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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투자 ‘신라의 꿈’ 6년째 흉물 방치
제2의 ‘대장동’ 우려에 “주택 개발과 관광산업은 별개” 주장도

‘천년왕국 신라의 꿈과 향수’를 주제로 2007년 화려하게 문을 연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신라밀레니엄파크가 개장 10여 년 만인 2017년부터 깊은 잠에 빠져있다. 주차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호랑이 낭자의 전설이 서린 초가집은 폐가로 변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밀레니엄파크는 1986년 지주사인 삼부토건이 ‘신라촌’을 재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면서 출발했다. 1989년부터 조성공사에 들어가 착공 18년 만인 2007년 시민과 지역 관광업계의 기대 속에 대망의 문을 열었다. 총면적 18만2260㎡(5만5145평) 규모에 한옥호텔(라궁)과 신라 귀족들의 가옥, 수상공연장, 마장, 주막, 각종 체험공방 등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돼 경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테마파크’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 같은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고, 2016년 지주사인 삼부토건의 경영 악화로 테마파크는 경매시장을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1000여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업장의 당시 경매 감정가는 570억원이었지만, 쉽게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구단위별 사업용도가 ‘위락시설’로 한정된 보문관광단지의 특수성 때문에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폐허로 변한 신라밀레니엄파크 내 공연장 모습 ⓒ시사저널 이승표
폐허로 변한 신라밀레니엄파크 내 공연장 모습 ⓒ시사저널 이승표

경매시장 전전하는 신세 전락

경매 개시 약 3년 만인 2020년 경주 힐튼호텔 소유주인 우양수산㈜이 283억원에 최종 낙찰을 받았고 지역 관광업계는 크게 환영했다. 당시 우양 측은 원래 용도인 ‘휴양문화시설’로의 부활과 숙박시설인 ‘관광호텔’로의 변경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으며, 힐튼호텔의 노하우를 동력 삼아 관광호텔 건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텔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관광진흥법상 ‘관광휴양오락시설지구’로 지정된 밀레니엄파크를 ‘숙박시설지구’로의 용도변경이 필요했다. 50여 년 전인 1974년 경주관광개발계획 수립 당시 시행규칙 등으로 개발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문관광단지의 용도변경은 영원히 불가능할까? 관광진흥법 제54조에는 ‘관광단지 내 지정 변경은 지자체장의 의견을 거쳐 시·도지사가 승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취재 결과 경북지사가 최종 승인권자지만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입안하고 경주시의 의견을 거치는 구조로 파악됐다.  주무관청으로 알려진 경북문화관광공사 이상훈 관광마케팅사업 본부장은 “우리도 변경을 해주고 싶지만 관광진흥법 제60조 2항의 관광휴양오락시설지구에 ‘호텔’이 포함되지 않아 법 개정이 우선”이라고 했다. 이어 “(용도변경이) 가능하다 해도 다른 시설과의 형평성, 그리고 지가(地價) 상승으로 인한 사업자의 과도한 이익 발생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며 특혜 시비를 경계한 후 “경주시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와 관련해 지역에서는 ‘대장동’을 예로 들며 공기업인 관광공사가 초과이익을 환수할 법적 권한이 없어 공격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지자체에 공을 넘기는 모양새로 해석했다. 개발이익 환수법 제3조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중략)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이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개발 부담금으로 징수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반면 같은 법 제7조에는 수도권을 제외하고 ‘관광진흥법에 따른 관광단지 조성사업에는 개발 부담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감면 가능하다’는 조항도 있다.  결국 보문관광단지는 용도변경에 따라 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해도 이를 환수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아 제2의 대장동, 즉 특혜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주시는 적극적인 입장이다. 박원철 문화관광국장은 “관광진흥법에 따르는 보문단지를 대장동 개발사업과 비교하는 것은 기우”라며 “관광산업 활성화라는 큰 목적에서 볼 때 경북관광공사 측의 의지가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경주시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2025 APEC’ 회의 유치를 위해서라도 휴양문화시설 고수는 제고되어야 한다. 관광 활성화를 위한 투자유치보다 발생될 민원을 더 존중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특히 “이미 보문관광단지 안에는 신라밀레니엄파크 외 대형 종합휴양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는데 굳이 밀레니엄파크까지 위락시설로 묶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검토 가치가 있어 보인다”며 유연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힐튼호텔 측이 요구하는 최고급 호텔만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관광산업으로 볼 수도 없다”고 밝혀 ‘보문관광단지 활성화’라는 원칙 아래 관계기관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폐허로 변한 신라밀레니엄파크 내 공연장 모습 ⓒ시사저널 이승표
휴업 직전인 2015년 신라밀레니엄파크의 모습 ⓒ경북문화관광공사 제공

“경북문화관광공사와 경주시 공동의 책임”

경주시의회도 용도변경 쪽에 힘을 실었다. 이진락 문화도시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도 나라 경제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악성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철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호텔로의 용도변경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주시도 관련 규정을 잘 살펴본 후 변경할 충분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혜를 모아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게 맞다”며 경주시의 분발을 촉구했다. 경제산업위원회 소속 김동해 시의원은 “반세기도 넘은 구(舊)법에 얽매여 경주관광산업의 미래 경쟁력이 가로막힌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 의원은 아울러 “휴양문화시설지구에서도 (용도)변경 없이 할 수 있는 해양수족관 등 고부가 관광상품을 유치하는 방안이 좋지 않겠느냐”고 절충점도 제시했다. 소유주인 우양수산 측은 숙박시설로의 변경을 희망했다. 우양수산의 자회사인 우양산업개발 부사장 김남철 경주 힐튼호텔 총지배인은 “경주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라고 말로만 앞세우지 말고 차별화된 세계 최고급 6성급 호텔을 유치해 천년고도의 위상을 크게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게 우리 경영진의 목표”라며 숙박시설로의 용도변경에 강한 기대를 드러냈다. 아울러 ‘특혜’ 우려에 대해 “초과이익을 내라면 얼마든지 내겠다”며 경주시와 경북문화관광공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재차 당부했다.  이처럼 특혜 시비와 관광 활성화 사이에서 신라밀레니엄파크가 기로에 서있는 가운데 관광협회를 비롯한 지역 사회단체는 경주 관광의 대명사 격인 보문단지 내 흉물 테마파크의 장기 방치는 경주시와 경북문화관광공사의 공동책임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주민 기영하씨(60)는 “밀레니엄파크가 예전에는 다양한 관광객을 보문단지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크게 했지만 지금은 장기 폐업으로 단지 내 일반 상권에 미치는 피해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투자사도 사업장을 매수했으면 활성화 노력을 해야지 왜 쥐고만 있는지 의문”이라며 민관 모두의 적극성을 주문했다. 6여 년째 지속되고 있는 경주 신라밀레니엄파크의 ‘신라의 꿈’이 악몽으로 이어질지 길몽으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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