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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실패’ 논쟁으로 불타오르는 일본열도

6월 초 일본 민진당의 ‘싸움닭’ 야마노이 가즈노리(山井和則) 의원은 60대의 혼자 사는 여성으로부터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는 내용을 적은 엽서를 받았다고 공개하며, 야당의 아베노믹스 공세에 기름을 부었다. 익명으로 보내진 이 엽서는 지금 일본인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 중에 있는 아베노믹스를 더욱 ‘뜨거운 감자’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과연 아베노믹스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표현대로 ‘메이지유신에 필적하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파이낸셜타임스의 표현처럼 ‘실현하는 데 있어 정치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공수표가 될 것인가. 그 심판은 1차적으로 7월10일의 참의원선거에서 일본 유권자들이 내려줄 것으로 보이고, 2차 심판은 엉뚱하게도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가 내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아베노믹스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트럼프노믹스’가 정면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결국 5월31일, 2017년 4월로 예정돼 있던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2019년 10월로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소비세를 10%로 올리기로 한 첫 시한은 2015년 10월이었지만 2017년 4월로 연기됐다가, 다시 2019년 10월로 미뤄졌다. 

 

야당이 그대로 있을 리가 없다. 아베 정부의 발표가 나온 5월31일 그날 즉시로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날 내각불신임안은 자민당·공명당의 연립정권과 극우세력인 오사카 유신회(おおさか維新會)의 의석 수에 밀려 반대다수(反對多數)로 부결됐다.

 

야당  “소비세율 못 올려…아베노믹스 실패”

 

아베 총리는 6월1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의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증세의 연기가 불가피했다고 말하며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소비세가 10%로 오르면 소비가 줄고 생산이 위축됨으로써 일본경제에 나쁜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였다.

 

 6월2일, 다시 국회(중의원)에서 소비세율 인상 연기와 아베노믹스의 시비를 가리기 위한 여야 간 공방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아베 총리는 한 술 더 떠서, 2020년도의 기초적 재정수지(프라이머리 밸런스)를 흑자로 전환시키겠다는 호언을 쏟아 냈다. 이는 2014년도 기준으로 1000조 엔이 넘는 일본의 국가채무를 다 털어내고 재정건전화를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베 총리는 또 2020년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전후 최대인 600조 엔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그랜드 플랜’을 내놓았다. 말하자면 아베노믹스의 팽창노선으로 ‘생산성 혁명’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아베노믹스에 가속도를 붙이려는 아베 총리의 욕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에 ‘스톱’을 걸려는 민진당·사민당·공산당·생활당 등 야당의 공세도 만만치는 않다. 야당 의원들은 소비세율을 못 올리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것 자체가 아베노믹스의 실패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명백한 경제 실정(失政)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베노믹스란 2012년 말 탄생한 아베 정권에 의해 지금까지 추진돼온 경제정책을 일컫고 있는데, 그 핵심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세 개의 화살(矢)’이다. ‘첫 번째 화살’은 일본의 중앙은행인 ‘니치긴(日銀)’의 협력을 얻어 추진되고 있는 금융정책이다. 이는 돈을 풀어 유동성을 완화시켜 엔저와 고주가(高株價)를 유도하고, 그로 인해 일본경제가 설비투자 증가와 수출증가로 이어지게 한다는 정책이다. 일본 국내외 경제전문가들로부터도 나름대로 성공한 정책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두 번째 화살’은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재정출동)으로,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공공사업 등에 정부의 돈을 사용하는 재정정책을 펼치고, 그를 통해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정책이었다. 이것은 단기적으론 재정확대를 가져오는 것이었지만 중기적으론 재정건전화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명확한 로드맵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늘어나는 사회보장 수요와 복지비 지출에 대한 마땅한 삭감책도 없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규제완화·구조조정·구조개혁·세제개혁·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체결 등으로 민간투자를 촉진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겠다는 성장전략이다. 그러나 규제완화는 그다지 진척이 없고, 여러 개혁엔 국민들로부터 고통을 나누겠다는 이해와 공감이 따라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아직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실패’를 주장하는 일본 민진당의 오카다 가쓰야 대표

 

아베 총리, 국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해

 

일본 국내외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반대하는 세력도 엄청나게 강하다. 이렇게 아베노믹스에 대한 의견과 시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낙관은 절대 금물이다. 지금부터 아베 총리의 정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는 셈이다. 먼저 아베 총리는 7월10일의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야당 4당(민진·사민·공산·생활당)과 시민연합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지가 1차 관문이다. 여기서 아베노믹스의 가속화냐, 후퇴냐가 결정될 것 같다.

 

다음으로 올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아베노믹스는 완전 붕괴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미국이 일본 등과 타협을 이룬 TPP에 대해서도 미국에 불리한 ‘바보 같은 협정’이라고 맹비난하며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의향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엔저를 유도해 일본의 수출산업을 키우는 정책이고 TPP를 성장전략의 핵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면, 트럼프의 경제정책(트럼프노믹스)도 ‘저달러’를 유도해 미국의 수출산업에 유리한 정책이고 TPP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아베노믹스와 트럼프노믹스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베 정권엔 악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낙선해도 아베노믹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일본경제는 물가가 내려도 개인소비가 정체돼 있는 상태이고, 생산도 정체되고 경제성장률은 제자리걸음(2~3%)이다. 닛케이평균주가도 오르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장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도 야당 측은 좀처럼 협조하려 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가 잘만 하면, 미 오바마 정권이 확대재정 정책과 양적완화로 미국경제를 살려낸 것처럼, 일본경제도 다시 살아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면 한국경제에도 뒤처지고, 최악의 경우 필리핀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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