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김수진·정윤식 교사
“교대에도 성교육 수업 없어…교사들 혼란”
교실에서 느끼는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떤가요.
김수진(이하 김) “어른이랑 똑같다고 보면 돼요. 성 고정관념이 고정관념이라고 느끼지도 못한 채 자랐기 때문에 처음 그걸 깨려 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워 해요. 그 대신 변화엔 어른들보다 훨씬 유연해요. 조금만 가르쳐도 빠르게 고치려 해요. 편견이 담긴 노랫말이나 광고 영상을 먼저 가지고 와서 ‘이런 거 좀 이상한 거 아니에요?’ 하기도 해요.”
정윤식(이하 정) “사실 고학년 중엔 이미 편견이 굳어 있고 혐오가 일상화된 친구가 많아요. 학교 안에선 고쳐지는 듯해도 가정이나 PC방으로 돌아가면 다시 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지도하면서 가장 고민인 부분이에요.”
김 “유튜브에서 인기 BJ들이 하는 말들을 그냥 따라 해요. 그 안에 혐오 표현이 상당히 많거든요. 이를 지적해 주면 ‘내가 좋아하는 BJ가 쓰는 말인데 이 사람이 잘못됐단 말인가’ 하며 가르침에 거부감을 가져버려요.”
아이들이 유튜브나 SNS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죠.
정 “여성 BJ의 외모를 평가하고, 춤을 추게 하는 모습들을 본 남자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여자 친구들을 조롱하고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곤해요.”
김 “요즘 ‘틱톡’이라는 동영상 촬영 앱이 아이들 사이에서 진짜 핫해요. 앱 자체가 얼굴 보정을 상당히 많이 해 주는데, 그 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그냥 빠져 있어요. 그만큼 실제 자기 모습에 불만을 갖고 ‘저 너무 뚱뚱해요’ ‘급식 조금만 먹을래요’라고 말하는 여자아이가 정말 많아요.”
“민원에 대한 보호 장치 없어 교사들 위축”
우리가 어릴 적 받은 성교육을 생각해 보면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김 “생물학적 기능 중심, 실제 아이들의 삶과 전혀 연관이 없는 교육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성교육과 성 평등 교육이 다른 파트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고요. 사실 교육대학교에서도 성교육을 가르치지 않아요. 교사들도 아이들의 성 관련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고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교육 당국의 성교육 표준안이 있지만 시대와 다르고, 그렇다고 다르게 수업하자니 민원 걱정도 생기고요.”
정 “예를 들어 피임과 관련한 교육을 할 경우, ‘그럼 아이들보고 콘돔을 사용하라는 거냐’ ‘성관계를 유도하는 거냐’라는 얘기부터 나오게 돼요.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한계를 느낍니다. 또 남교사 중에서도 성 평등 교육이 왜 필요한지 공감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성별 갈등을 얘기하려는 게 아닌데 말이죠.”
김 “성교육을 한 후 이렇게 민원이나 항의가 들어왔을 때 교사들을 보호해 줄 아무런 장치가 없어요. 교사들도 위축되죠. 그러니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문의해 오는 선생님들에게 우리만의 기준대로 ‘이렇게 하세요’ 확신을 갖고 얘기해 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지금 성교육이 1년에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 건가요.
김 “1년에 20시간 확보하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의무는 아니에요.”
정 “누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어요. 그래서 학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나 한 번씩 교육과정 설명회를 진행할 때 최대한 미리, 우리가 추구하는 성교육의 방향이나 내용을 설명해 주려 하고 있어요.”
학부모 반응은 어떤가요.
정 “좋다고 응원해 주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일부 ‘이것까지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느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가르침이 교실 밖으로 확산될 때 가장 보람"
성 평등 교육을 진행하며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 "졸업한 남학생이 연락을 해왔어요. 《82년생 김지영》 책이 막 나왔을 때, 관련 수업을 받은 우리반 학생이었어요. 당시 그 아이는 '역차별이다' '여자들은 돈도 안 내고 남자들이 더 차별 받는다'고 얘길 했었어요. 그런데 졸업 후 자기가 이 책을 다시 읽었는데 '그때 선생님 수업 내용이 맞았어요. 저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말하더라고요. 또 이제 고등학생이 된 한 친구는 청소년 단체 내 '성 평등 동아리'를 만들어서 어린 친구들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알려왔어요.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교실을 나가 올바른 인식과 목소리를 퍼트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기쁘고 감동이었어요."
정 "작년에 한 어머니에게서 받은 편지가 기억나요. 제 교육적 가치에 공감하고 있고, 본인 또한 힘을 얻었다는 말씀이었어요. 자신 역시 그동안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학부모였는데 이제 '나 자신'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알게 됐다면서요. 학생을 통해 그 가정에까지 배움이 확산됐다는 사실이 인상적이고 뜻 깊었어요."
등교 개학 후 어떤 수업을 진행할 예정인가요.
김 “일단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성별 혐오 표현을 바로잡는 수업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저희 둘 다 3학년을 맡고 있는데, 뜨개질 수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뜨개질이 여성적인 취미로 인지되고, 비교적 가치가 떨어지는 노동으로 치부되니까 직접 하면서 이 인식을 바로잡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정 “태어나 처음 뜨개질을 배우고 있어요. 아이들이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분리해 생각하는 걸 함께 뜨개질을 하며 깨나가고 싶어요. 《뜨개질을 하는 소년》이라는 동화와 엮어 진행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