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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한국가이드스타 공동기획] 구멍 뚫린 보훈단체 8곳 회계 실태 드러나…“보조금 적은 탓” 호소하기도

“정부는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끝까지 최상의 예우를 다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24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렇게 말했다. 국가유공자 예우는 문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특히 강조해온 부분이다. 그에 따라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에 들어가는 예산도 해마다 증가했다. 2017년 5조4524억원에서 올해는 5조8350억원으로 3826억원(7.0%) 늘어났다. 내년에는 180억원 더 오를 전망이다. 예산 중 일부는 유공자를 돕는 보훈단체에 지급되고 있다. 국민들도 해당 단체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보훈단체가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대통령과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보훈단체는 회계를 낱낱이 공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 현실은 달랐다. 회계자료를 대충 적어 낸 경우가 숱하게 발견됐다. 심지어 유공자 지원보다 자기 법인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쓴 경우도 있었다.
8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광복회 건물(왼쪽)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대한민국상이군경회가 있는 중앙보훈회관 전경ⓒ시사저널 박정훈

보조금에 기부금도 받는데 회계는 ‘깜깜이’

시사저널은 국내 유일 공익법인 감시재단 한국가이드스타와 함께 보훈단체 8곳의 2019~20년 국세청 회계 공시자료를 전수 분석했다. 분석 대상 8곳은 광복회,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등이다. 이들 단체는 모두 국가유공자단체법에 의해 설립돼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8개 보훈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다. 이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자활 능력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6·25 전쟁과 월남전 등에 참전한 군인을 포함해 10만6000여 명 회원의 복지 증진을 맡고 있다. 책임 범위가 넓다 보니 지원금 혜택도 크다. 매년 100억원 안팎의 국고보조금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해 상이군경회의 총 자산은 946억원이다. 나머지 7개 단체의 자산을 합한 액수보다 더 많다. 기부금 수익도 14억여원으로 1위다.
ⓒ시사저널 최준필·대한민국상이군경회 홈페이지

상이군경회, 목적사업보다 단체관리에 더 지출

규모가 큰 만큼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매년 감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제한적 평가를 받는 데 그치고 있었다. 2019~20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상이군경회는 2년 연속 ‘한정의견’을 받았다. 가이드스타 관계자는 “감사 범위에 제한이 있지만 중대하지 않거나, 회계 기준 위배 사항이 있지만 부적정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 한정의견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감사보고서에는 “일부 사업에 대해 신뢰성 있는 재무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여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와 있었다. 투명한 감사에 필요한 근거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 상이군경회는 목적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업수행비보다 일반관리비를 더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목적사업에 지출한 총 금액 214억원 중 사업수행비는 86억원(40.1%)을 기록했다. 일반관리비는 그보다 15억원 더 많은 101억원(47.1%)을 썼다. 앞서 2019년 일반관리비 비중은 62.5%로 더 컸다. 반면 사업수행비 비중은 36.9%에 그쳤다. 가이드스타 측은 “공익법인이 추구하는 본연의 임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사업수행비)보다 자기 법인의 인사·재무·감독 등 관리활동(일반관리비)에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도 사업수행비에 비해 일반관리비를 3~4배 이상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체도 상이군경회와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전자는 순직한 군인·경찰을, 후자는 그 유족을 회원으로 두고 복지를 돕고 있다. 지난해 각각의 일반관리비 비중은 77%, 85%로 집계됐다. 2019년에는 각각 81%, 74%였다. 두 단체 모두 2년 연속 일반관리비 비중이 70%가 넘었다. 이에 대해 해당 단체들은 “거의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는데, 보조금의 대부분을 인건비 등 일반관리비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사업수행비로 쓸 수 있는 보조금은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역시 보훈처를 주무부처로 두고 있는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의 회계 상황은 달랐다. 이곳의 지난해 일반관리비 비중은 약 3%였고, 사업수행비 비중은 97%였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5·18유공자법’에 의해 설립된 단체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돕고 있다. 한편 가이드스타의 투명성·책무성 평가에서 별점을 받은 공익법인 42곳의 일반관리비 비중은 8.6%(올 9월 기준)로 집계됐다. 5년 연속 별점 만점을 기록한 굿네이버스는 그 비중이 2.3%였다. 나머지는 모두 사업수행비로 쓰였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는 지난해 유공자단체 중 보조금 수익 1위를 기록했다. 그 액수는 103억원으로, 기부금 수익이 가장 큰 상이군경회(보조금 98억원)보다 5억원 더 많이 지원받았다. 이 단체는 무공훈장이나 보국훈장을 받은 사람들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해당 목적으로 모은 기부금은 지난해 2억여원에 달한다. 그런데 기부금 지출내역을 불성실하게 공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공수훈자회는 홈페이지에 기부금 활용 실적을 따로 올려뒀다. 여기에 따르면, 기부금 수익 중 약 5000만원을 ‘회원 격려’와 ‘행사비 지원 등’에 쓴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나머지 1억원의 지출 목적은 ‘단체운영비 등’으로 통일돼 있었다. 관련법 시행규칙은 기부금을 단체운영비에 쓸 경우 ‘인건비’ ‘임차료’ ‘회의비’ 등 10가지 항목으로 나눠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공수훈자회처럼 지출 목적을 단일화해 적으면 외부자 입장에서 세부내역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단체 측은 “세부적으로 적어야 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광복회의 경우 수십억원의 운영보조금을 받고도 기부금에서 운영비를 더 갖다 쓴 흔적이 발견됐다. 지난해 광복회는 ‘단체운영비’ 목적으로 22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그런데 기부금 수익 7억원 중 7500만원을 또 ‘운영비’로 썼고, 4200만원을 ‘인건비’에 썼다. 총 1억1700만원이다. 기부금을 운영비나 인건비로 쓰는 게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유공자 측에 돌아갈 몫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광복회의 기부금 지출내역을 보면, 저소득 회원 274명에게 1인당 약 100만원의 지원금을 줬다. 유공자 후손 150명에게는 1인당 약 9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유공자 유족 안기수씨(안중근 의사 증손녀)와 이덕남씨(신채호 선생 며느리) 등에게는 각각 500만원을 지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광복회 전직 관계자는 “(지급액이) 그것밖에 안 되나”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광복회 2020년 기부자 및 이사 구성원 명세서(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2020년 기부금품 지출명세서ⓒ홈택스 홈페이지
대한민국상이군경회 2020년 감사보고서ⓒ홈택스 홈페이지

광복회, 운영보조금 22억 받고도 기부금에서 1억원 더 빼서 사용

그 밖에 광복회는 기부자 정보를 빠뜨리는 실수를 했다. 관련법 시행규칙은 공익법인에 매년 2000만원 이상 기부한 개인 또는 법인의 정보를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부자와의 특수관계를 검토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다. 이에 따라 특정 단체에 2000만원 넘게 기부한 변호사나 세무사는 해당 단체의 외부 전문가로 일할 수 없다. 패션 플랫폼 기업 ‘자안그룹’은 2019년 3000만원을 광복회에 냈다. 또 지난해에는 5차례에 걸쳐 총 2500만원을 기부했다. 2000만원이 넘기 때문에 광복회는 자안그룹의 실명과 기부금 액수를 알려야 한다. 하지만 기부자 명단은 2개년 모두 텅 비어있다. 또 자안그룹은 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기부금품 내역 중 ‘영리법인기부금품’에 기부 사실을 따로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2019~20년 모두 0원으로 나와 있다. 대신 ‘기타기부금품’에 몰아넣어 공시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운영보조금은 본회뿐만 아니라 지부와 지회 운영비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라며 “실제 본회가 쓸 수 있는 운영비는 얼마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부자 정보 누락에 대해선 “보훈처와 국세청에는 자료를 충실히 전달했다”며 “자료 확인이 필요하면 본회로 찾아오라”고 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매번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 기부금 지출내역을 불성실하게 적은 곳은 또 있다. 4·19민주혁명회는 지난해 ‘회원복지비’ 목적으로 회원 단 1명에게 8400만원의 기부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4·19기념 행사 참가자 기념품 등’에 쓴다는 이유로 역시 회원 1명에게 2700만원을 줬다. 2019년에도 회원 1명에게 1억1500만원을 썼다고 공시했다. 공익법인이 인원을 부정확하게 적는 문제는 지난해 5월에도 공론화된 바 있다. 당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국세청 공시자료에 기부금 수혜 인원을 ‘99명’ ‘999명’ 등 임의로 표기해 지탄을 받았다. 정의연은 이에 대해 사과하며 “부족한 인력으로 어려움이 있어 실무적으로 그렇게 편의적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훈단체 역시 실무상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단체 관계자는 “거액의 보조금을 받아봤자 각 지회에 활동비로 대부분 빠져나가고 남은 돈으로 본회를 운영한다”면서 “본회 직원들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는데 목적사업에 쓸 돈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훈처에 인력 충원과 보조금 인상을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목적사업의 공익성을 따져보기 전에는 함부로 보조금을 주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사업수행비 성격의 비용은 단체 특성이나 성격에 따라 매년 예산 심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추가 편성·지원하고 있어 고정비 성격의 일반관리비에 비해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각 보훈단체에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일반관리비로 주로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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