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아베’ 시위 확산에도 ‘안보 법안’ 참의원 통과 밀어붙일 듯
아베 정권이 위기다. 최근 일본 전역에서는 안보 법안에 반대하는 ‘반(反)아베’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법안이 중의원 특별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한 7월15일과 16일 즈음 절정에 달했다. 2만5000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도쿄 국회 정문 앞에 모여 “헌법 9조를 지키자” “아베 정권의 폭주를 막자” “아베 정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구호를 외쳤다. 나고야·히로시마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및 자위대 행동 반경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안보 관련 11개 제·개정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센 가운데서도 아베 정권이 이를 강행 처리한 것을 두고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시위 열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일어난 ‘반(反)원전’ 시위 이상으로 뜨겁다. 미야자키 하야오,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지식인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140곳 이상의 지방 의회에서 안보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채택했고, 일본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도쿄변호사회·일본저널리스트협회 등 각종 단체에서 법안 강행 처리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다.
위기의 아베 정권 9월까지 첩첩산중
무엇보다 아베 정권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지지율이다. 현지 일본 언론이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인 끝에 30%대로 추락했다. 7월 들어서는 제2차 아베 정권 발족(2012년 12월) 이래 처음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지지한다’는 비율을 넘어섰다. 지난 7월18~19일, 친(親)정부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39.3%(이전 대비 6.8%포인트 하락), 비지지율은 52.6%(10.2%포인트 상승)였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승승장구하던 아베 정권이 이처럼 위기에 몰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6월4일 열렸던 ‘헌법심사회’였다. 이날 심사회에는 여야 각당이 추천한 헌법학자 3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여당 추천 인사를 포함한 헌법학자 3명 모두 “안보 관련 법안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해 세간에 충격을 안겨줬다. 헌법 해석을 무리하게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아베 정권의 꼼수가 점점 전면에 부각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 말에는 아베 총리를 추종하는 자민당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공부회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을 탄압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와 언론 통제 파문이 일었다. 일본 주요 언론은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땅에 떨어졌다”며 신랄하게 비판했고, 아베 정권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의 시선은 더욱 냉담해졌다.
아베의 1인 독주 체제가 형성돼 있는 자민당 내부에서도 정권 지지율 하락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때문에 오는 9월에 있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 대항마를 누구든 내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진정한 위기는, 그 위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 있다. 정권을 위기로 몰고 간 안보 관련 법안의 참의원 심의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지지율이 더욱 떨어질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베 총리의 향후 행보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민당 정권은 현재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 참의원에서도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안보 관련 법안을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이상 법안 처리는 시간문제다. 국회 일정상 참의원을 통과해 법안이 성립하는 시기는 오는 9월로 전망된다.
하지만 9월까지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8월 중에는 센다이 원전 1호기가 재가동된다.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이 2년 만에 다시 원전을 가동하게 되는 것이다. 원전 재가동 이슈 또한 찬성보다 반대 여론이 더 커 아베 정권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보고 있다. 종전 70년을 맞는 8월15일 전후에 발표될 아베 담화 또한 그 내용에 따라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안보 관련 법안이 성립되는 9월까지만 버티면 난관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따라서 아베 정권은 법안 성립 때까지 역풍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중국과의 정상 외교로 위기 탈출 꾀해
안보 관련 법안 강행에 대한 역풍으로 아베 정권의 지지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당내 대항마가 없고 국회에서도 야당의 힘이 미약해 아베 정권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 상황에서 아베 정권이 맞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년 여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의 참패다. 아베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인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서라도 선거에서 꼭 이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안보 관련 법안을 제정하고, 선거 전까지 최대한 지지율을 올려둘 필요가 있다.
아베 정권은 외교에서 위기의 탈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한국·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지지율 반등을 꾀하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아베 총리는 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9월 중 방중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7월20일자 NHK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8월 아세안 회의에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회담이 성사될 경우 거기서 한·일 정상회담 시기가 논의될 예정이라는 것. 일본 측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한국 정부 또한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한·일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이 크다.
한·일 관계는 8월에 있을 아베 담화가 큰 변수다. 아베 총리는 식민지 지배 및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전후 50년의 ‘무라야마 담화’나 전후 60년의 ‘고이즈미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혀왔다. 그러면서도 70년의 아베 담화에 “같은 내용을 담을 필요가 없다”며 식민지 지배 및 사죄라는 단어를 넣는 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실제 종전 70년 담화의 내용을 미리 엿볼 수 있었던 올 4월의 미국 의회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전쟁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면서도 ‘침략’과 ‘사죄’를 언급하지 않아 한·중의 반발을 샀다. 이러한 내용은 아베 담화에도 그대로 담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베 총리가 지난 6월에 아베 담화에 대한 각의 결정을 하지 않기로 정한 일이 그런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베 담화에 대한 각의 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정부 공식 담화가 아닌 총리 개인의 담화로 격하시키겠다는 뜻이다. 베일에 가려진 아베 담화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따라 한·일 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