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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도발한 하마스는 인터넷에서 ‘反이스라엘’ 여론 결집

10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집권하고 있는 정당이자 무장조직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한 전면적인 테러 공격에 나서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다시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가자지구는 2007년, 2014년, 2021년 등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빚는 공간이었고, 올해 시작된 전쟁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23년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하마스가 가자 장벽을 넘어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지상군 진입을 고려하면서 분쟁의 강도 면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발생한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세대를 거치며 중동에서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7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고, 이에 인근 아랍 국가들이 반발하면서 일어난 제1차 중동전쟁은 ‘민족주의의 전쟁’이었다. 당대 아랍의 젊은 엘리트들은 이 지역을 수백 년 동안 지배한 오스만제국에서 벗어나 아랍인들이 주도하는 근대 국가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민족국가를 추구한 시온주의에 바탕을 두고 건국되었다.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난 전쟁을 곱씹으며, 군부를 중심으로 한 아랍의 새로운 엘리트들, 특히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모든 아랍인의 통합’을 꿈꾸며 범아랍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AP 연합
10월13일 이슬람교도 청년들이 리투아니아의 이슬람 문화 교육센터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AP 연합

삶의 문제 관심 큰 ‘포스트 이슬람주의’ 성향

하지만 나세르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대패하면서, 범아랍주의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게다가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가장 위협적으로 몰아붙인 제4차 중동전쟁마저 결국 아랍연합군의 패배로 끝나자, 아랍민족주의 지도자들의 위신은 완전히 구겨졌다. 이에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출생한 청년층은, 구세대의 민족주의 엘리트들이 팔레스타인을 배신했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민족주의 엘리트들이 권력에 안주했다고 비난했다. 아랍민족주의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이슬람에 입각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슬람주의였다. 팔레스타인은 이제 아랍민족주의의 상징에서, 빼앗긴 이슬람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땅으로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세력 구도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안지구에서 집권하고 있는 파타(PLO의 후신)는 아랍민족주의 세력에 기원을 두고 있고, 가자지구에서 집권하고 있는 하마스는 그에 반발한 이슬람주의 세력이다. 1980년대 이래로 오랜 기간 야권에 머물렀던 아랍의 이슬람주의는 2011년 봉기로 아랍의 민족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접근했다. 이집트 혁명으로 등장한 이슬람주의 성향의 무르시 정부는 이스라엘과 새롭게 대결 구도를 세우면서 가자지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부에 대항한 이슬람주의 반군이 정부군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슬람주의의 기세는 혁명 직후에 빠르게 꺾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보수적 아랍 왕정들도 이슬람주의에 위협을 느낀 탓이다. 이집트에서는 엘시시가 쿠데타를 일으켜 시위대를 총으로 진압하면서 사태를 정리했다. 시리아에서 이슬람주의는 IS로 과격화되면서 시리아를 끝없는 전쟁으로 내몰았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중동과 아랍의 세 번째 세대는, 계속해서 혼란만을 만드는 이슬람주의에도 점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몇몇 학자는 이를 두고 중동에서 아랍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뒤를 이은 ‘포스트 이슬람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강고한 세속적 민족주의나 종교적 이슬람주의가 아니라, 당장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정치·사회 운동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되고, 보수적 왕정이 국민을 오랜 세월 통제해온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청년층의 현대화된 삶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포스트 이슬람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종교적인 상징과 억압적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국가를 현대화하고자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은 포스트 이슬람주의라는 시대 분위기에 적응하고자 했다.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 시도는 어떤 면에서 그 상징과도 같았다. 과거처럼 ‘모든 아랍인이 하나’라는 아랍민족주의나,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에 분노를 느끼는 이슬람주의 같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청년층이 싫증을 느낀다면, 오히려 이스라엘과 타협하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랍 각지에 국가가 수립된 지도 이제 3세대가 지났으면, 같은 민족이나 신앙심 이전에 ‘남남’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여론도 많아졌다. 사실 이미 2020년에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한 것은 그 중요한 이정표였다.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양면적 모습 반영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외부 지원에 의지해야만 하는 이슬람주의 조직인 하마스는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노린 것은 인터넷을 통한 또 다른 여론전이었다. 그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 높은 이스라엘과의 투쟁을 선전했고, 이스라엘은 그에 맞추어 더 강력한 보복을 하고 있다. 보복이 낳은 민간인 피해는 다시 인터넷 공간으로 확산된다. 그래서 최근 이슬람권 인터넷 여론을 보면 ‘포스트 이슬람주의’ 아래서 현대화를 지향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심드렁했던 흐름과는 또 다른 흐름이 관찰된다.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 분노하고, 이슬람 세계가 하나로 여론을 결집하며 자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압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일견 모순된 것 같은 두 흐름은 사실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양면적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이 실시간으로 외부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며, 이슬람 세계, 특히 아랍권 청년들이 탈(脫)이데올로기화되며 현대화된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은 정체성에 따라 사람들끼리 결집하고, 또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데 최적의 도구이기도 했다. 아랍 신세대의 여론이 전자의 방향으로 갈 것을 우려한 하마스는 역시 인터넷을 통해 후자로 조류를 돌리고자 했고, 이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인터넷은 기존에 존재하는 상황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지, 없는 현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결국에는 과밀한 인구가 봉쇄된 채 슬럼화하고 있는 가자지구의 비극적 상황은 언제든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시한폭탄’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두고 펼쳐지는 여론전은 서구권 청년층의 반이슬람주의를 다시 자극할 것이 틀림없다. 이해관계와 감정적 골이 모두 켜켜이 쌓여 있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수렁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 나가 새로운 ‘문명의 충돌’을 만들어내고 있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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