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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 가담 ‘충격’
중개인 책임 강화 움직임에도 실효성엔 ‘물음표’

전국에 충격을 안긴 서울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나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엔 공통점이 있다. 임차인에게 ‘중개 대상물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 공인중개사법상 의무를 저버리고 임대인과 결탁해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공인중개사를 향한 공분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속에서 거액의 전세 계약을 해야 하는 임차인 입장에선 ‘믿을 건 중개사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공인중개사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겨 불합리한 계약을 맺게 하더라도 이를 입증하긴 쉽지 않다. 당국은 뒤늦게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 마련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실효성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서울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나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등 조직적 전세 사기 사건에 일부 공인중개사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다세대·연립(빌라) 일대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나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등 조직적 전세 사기 사건에 일부 공인중개사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다세대·연립(빌라) 일대 ⓒ 시사저널 최준필

거래 절벽에 실적압박…‘도덕적 해이’ 내몰리는 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는 공인된 자격증(공인중개사자격증)을 취득해 토지나 건축물을 매매‧임대하는 일 등을 알선하는 역할을 한다. 부동산 거래 자체는 개인끼리 해도 무방하나, 대출을 받거나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면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를 해야 한다. 중개인을 낀 거래가 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공인중개법상 중개인은 중개 물건의 위치, 주변 환경, 종류 등 기본적인 사항을 알려주어야 하며, 해당 주택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공인중개사와 중개인, 중개법인을 합한 개업 공인중개사의 수는 11만7745명이다. 공인중개사는 매매나 전월세 계약을 중개했을 때 거래금액의 0.3~0.7% 상당의 보수료를 챙긴다. 중개수수료는 계약의 종류와 거래 금액대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2억원짜리 전세 계약을 맺을 경우 중개보수 상한요율은 0.3%로, 임대인과 임차인 각각에 60만원씩 받아 총 120만원을 벌 수 있다. 중개한 매물의 금액대가 올라갈수록 수수료율은 올라간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부동산 가격 상승기엔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기 때문에 중개인들도 덩달아 많은 수익을 거뒀지만, 현재와 같은 부동산 침체기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공인중개업을 운영하는 A씨는 “부동산 시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요즘 입에 풀칠을 하고 산다. 집 보겠다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통상 집주인은 여러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다보니 중개사 사이에서도 계약을 끌어오기 위한 경쟁이 이뤄진다. 이 같은 중개인 사이의 실적 압박이 무리한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말까지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전세사기로 입건된 피의자 2188명 중 414명(18.9%)이 공인중개사였다. ⓒ 연합뉴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말까지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전세사기로 입건된 피의자 2188명 중 414명(18.9%)이 공인중개사였다. ⓒ 연합뉴스

믿었던 중개인의 배신…전세사기 도운 중개사 처벌 어떻게?

공인중개법상 ‘신의와 성실로써 공정하게 중개 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중개인이 오히려 사기에 가담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말까지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전세사기로 입건된 피의자 2188명 중 414명(18.9%)이 공인중개사였다. ‘가짜 임대인’ 1000명(45.7%)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중개인이 전세 사기에 가담하는 범행은 주로 시세를 알기 어려운 신축빌라의 가격을 부풀려 전세계약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깡통전세 위험이 큰 줄 알면서도 성과보수 등을 노리고 불법 중개행위에 가담하는 식이다.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에서도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공인중개사만 6명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선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6월 공인중개사가 신용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나 주택의 선순위 권리관계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또 집행유예 등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국민재산권 보호를 위한 전세사기 근절 결의대회 및 분회장 워크숍'에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기남부지부 회원 및 참석자들이 전세사기 근절 결의문을 낭독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국민재산권 보호를 위한 전세사기 근절 결의대회 및 분회장 워크숍'에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기남부지부 회원 및 참석자들이 전세사기 근절 결의문을 낭독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법안이 통과될지라도 현실적으로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묻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개인이 중요 정보를 고의로 알리지 않았거나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세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당장 살 곳을 잃을 위기에 놓인 전세 사기 피해자 입장에선 보증금부터 돌려받는 일이 급선무다. 과실이 확인된 공인중개사에게 피해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지만, 현재 법상 공인중개사의 보증한도는 2억원이다. 이마저도 계약 1건당 한도가 아니라 해당 중개업소에서 1년 동안 진행한 모든 계약 건을 합산한 한도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한 명 이상일 경우 사실상 중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게 의미가 없는 셈이다. 일단 공인중개사 협회 측은 자체적인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기남부지회는 지난 19일 ‘전세사기 근절 결의대회 및 분회장 워크숍’을 열어 “전세사기 예방과 불법 중개행위를 척결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해당 협회는 법정단체가 아니라 회원들에 대한 지도‧단속 권한이 없어, 자정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엔 중개업자의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신분증을 확인해야 하며,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곳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해당 중개업소가 적법하게 운영 중인 업장인지 여부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kar.or.kr)나 씨리얼(seereal.lh.or.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공인중개사 사무사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받아 국세청 홈페이지(nts.go.kr)에서 휴‧폐업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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