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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온 상승으로 북상…러시아·북한 어획고 증가
이제 ‘울릉도 오징어’는 옛말…서해에 새 어장 형성

동해 오징어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방어가 채우고 있다. 바다의 무법자 고래의 묻지마 포식으로 바다가 들썩이고 있다. 명태가 30여 년 만에 돌아왔다. 지금 한반도 동해에서는 어류군(群)의 대이동이 진행 중이다. 이동하는 자만 생존하는 노마드(nomad·유목민)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오징어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징어 고장’ 울릉도에서 이젠 오징어를 보기 어렵다. 겨울철(1∼3월) 활발했던 울릉도 오징어 잡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채낚기 어선들의 집어(集魚)등이 섬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밤 풍경은 박물관 사진으로 남아있을 정도다. 깊어진 어민들의 시름은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울릉군수협의 위탁판매 오징어는 978톤으로 1년 전(628톤)보다는 반짝 증가했지만, 2020년(1172톤)에 비하면 20.8% 감소했다. 울릉도 연간 오징어 어획량은 1992년 1만2000톤을 시작으로 평균 1만 톤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4년에는 4600톤까지 줄어들더니, 최근 들어서는 고갈 상태다. 
ⓒ시사저널 박치현
오징어 어획량 격감으로 텅 비어있는 울릉수협 위판장 모습 ⓒ시사저널 박치현

“동해안 식당들, 서해안 오징어 사다 써”

오징어 잡이 100년 역사의 울릉도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김해수 울릉어업인연합회장은 “오징어 어군(魚群)이 형성되지 않아 살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울릉 어민 10명 중 9명은 오징어 잡이로 생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조업을 포기하는 채낚기 어선이 늘어나고 출항한 배들도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어민들은 “조업을 나가봐야 기름값도 못 건지니 울릉도 오징어 잡이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오징어가 울릉도를 먹여 살렸다. “그때는 개도 오징어를 물고 다녔고 주민들의 주머니도 두둑했다”는 포구 앞 식당 주인의 회상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울릉도 오징어 감소 원인을 ’기후변화’ 탓으로 보고 있다.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의 김윤배 박사는 “동해안 수온 상승으로 오징어 먹이가 풍부한 한·난류가 만나는 지역이 북상하면서 오징어들도 따라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다 수온이 올라가면 오징어 어획량은 감소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월, 동해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1991~2020년)보다 2.7도 높은 22.2도를 기록해 최근 40년 중 가장 높게 측정됐다. 그해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은 628톤으로 2000년대 들어 가장 적었고 성어기의 5%에 불과했다. 당시 동해안 오징어 생산량(2193톤)도 1년 전(5608톤)보다 61%가량 줄었고, 평년(8179톤)에 비해 73% 감소했다. 동해 바닷물이 뜨거워지자 오징어들이 다른 해역으로 이동해 어군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반면 2020년은 ‘오징어 풍어기’였다.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에 따르면 2020년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은 655톤으로 1년 전(498톤)보다 30% 이상 늘었다. 특히 10월 한 달 동안 232톤의 어획 실적을 올려 2019년에 비해 무려 58배나 많은 오징어가 잡혔다. 울릉군수협 관계자는 “10여 년 만에 오징어가 가장 많이 잡혀 울릉도 위판장에 경사가 났다”고 말했다. 연이어 발생한 태풍이 오징어 어군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면서다.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 관계자는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따라 지나간 후 바다 수온이 안정되고 먹이가 풍부해져 오징어가 몰려 왔다”고 말했다. 수온이 올라가면 오징어가 떠나고 수온이 안정되면 오징어가 돌아오는 현상이 어획량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동해 오징어는 옛말이고 이제 서해의 명물이 됐다. 겨울철 동중국해에서 산란을 마친 오징어들이 서해로 몰려들기 시작한 건 5년 전쯤. 전문가들은 동해 오징어가 수온이 적합한 서해(전남 진도∼충남 태안∼인천 앞바다)로 서식처를 옮겨 ‘황금어장’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2022년 충남 해역에서 잡힌 오징어는 3855톤으로 10년 전(2012년 695톤)보다 5배 이상 증가했다. 어민들은 “동해안 식당들이 서해안 오징어를 사다 쓰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고 했다. 오징어가 월동하기 위해 남하하지 않는 것도 동해안 오징어 감소 원인 중 하나다. 기후변화로 러시아 연안의 겨울철 해수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서 동해로 내려오는 오징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어획고가 줄어든 순서를 보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대만, 일본, 한국 순서다. 반면에 북단 러시아의 오징어 어획고는 증가하고 있다. 최근 북한 해역에 중국 오징어 어선이 많아지고 있다. 동해안 오징어의 북상 행렬이 계속 이어지면서다.
오징어 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울릉도 어민들이 어획량 감소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
오징어 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울릉도 어민들이 어획량 감소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울릉수협

고래 천국 된 동해, 오징어·멸치 다 포식 

어민들은 오징어 증발의 또 다른 원인으로 북한 수역 조업권을 따낸 수백 척의 중국 어선이 동해상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게 문제라고 호소했다. 그물코가 촘촘한 쌍끌이로 오징어 회유 길목에서 모조리 잡아 남하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조업 어선이 줄어들면 오징어 어획량은 증가해야 하는데 오히려 감소했다.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수역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이 33척일 때 강원도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은 3400톤이었다. 하지만 2021년 554척일 때의 어획량은 6035톤으로 1.8배나 많았다. 그리고 중국 어선의 동해 북한 수역 조업이 절정(2013년 1326척, 2020년 2389척)일 때도 오징어 어획량은 4000∼8000톤을 유지했다. 정석근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는 “중국 어선들이 오징어가 많은 북한 해역으로 몰리는 것이지 동해 오징어 감소와 관련지을 정량적인 분석 결과가 없다.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됐다”며 수온 변화 탓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고래 천국으로 변하고 있는 동해의 먹이사슬도 문제다. 수온 상승과 1986년부터 지속된 포경 금지는 동해안을 ‘고래의 바다’로 만들었다. 동해안에 서식하는 고래는 20종, 8만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오징어·멸치 등 고래들이 좋아하는 밥상이 차려진 동해로 자연스레 몰린 것이다.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돌고래는 하루 평균 마리당 3.3kg, 한 해 2만5000톤의 어종들을 먹어치우는데 대부분 오징어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낚기 선주들은 “오징어 어장이 형성되는 9월에서 1월 사이 수백에서 수천 마리의 고래가 무리 지어 동해로 몰려와 마구잡이로 포식하는 장면은 일상이 된 지 오래”라며 “고래의 습격이 오징어 감소의 큰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오징어·방어·고래·명태 등 해역 간 어종 대체 현상도 수온 변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54년간 동해 연평균 표층수온은 1.75도 올라 서해(1.24도)와 남해(1.07도)보다 높았고 세계 평균 상승률(0.52도)의 3.4배를 기록했다. 동해에 따뜻한 바닷물을 실어 나르는 대마난류의 세기가 1980년대 후반부터 강해지면서다. “울릉도에 울릉도 오징어가 없다.” 전문가들은 그럴 수 있다고 예측한다. 대신 자취를 감췄던 명태가 돌아왔다. 사라지는 동해안 오징어의 귀환 가능성은 복잡계의 영역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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