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 ‘방역 최전선’ 대형병원·지하철 청소노동자는 안전한가
열악한 휴게공간·차별 대우에 “서울대 사건 남의 일 같지 않다”
“일주일에 마스크는 3개, 작업복은 집에서 세탁”
방역의 가장 기본인 방호복장에 대해서도 이들은 차별을 겪는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C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신주혜씨(가명)는 코로나 확진자들이 머무르는 격리병실을 주로 청소한다. 주 6일을 일하는 신씨에게 병원이 지급하는 마스크는 일주일에 단 3개뿐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오히려 병원 곳곳에 마스크를 비치해 뒀다. 그런데 지난해 마스크 대란이 터진 후 병원이 개수를 제한해 버렸다.” 그 때문에 격리병실을 청소하고 나온 후는 물론, 퇴근길까지 이들은 하나의 마스크를 착용한다. 정 필요한 경우 직접 마스크를 구입해 교체한다. 반면 의사와 간호사,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마스크는 늘 그들만의 장소에 구비돼 있다. 신씨는 “많을 땐 격리병실을 비롯해 하루에 커다란 8~9통의 쓰레기를 치우는데, 우리에겐 방호복은 물론 기본적인 방역물품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 의료진은 이러한 제한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린 작업복도 병원에서 세탁할 수 없다. 잔뜩 오염된 그 옷을 비닐에 싸서 각자 집으로 가지고 간다”고도 했다. 퇴근 전 혹시 모를 감염원을 씻어낼 샤워실도 부실하기만 하다. 좁은 라커룸을 대신해 옷을 걸어두는 곳을 샤워실로 활용하는가 하면(C병원), 보안이 취약한 컨테이너 건물에 샤워기 2대만 설치해둔 탓에 사용을 기피하기도 한다(B병원). 휴게공간에 대한 규정이 없는 건 아니다. 2019년 고용노동부는 이미 사업장 휴게공간에 대한 실태조사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1600여 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휴게시설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답한 비율은 약 65%에 달했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휴식 장소는 ‘작업장 내(41.1%)’란 답변이 가장 많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휴게공간이 있어도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시간이 없어서’란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앞서 만난 청소노동자들의 고충이 이미 2년 전 고용노동부의 조사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업공간에서 100m 이내에 공간을 마련해 1인당 최소 6㎡(약 2평) 면적을 보장하는 것. 그 안에 등받이 있는 의자나 소파를 두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조명과 충분한 환기시설을 설치하는 것. 당시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휴게시설 설치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현실에 아늑한 소파와 조명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과중한 업무를 소화하는 이들에겐 제대로 다리를 펼 한 평의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방역 담당하는 우릴 위한 보호는 없다”
지하철역은 코로나19 방역의 또 다른 최전선으로 불린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며 불특정한 오염원들을 남기고 떠나는 곳이다. 지하철 방역이 뚫리면 감염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역사 내 방역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는 이유다. 그 중요성만큼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은 크다. 그러나 이들의 여건도 병원 청소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염 위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면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조치는 허술하다. 마스크 지급부터 ‘거리 두기’ 자체가 불가능한 비좁은 휴게공간까지, 다양한 차별 기제가 역사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작동한다. 지난해 말 김영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가 실시한 지하철 역사 청소노동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방역물품인)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 53.1%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교통공사 측으로부터 “직원이 아니어서 마스크를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또한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9%가 “코로나와 관련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본 적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신도림역 청소노동자 8명이 집단감염되는 일이 있었다. 직원식당이 따로 없어 함께 모여 도시락을 먹다가 감염된 것이다. 당시에도 지하철역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시내 한 역사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심영희씨(가명)는 “휴게공간도 방역지침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이용하라고 한다. 관리자들이 ‘지하철 방역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방역의 최전선이다’고 강조하는데, 그 방역을 담당하는 우리에 대한 보호조치는 딱히 없다”고 토로했다.현장의 차별 없애는 ‘진짜 고용 전환’ 필요
청소노동자들은 현장에서의 차별을 극대화하는 1차적인 원인으로 고용 형태를 꼽는다. 주로 용역업체 등을 통해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불안정한 고용 탓에 일터 내 불평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병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별도 노조 지부를 결성해 현재 무기계약직 전환을 위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형식적인 고용 형태의 변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실제 최근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서울대의 경우, 2018년 이미 청소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직고용한 바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의 비명은 계속됐고 결국 비극을 막지 못했다. 지난 7월22일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 TF에서 진행한 긴급 토론회에서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학생대표는 “(청소노동자들은) 총장 발령 정규직인 법인 직원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임금과 복지 등 각종 차별에 시달려야 했고 직고용 전환 이전보다 처우가 더욱 악화한 경우도 있었다”며 “학교가 책임지고 재정을 투여해 차별을 시정하는 ‘진짜 정규직화’는 요원하다”고 밝혔다. 즉 임금 상승도, 승진도, 인력 충원도 없는 무늬만 고용 전환이 이뤄졌던 것이다. 결국 현장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함께 일하는 정규직 직원들과 차등 없는 ‘진짜’ 고용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사건 이후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여론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6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식사하지 않도록 휴게실을 보장할 것을 의무화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내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정치권도 팔을 걷어붙이며 개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서울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민주당 산재예방 TF 소속 이탄희 의원은 청소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직장 내 평등한 소통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일은 극도로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사용자와 외부인들의 강력한 의지와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객관적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회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이중고를 지적했다. 그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근로 빈곤층의 바닥 중 바닥이다. 중고령노동·간접노동·여성노동이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건물 밖의 환경미화원들은 남성이 대부분이고, 건물 안의 청소노동자들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건물 안에서는 화장실·음식물쓰레기·곰팡이 등을 상대해야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과로노동까지 겹치며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건이 발생한 서울대에 대한 종합감사를 촉구할 예정인 그는 “설국열차 머리칸과 꼬리칸 사이의 벽을 부술 외부 충격을 가하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곧 정치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평온한 아침은 누군가의 땀 흘린 새벽이 만든다.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5시, 청소노동자 김씨는 어김없이 병원 한편의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병실층으로 향한다. “정식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인데, 청소할 때 의료진이나 직원들을 마주치면 불편할 수 있으니 첫차를 타고 서둘러 나온다. 그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빠르게 치워놓고, 퇴근 때까지 눈에 띄지 않게 일한다. 그게 역할이다.” 우리 사회 ‘필수노동자’로 불리는 그들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10시간, 숨죽여 일하고 틈틈이 각자의 쉼터에서 작게 숨을 돌린다. 청소노동은 필수지만 청소노동자는 필수가 아닌 일터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오늘도 투명인간으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