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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지정 석면 조사기관 N업체, 보고서 ‘짜깁기’ 의혹
시교육청은 ‘늑장 감사’...고용노동부는 ‘이름만 바꾼’ N업체 재지정

정부가 지정한 석면 조사기관이 학교 석면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가 지정한 석면 조사기관은 석면 해체·제거 뒤 잔재물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서울의 한 업체가 2021년 30개교의 석면 검출 결과를 ‘짜깁기’하는 등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문제를 키운 것은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었다. 해당 업체는 업계 내에서 뒷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정부의 석면 조사기관 지정서’를 자진 반납했다. 그러고는 다른 이름의 업체를 차린 뒤 고용노동부에서 다시 석면 조사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이후 서울 지역 학교와 계약까지 맺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시교육청은 석면 조사와 관련한 내부 기준이 없다며 책임을 미뤘고, 공익제보 신고 이후에야 ‘늑장 감사’에 나섰다. 이번 사건 때문에 시교육청은 최소 5억여원을 손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18년 2월2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인헌초등학교를 찾아 석면 철거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같은 석면 사진, 7개 보고서에 동시 사용

사건의 중심에는 N업체가 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N업체는 설립 6개월여 만인 2021년 9월 고용노동부 석면 조사기관으로 지정됐다. 현행법상 노동부가 지정한 석면 조사기관은 석면 해체·제거 작업 뒤 공기 질 측정 등을 통해 잔재물을 조사한다. 이를 토대로 결과 보고서를 만든다. 학교나 공공기관 등 석면을 제거한 곳은 보고서를 토대로 석면 검출 여부를 판단한다. 석면이 검출되면 청소 작업 등을 다시 해야 한다. 2021년 11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석면 제거 작업을 할 때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단독] 1급 발암물질 석면 학교에서 날린다> 기사 참조). N업체의 활동 시기는 2021년 겨울방학이다. 업체는 2021년 10월부터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30곳과 계약했다. 모두 수의계약이다. 학교별 계약금액은 최소 130만원부터 최대 4800만원까지다. N업체가 2022년 1월까지 학교와 계약한 금액은 모두 5억7600여만원이다. 교육부는 7년여 전 ‘2027년 전국 무석면 학교’를 공언했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이에 발맞춰 무석면 학교 예산을 자체 편성·집행해 왔다. 학교는 이러한 교육청 예산을 토대로 석면 해체·제거 및 조사기관과 계약을 진행했다. N업체가 취득한 계약금액이 교육청 예산이라는 의미다.
ⓒ뉴시스
2018년 7월11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 발족 및 학교 석면 특강에서 학부모들이 학교 석면 실태와 철거 공사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2022년 초 불거졌다. N업체의 학교별 석면 조사 보고서와 관련해, 조사 보고서가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석면 조사기관은 작업이 끝나면 공기 질과 비산 농도를 측정한다. 특히, 서울에서는 ‘전자현미경’을 통한 석면 조사도 이뤄진다. 시민단체가 석면 조사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2018년 전자현미경을 통한 석면 조사를 자체 도입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 산하 유·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석면 조사는 전자현미경을 통해 진행돼 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전자현미경 분석 방법은 서울에서만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업체 역시 조사 보고서에서 전자현미경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전자현미경은 전자파를 이용해 작은 물체를 확대해 보는 장비다. 크게 주사전자현미경(SEM-EDS)과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나뉜다. N업체가 사용한 현미경은 주사전자현미경이다. 주사전자현미경은 시료에 전자를 쏘고, 이때 시료에서 튕겨 나오는 신호를 토대로 그래프를 그린다. 시료의 굴곡 등 물리적 특성에 따라 결과값이 다른데, 그 결과가 그래프로 나오는 식이다. 그래프를 통해 석면 여부를 판단한다. 이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가 EDS다. 그래서 주사전자현미경을 사용한 조사 보고서에는 ‘EDS 그래프’가 있어야 한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N업체가 작성한 서울 소재 두 고등학교의 석면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입수했다. 두 보고서에는 모두 EDS 그래프가 첨부되지 않았다. 두 학교에 대한 전자현미경 분석 결과는 모두 ‘석면 불검출’이었다. 석면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EDS 그래프도 없는데 석면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허위”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N업체는 조사 보고서에 여러 학교의 석면 사진을 중복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북구 소재 한 고등학교 보고서에 사용된 석면 사진 16장이 서울 마포구의 다른 고등학교 결과 보고서에도 첨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석면 조사 사진이 서울의 7개교 보고서에 동시에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사진 돌려막기’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석면 조사를 할 때 학교 곳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다”며 “이러한 분석 사진이 여러 학교에서 동일하게 나오려야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석면 조사기관 N업체가 작성한 서울 소재 두 고등학교에 대한 석면 조사 결과 보고서 일부 ⓒ시사저널 입수 자료
석면 조사기관 N업체가 작성한 서울 소재 두 고등학교에 대한 석면 조사 결과 보고서 일부 ⓒ시사저널 입수 자료

보고서 조작 의혹 업체, 6곳에 금액만 10억원

논란을 의식해서였을까. N업체는 2022년 7월 석면 조사기관 자격을 고용노동부에 자진 반납했다. 비슷한 시기, N업체의 대표는 2022년 3월 설립된 S업체의 사내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S업체의 본점은 설립 초기 제주도였다. 그러다 2022년 10월 서울로 본점을 옮겼다. S업체는 같은 달 고용노동부에서 석면 조사기관으로 지정받았다. S업체는 이후 서울 내 학교와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저널은 N·S업체의 서울 소재 사무실을 찾았지만 관계자와 접촉할 수 없었다. 보고서 조작 의혹은 N업체만의 일이 아니었다. C업체 역시 주사전자현미경을 통해 석면 분석을 했다고 결과 보고서에서 밝혔다. 그러나 C업체는 한 학교의 분석 사진을 다른 학교 보고서에도 중복해서 사용했다. 이러한 경우는 모두 16번이었다. N업체의 수법과 동일한 것이다. 이들 업체를 비롯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의혹을 받는 곳은 모두 6곳이다. 이들 업체가 학교와 계약해 얻은 수익만 10억원이 넘는다. 이는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에 내려보낸 예산이다. 즉, 시교육청이 보고서 조작 의혹으로 10억원 이상의 손해를 본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교육청은 사건 초기 N업체의 사기 정황을 인지조차 못 했다. 지난여름 공익제보가 접수된 뒤에야 감사에 나섰다. 이때는 N업체가 S업체로 이미 탈바꿈한 뒤였다. 시교육청이 석면 해체·제거 현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관련 보고서조차 검토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와 학생들 몫이다. 심지어, 서울시교육청은 전자현미경과 관련한 내부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 조희연 교육감이 자체 도입한 전자현미경 분석 방법을 석면 조사기관이 주먹구구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꼴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했을 때 잔재물이 나오면 다시 청소를 하라는 의미로 전자현미경 분석 방법을 자체 도입했다”면서 “전자현미경 분석 방법은 현행법으로 명확히 규정됐다기보다 시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하는 것으로 내부 기준은 따로 없다”고 인정했다. N업체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감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감사 결과 위법이 드러날 경우 N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규정상 교육청이 할 수 있는 행정처분은 제한적”이라며 “수사 의뢰나 고발 조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교육청 측은 1월 중 감사가 끝날 것으로 내다봤다. N업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업무정지나 최대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동부는 석면 조사기관과 관련한 주무부처다. 서울시교육청이 N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면 이를 조사하는 곳 역시 고용노동부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N업체의 대표가 차린 S업체를 다시 석면 조사기관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N업체에 대한 공익제보가 접수된 뒤에도 S업체를 석면 조사기관으로 인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측은 “현행법상 노동부는 업체 인력, 시설 장비 등을 토대로 석면 조사기관을 지정한다”고만 해명했다. 업계에서는 보고서 조작 의혹과 관련해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과 고용노동부의 허술한 관리·감독 아래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문제가 결국 터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허위 조사 문제는 내부적으로 고질적인 문제였다”며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문제를 방치하고, 환경부와 교육부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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