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은-아베 정상회담 올가을 추진설

동북아에서 이단자 취급을 받고 있는 북한과 일본이 올가을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도 있다는 동향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 낮은 지지율로 고민하면서도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는 지지도 제고를 위한 대형 이벤트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정은도 시진핑 국가주석의 9월3일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외교적 고립감을 느낄 것이므로 강성대국의 그림자라도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일본의 경제 제재 해제와 지원을 얻기 위해 외교적 도박에 판돈을 걸 가능성이 있다.

먼저 7월 초 북한의 납치자 조사 활동 시한인 1년이 지나가는 와중에 일본 정부는 일부 해제했던 대북 제재를 복귀시키고 더욱 강한 제재까지 채택하겠다고 위협했다가 보류했다. 이를 전후해 양측 간 비공식 접촉이 빈발해졌고, 일본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몽골 정부가 중간에서 중개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과 아시아대양주 국장의 북한 접촉에 이어 아베의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NSC 사무국장이 울란바토르를 방문했고, 7월 말 이곳에서 일본 외무성 국장이 북한의 국방위 고위 관료와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설이 유포됐다.

물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8월11일 “아베 내각에 납치 문제 해결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므로 전력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아베 총리의 방북 같은 일은 없다”고 방북설을 부인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도 “북·일이 여러 경로로 접촉하고 있는 점은 알고 있고,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과연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에 큰 파문을 일으킬 북·일 정상회담이 올가을에 개최될 것인가.

정전협정 체결 62주년을 앞두고 7월30일 열린 제4차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 조선중앙통신연합

김정은과 아베의 계산

김정은의 대외 전략은 궁극적으로 세습독재 정권의 유지·강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전략과 동일 목표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권 유지에 긴요하다고 생각하는 핵 개발을 한·미·일뿐 아니라 중·러까지 반대하고 있고 제재마저 가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더구나 자신이 시진핑 주석의 집권 과정에서 3차 핵실험을 감행해 중국을 외교적 어려움에 빠뜨리게 한 것은 고려하지 않고, 시진핑 정부가 북한의 3대 세습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장성택 처형 이후 일정 부분 경제 제재를 가해오자 중국을 경원시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비록 시 주석이 7월 중순 옌볜 조선족자치주를 방문하고 김정은도 한국전 참전 중국인민지원군에 경의를 표시하는 등 북·중 지도부 간에 약간의 접근 움직임이 보이는가 했지만 이후 양국 간 외교적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국제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외교 초년생 김정은이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등 노련한 정상들 간 다자 무대에 서는 게 두려울 것이라는 점도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따라서 김정은이 시 주석의 초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아 북·중 간에 계속 불편한 관계가 이어질 때, 김정은이 외교적 고립 탈피를 위해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면 좋겠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천안함 폭침 이후 최악의 남북 관계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고,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가 강력한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않는 이상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전략적 인내’ 기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북한이 북·미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은 상당 부분 확보돼 있으나 경제 지원 획득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에게는 단기적으로 외교적 고립감을 떨쳐버리는 국제 흥행 효과가 있고 중·장기적으로 식민지 지배 배상금으로 1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지원을 받을 수도 있는 북·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전략이 매우 유혹적일 수 있다.

아베 총리 역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안보법안들을 강행처리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을 규합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성사시키려면 국민들의 관심을 따돌리고 지지율을 제고할 수 있는 대형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베노믹스는 약발이 떨어지고 있어 경제에서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는 어렵다. 따라서 온 국민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끌 수 있는 납치자 문제에서 이정표를 세울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동북아에서의 외교적 고립감을 불식하고 국민들의 지지도 이끌어내려 할 수 있다. 더구나 아베 담화에서 한국을 따돌린 여세를 몰아 정상회담을 통해 북·일 채널을 확보하면 한반도에 대한 관여권을 확보하고 일본의 위상도 강화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북·일 정상회담 앞에 놓인 장애물

북·일 양측 지도자들의 정상회담 개최 동기는 충일하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현실적인 제약이 만만치 않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베 담화에 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한·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고, 9월 초 베이징 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의 외교적 고립감이 상당히 완화된다면, 아베로서도 굳이 한·미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량 정권’인 북한과 정상회담까지 추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김정은은 납치자 문제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는 성의를 보이려면 이제까지 숨기거나 거짓말을 해온 것을 밝혀야 하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국제적인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일본 국민들의 대북 불신을 더 키울 수도 있다. 2002년 고이즈미 방북 이후 일본 국민들의 대북 인식이 악화된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북·일 양국의 외교적 고립감의 향방과 양측 간 배후 거래에서 아베 정부가 북한의 납치자 문제에 대한 성의 표명에 대해 얼마만큼의 경제적 지원으로 보상할 것인지가 결국 올해 안에 북·일 정상회담이 개최될지 여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크다.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국 정부는 소외감과 함께 일본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 정부가 남북 관계를 주도해 남북 관계가 먼저 정상화되고 개선된다면 이를 오히려 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북·일 관계 개선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 가능성을 줄여주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서는 남북 대화나 핵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주도적으로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한국 외교 목표 달성에 능동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자세를 갖는 게 현명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