주거나 텔레파시를 가진 초능력자처럼 눈을 감으면 과거와 미래, 또는 먼 거리의 일이 또렷하게 보이기를 기도한다. 그런 내가 되는 날,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처럼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 다짐한다. 미래에는 이용자 감각을 자극하는 ‘디지로그(digilog·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으로 보는 가상세계)’, 평소 애용하는 머그컵에 디지털 기억을 더하는 ‘PSS(Product Service System·제품과 서비스의 결합으로 보는 증강현실)’, 그리고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을 결합한 ‘O2O(online to offline)’ 등 증강현실을 응용한 서비스가 범람하게 된다. 이 기술에 혼을 불어넣는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간만이 고유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현실과 비슷한 가상을 만들지만, 이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인간 중심적 가치로 구성되어야 하는 숙제가 남겨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증강윤리’란 ‘아날로그 윤리가 디지털 세계에서도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요구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인공 환경은 보다 유려한 인간애가 넘쳐나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