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한국에서 강원도 속초와 양양, 고성, 양구 등 일부 강원도 동해안에서만 포켓몬고가 되던 때가 있었다. 포켓몬을 잡겠다는 사람들은 동해로 몰려들었고 해당 지자체들은 이 특수한 게임 열풍을 관광특수로 연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예를 들어 양구군 같은 곳이 대표적이었다. 포켓몬고 게임을 군내 관광지랑 연계한 시티투어버스를 운행했다. 양구군이 제시한 투어의 주제는 ‘양구에서 포켓몬 트레이너 되기’였다.
포켓몬고는 그 위치가 꽤 독특한 게임이다. 일단 그 어떤 게임보다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AR(증강현실)을 통해 나의 현실 위치가 게임 내 위치와 연동된다. 실제로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동네의 땅을 실제로 밟고 그 위를 걸어야 한다. 차로 다닐 때는 못보고 지나가는 것들은 포켓몬고를 하면서 재발견된다. 게임의 재미가 현실의 장소와 연결돼 때로는 ‘여기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때로는 지적 욕구와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게임은 ‘이단아’처럼 구박받는다. 하지만 만약 게임이 현실에서 공공성을 실현한다면 아마 강원도 양구 같은 모습을 띠게 될 것 같다.
지자체와의 공생이라는 흐름을 더 거세게 만들기 위해 포켓몬고 개발업체인 나이앤틱(Niantic)은 최근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다. 나이앤틱은 2월23일 포켓몬고를 지방자치단체가 관광 진흥과 지역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포켓몬고를 하며 지역 일대를 돌 수 있는 ‘지도’용 탬플릿을 지자체에 제공하고 관련 매뉴얼도 무료로 배포한다. 지도를 만들고 싶은 지자체는 포켓몬고 웹사이트에서 ‘지자체 문의’를 통해 자신의 고장을 뽐내며 자랑할 수 있는 ‘지도만들기’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한 뒤에는 매뉴얼에 따라 지도를 제작한 다음 나이앤틱의 확인을 받은 뒤 게임 내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방 활성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나이앤틱
그동안 포켓몬고에서 쓰인 지도는 지자체가 추천하고 싶은 지역 등이 담긴 지도에 포켓스톱이나 체육관의 위치를 표시하면서 장소에 대한 해설 등을 게재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수동적인 지도였다. 반면 이번 나이앤틱의 정책은 지도의 당사자인 지자체가 직접 제작할 수 있게 했다. 지역에 대한 소개, 추천 루트 등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조치의 첫 수혜자는 일본 교토와 후쿠시마의 지자체가 될 예정이다.
포켓몬고가 인기몰이를 하는 게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까. 이 게임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이 지점에 대한 논의는 종종 벌어졌다. 포켓몬고 종주국인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지방 도시에서 관심을 보였다. 예를 들어 돗토리현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모습이 변하는 돗토리 해안 사구가 나름 명소인데 히라이 신지 돗토리현지사는 돗토리 사구를 ‘게임해방구’로 선포하면서 바깥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행정 당국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기류도 존재했다. 일본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저널’은 관광협회 간부의 말을 인용해 “포켓몬고가 관광객을 불러올 요소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경제적 효과로 연결될 지 생각한다면 의문이다. 포켓몬 트레이너 대부분은 스마트폰 한대만 들고 지역을 찾아간다. 현지에서 놀다 가는 것도 없고 숙박이 없는 당일 손님이 많다”며 과대평가에 한 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번 나이앤틱의 정책은 이런 고민을 덜어줄 수도 있다. 지방 활성화에 그동안 관망하던 게임 창조주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유기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포켓몬고가 지방으로 사람을 모으려면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점이 필요했다. 하나는 포켓몬의 출현 빈도의 도농 격차다. 마치 빈부격차처럼 포켓몬 격차가 있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대도시에 비해 지방의 포켓몬 출현은 체감적으로 낮다. 우리의 경우도 서울/부산과 다른 지역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가 사용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이런 지적에 관해 나이앤틱은 “지방의 포켓몬 출현 빈도를 올리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해 게임 사용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실제로 나이앤틱은 동일본 대지진과 구마모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구마모토 등 네 개 현의 관광객 유치에 협력하겠다며 포켓몬 출현 빈도를 조정했다.
아이템 등을 얻을 수 있는 포켓스톱에도 격차가 있다. 서울 강남에서는 한 자리에서 동시에 세 개의 포켓스톱을 활성화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하다. 반면 지방에서는 포켓스톱의 수가 급감하고 포켓스탑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걷다가 지칠 정도다. 도시에 있으면 아이템을 무료로 제공받으며 포켓몬을 포획해 레벨을 올리기 수월한데 굳이 지방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나이앤틱은 이 부분도 적극적으로 수정할 계획을 갖고 있다.
특정 지역만을 위한 이벤트도 열릴 듯
지방에 사람을 모을만한 게임 콘텐츠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예를 들어 서울을 보자. 한강 근처에서는 ‘잉어킹’ 같은 물에서 사는 포켓몬이 자주 등장한다. 잉어킹을 많이 잡아서 진화시키고 싶은 사람은 한강으로 모여든다. 망나뇽 등 레어템이 등장하는 곳은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때로 이런 건 어떨까.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는 이런 포켓몬이 잡힌다’는 이벤트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번 제기됐지만 실현되진 않았다. 하지만 개발사의 적극 개입 의지로 이런 지역 활성화 방법도 예상해 볼 수 있게 됐다. ‘입수가 어려운 전설의 포켓몬을 경북 영주에 가면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사용자들이 영주로 내려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넘치는 이벤트가 존재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실제로 일본 지자체들은 지난해부터 나이앤틱에 자기 고장 특유의 캐릭터를 포켓몬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 묻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미뤄왔던 그들의 요청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할 때가 왔다고 나이앤틱은 판단하고 있다.
나이앤틱의 무라이 세츠토 대표는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포켓몬은 실제로 그 위치를 방문하지 않으면 플레이할 수 없다. 그래서 명승고적이나 자연에 둘러싸인 숨은 명소를 발견하면서 그 지역의 역사와 매력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이런 ‘리얼 월드’ 게임에 협력하거나 활용하려는 지자체가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포켓몬고가 제시한 정책을 보고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지자체 및 주변 환경과 공생해 가겠다”는 포켓몬고의 철학은 비단 일본 내에서만 해당하지 않는다. 무라이 대표는 “해외에서도 문의가 있었다. 일단 포켓몬고의 변화로 성공 경험을 쌓고 그것을 해외에서 전개하면 재미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역의 매력을 담고 싶은 우리 지자체들도 미리 준비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