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입북은 공공연한 비밀
중국 출국자 상당수 행방 묘연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이 재입북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국내 거주 탈북민은 3만3670명이다. 이 중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탈북민이 900여 명에 달한다. 상당수는 북한으로 다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탈북민들 사이에서 재입북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누가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북한에서 누구를 봤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돈다. 지금도 중국에 잠시 다녀온다고 떠났던 탈북민들 중 상당수의 행방이 묘연하다. 탈북민 단체장들은 “중국에 간 후 장기간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은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당국에서는 그게 누구인지,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실정이다. 이번에 강화도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김아무개씨(24)의 경우도 북한 언론의 보도가 없었다면 현재까지 소재 파악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민 중에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있었다. 재입북한 탈북자 중에는 탈북과 월북을 반복한 사례도 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은 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일러스트 오상민
ⓒ일러스트 오상민

가족 그리워하다 북한행 선택하기도

지난 1996년 7월11일 탈북한 최승찬씨는 자전거 고무튜브를 몸에 둘둘 말고 예성강을 따라 남한으로 귀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씨는 북한 특수부대인 38항공육전여단에서 제대한 후 벽돌공장에서 일하다 탈북했다. 북한에서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하나원을 나와 농협에 취업했다. 재입북하기 직전까지 농협중앙회 대리로 근무했다. 번듯한 직장을 둔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 이런 최씨가 갑자기 농협에서 퇴직한 후 재산을 정리했다. 퇴직금과 저축한 돈 등 약 1억원을 마련한 후 2005년 북한으로 넘어갔다. 서울 중계동 임대아파트와 개인 승용차는 처분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갔다. 여러 정황을 보면 최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다 자진 입북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가지고 간 돈의 일부를 북한 당국에 바쳤고, 탈북을 용서받아 가족들과 재회해서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1995년에 탈북한 김아무개씨(남)도 2006년쯤 재입북했다. 그도 하나원을 나와 농협에서 근무했으며 입북 당시 약 3억원 정도를 소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4월 남한에 정착해 살던 이혁철씨(남)는 연평도에서 어선(8t급)을 절취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월북했다. 이씨는 이보다 두 달 앞선 2월에 꽃게잡이 선원으로 일하기 위해 연평도에 들어갔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에 따르면 이씨는 같은 탈북민인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제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집을 나와 밖으로 떠돌다 결국 월북을 선택했다. 2006년 3월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탈북한 박인숙씨(북한 이름 박정숙)는 북한 공작에 의해 재입북한 사례다. 박씨는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같은 달 국내로 들어왔다. 박씨는 서울 송파구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활했다. 그가 탈북했을 당시 북한에는 평양음대 교원인 외아들이 남아 있었다. 박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탈출한 후 탄광으로 추방됐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됐다. 보위부는 아들을 볼모로 박씨를 협박했다. 한 달 후인 2012년 5월말 박씨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며 중국을 통해 재입북했다. 그가 6월에 평양 기자회견장에 나오면서 재입북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입북자 중에는 간첩 의심자도 있어

2008년과 2009년 차례로 탈북한 김광혁·고정남씨 부부는 2012년 중국 선양을 통해 재입북했다. 20대인 이들은 남한에서 태어난 두 살짜리 아들까지 데리고 재입북을 감행했다. “남한 생활에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 재입북 이유다. 탈북민 출신으로 방송에서 이름을 알렸던 임지현씨(북한 이름 전혜성)도 재입북했다.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임씨는 19세였던 2011년 가족을 두고 혼자 탈북했다. 그는 중국에서 탈북을 도운 남성과 약 3년여간 동거하다가 2014년 태국을 거쳐 혼자 남한에 왔다. 2016년부터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러다 2017년 4월 중국으로 출국한 후 재입북했다. 재입북자 중에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인물도 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이아무개씨(남)는 2008년 초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넘어왔다. 이씨는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 교육을 받은 후 사회에 나왔다. 그러다 2009년 초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 탈북단체장은 “이씨가 하나원 내부를 촬영해 CD로 만들어 소지하고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잠적했다”고 전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김아무개씨(남)는 2008년 말에 탈북했다. 김씨는 남한에 정착한 후 뚜렷한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행적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김씨는 ‘탈북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탈북민 단체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그런 김씨가 2010년 2월에 느닷없이 자취를 감췄다. 김씨가 사라진 뒤에야 그의 행적 일부가 드러났다. 김씨도 앞의 이씨처럼 청진 지역에서 온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씨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가 대남부서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탈북민들은 김씨가 간첩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이아무개씨(남)는 1997년 6월에 탈북했다. 약 2년 동안 중국에 머무르던 그는 1999년 중국 공안에 체포된 후 강제로 북송됐다. 북한 보위사령부는 이씨를 정보원으로 포섭한 후 2000년 2월 위장 탈북시켰다. 이씨는 2002년 11월 베이징의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했고, 2003년 6월 하나원을 거쳐 대전에 정착했다. 동료 탈북민과 결혼도 했다. 이씨는 2004년 4월 북한에 다시 들어갔다. 북한에 있는 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압록강을 넘다가 북한 경비병에게 체포됐다. 보위사령부는 이씨에게 “탈북자동지회 등 남쪽 탈북자 단체에 가입한 뒤 회원증을 증거물로 갖고 재입북하라”라는 임무를 줬다. 이씨는 같은 해 5월19일 인천항을 통해 남쪽에 도착한 후 관계 당국에 자수했다.  

탈북-재입북-재탈북을 한 사람도 적지 않다

탈북민 중에는 영화 속 인물처럼 탈북-재입북-재탈북을 한 사람들도 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 남아무개씨(남)는 1996년 1월에 홍콩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왔다. 남씨는 하나원을 나온 후 식당을 운영하며 정착했다. 하지만 북한에 두고 온 부인과 아들 둘이 마음에 걸렸다. 탈북 4년째인 2000년 6월 그는 식당 운영자금과 대출금 등 약 7000만원을 가지고 중국으로 출국해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입북을 요청했다. 북한 당국은 남씨에게 온성에 있는 고급 사우나의 지배인 자리를 줬다. 2003년 10월 남씨는 두 번째 탈북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북한의 아내를 제외한 아들 둘과 동생을 데리고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왔다. 남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약 2년형을 살고 출소했다. 2009년 남한에 정착한 김광호·김옥실씨 부부는 북한에 남아 있던 장모와 처제·처남을 한국에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 브로커 비용이 부담되자 김씨는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 직접 북한에 들어가 남은 가족들을 탈출시키기로 한다. 2012년 중순 중국 선양에 있는 북한영사관을 찾아가 재입북 의사를 전한 후 고려항공 편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김씨 부부는 입북한 지 7개월 만에 아내와 한 살배기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두 번째 탈출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처남과 처제도 동행했다. 하지만 옌볜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김씨 부부와 딸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 남한으로 송환됐지만 북한 국적의 처제와 처남은 생사가 불투명하다. 1998년 국내에 들어온 유태준씨는 2001년 부인을 데려오려고 재입북했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돼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2002년 2월 재탈북해 국내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유씨는 북한과 관련한 망상장애를 앓아왔고, 2004년에 이복동생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징역 3년과 치료감호 10년 처분을 받고 복역했다. 2017년에는 나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78일 만에 검거되기도 했다.     

탈북민들의 3갈래 재입북 루트

탈북민들의 재입북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북한으로 다시 넘어갈 수 있다. 탈북은 어려워도 입북은 아주 쉽다는 뜻이다. 현재 탈북민들의 재입북 루트는 크게 세 갈래다. 첫째, 중국이나 제3국에 있는 북한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 공개적으로 넘어가는 방법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로 출국한 뒤 북한 측 요원들과 접촉하거나 대사관 등 외교공관을 통해 쉽게 입북할 수 있다. 현재 탈북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재입북 루트는 중국으로 출국한 후 북한대사관 측과 접촉해 재입북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북한 접경지대로 가서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는 것이다. 탈북 브로커 대신 가족들을 직접 탈북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루트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뒤따른다. 북한 당국에 적발될 경우 목숨을 내놓거나 장기간의 수용소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셋째,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하는 경우다. 실제 연평도에서 어선(8t급)을 타고 북한으로 넘어간 경우가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김씨처럼 강화도 수로 등 휴전선을 넘어가는 경우는 가장 위험한 방법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