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단 전원 검거했는데도 투자금 돌려받지 못해
피해자들, “지푸라기 잡는 심정” 거리 나와 호소
땅값 1000억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기획부동산에 속은 피해자들만 있을 뿐, 투자한 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12월15일 기획부동산 피해자 18명이 울산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범시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사기단이 빼돌린 범죄수익금을 몰수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뜻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또 솜방망이 처벌에 항의하면서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2017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1000억원대 제주도 땅 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이들은 “사기단 10명 중 3명만 구속된 상태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런 가벼운 처벌이 제2, 제3의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주도 땅에 묻혀 있는 사기의 함정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의 기획부동산 사기단은 2016년 3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제주도 땅에 투자하면 평당 최대 1000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속여 투자자 15명에게 5억9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법 형사2단독은 12월7일 대표 A씨에게 징역 6개월, 제주지사장 B씨와 부대표 C씨에게 각각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이들은 이미 같은 범행을 저질러 A씨는 징역 9년2개월, B씨는 징역 6년1개월, C씨는 징역 6년7개월의 확정 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추가 범행이 드러나며 실형이 추가됐다.
‘기회의 땅’ 아닌 ‘기획의 땅’에 투자했다가 낭패
같은 시기에 이들 사기단이 판 제주도 땅은 인덕면 서광리, 남원읍 위미리, 한림읍 협재리 등 10곳의 30만㎡다. 대부분 건축을 할 수 없는 땅인데도 개발이 가능한 것처럼 속여,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피해자 434명으로부터 221억원을 받아 챙겼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3.3㎡당 35만원에 매입해 95만원에 팔았다. 2~3배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조영민씨(가명)는 2017년 12월 애월읍 어음리 산 130번지 땅 60평을 5160만원에 샀다. 조씨는 “주변에 차이나 비온드 힐이 들어서고 힐링리조트가 추진된다는 기획부동산 직원의 말을 믿고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계약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개발행위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이 땅을 산 피해자는 330명, 피해금액은 150억원이 넘었다. 김희경씨(가명)도 지인 10명과 함께 2016년 1월 봉성리 산 52-56 1000평을 3억6000만원에 구입했다. 1000평을 사면 대로(大路)변 부지를 준다는 계약서를 쓰고 대금을 지불했다. 이 토지 역시 경관보전지구 1등급으로 건축이 불가능하다. 사기단은 이런 땅을 3.3㎡당 3만4000원에 사서 72만원에 팔았다. 피해자들이 항의하자 이들은 제주도가 개발 가능하도록 풀어주는 땅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속였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2018년 2월까지 계속됐다. 피해자는 1000명을 훌쩍 넘었고, 피해금액도 1000억원대에 달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네 차례(1차 2017년 5월, 2차 2018년 10월, 3차 2020년 1월, 4차 2021년 8월) 경찰 수사를 통해 사기단을 모두 검거됐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1인당 평균 1억원 정도의 투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기획부동산 경리직원이 ATM기에서 수십 차례 현금을 인출하는 장면을 봤다는 사기단 측근의 말을 들었다며, 숨겨둔 비밀금고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은닉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진행 중이다.
1000억원대 제주도 땅 사기 사건의 설계자는 C씨로 알려져 있다. C씨는 A씨 등과 함께 기획부동산 3개를 운영하면서 가족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때 C씨 며느리였다가 현재 피해자 쪽에 서있는 임영희씨는 “아들에게는 제주도 땅 홍보와 투자자 대상 현지 설명회를, 딸에게는 경리와 감사를 맡겼다”고 말했다. 임씨는 “투자금을 부동산 법인 계좌로 받아 딸 계좌로 이체된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며 “법인 계좌에는 돈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조씨 등 피해자 18명은 이 돈의 행방을 찾아 달라며 지난 8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신동욱 변호사는 “이들이 숨긴 돈은 부패재산몰수법상의 범죄피해재산에 해당돼 수사관의 의지가 있으면 범죄피해재산을 몰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는 존재한다. 2019년 1000억원대 다단계 사기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MBG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은 임동표 MBG그룹 회장의 범죄수익을 추징보전하고, 부패재산몰수법 제5조에 따라 임 회장의 범죄수익을 추징하기로 했다. 그러나 법원은 “임 회장에게 돈이 얼마나 귀속됐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범죄수익을 산정할 수 없어 추징을 명할 수 없다”며 기각한 바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 “범죄수익금 든 비밀금고 찾아 달라”
경찰 수사 결과와 판결문,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부동산 사기단의 수법은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이들은 월급 150만원과 성과급을 주며 조직원을 모집했다. 그리고 많은 땅을 팔기 위해 홍보 기술을 가르쳤고, 실적이 없으면 해고했다. 이곳에 2년간 직원으로 근무했던 김애란씨(가명)는 “일을 계속하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객을 유혹하거나, 본인이나 가족이 땅을 사야 했다”고 말했다. 조직 관리를 위해 워크숍도 자주 열었다.
투자자가 모집되면 1박2일 코스 제주 현지답사를 진행한다. 피해자들이 제주도에 도착하면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만든 홍보영상을 보여주며 현혹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현장에 데려가 건축이 불가능한 땅에 펜스까지 쳐놓고 개발 예정인 것처럼 속여 계약을 유도했다. 이들의 역할은 조직적인 시스템에 의해 진행됐다.
피해자들은 이들을 ‘범죄단체 조직’으로 처벌해 달라고 추가 고소했다. 형법 제114조에 따르면, 범죄단체 조직은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을 말한다. 처벌도 보통 사기단보다 훨씬 엄하게 적용돼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신 변호사는 “이들이 직급체계를 갖추고 정해진 역할 분담이 분명한 만큼 범죄단체 등 조직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1000억원대 기획부동산 사기단 10명 중 구속 수감돼 있는 3명도 몇 년 있으면 풀려날 것이고, 공범인 나머지 7명은 집행유예를 받아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법이 참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기자가 만나본 피해자 대부분은 서민이다. 자녀 결혼자금이나 노후생활 적금까지 헐어가며 ‘기회의 땅’이 아닌 ‘기획의 땅’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피해자들은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그래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리로 나왔다. ‘제주도 기획부동산’ 1000억원대 비밀금고 행방을 찾아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