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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적극성·끼 겸비…스포츠 스타들이 뜨는 이유
JTBC 《뭉쳐야 찬다》가 6~7%에 달하는 시청률로 일요일 종편 시청률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구가한다. 특이한 것은 이 프로그램에 연예인 스타 출연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뭉쳐 단체여행을 가는 《뭉쳐야 뜬다》에서 비롯됐다. 여기에서 고정 출연자였던 안정환을 감독으로 축구팀을 만든다는 새 기획을 시작했다.
보통은 새 예능 프로그램에 다양한 예능인들이나 아이돌 등을 배치할 것이다. 제작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뭉쳐야 뜬다》의 고정 MC였던 김용만, 김성주, 정형돈 이 세 명은 그대로 승계하되 그 외의 출연진은 전원 운동선수 출신으로 구성했다. 안정환이 감독으로 운동선수 출신 팀원들을 훈련시켜 사회인 축구팀과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천하장사 이만기, 농구 대통령 허재, 야구의 신 양준혁 등이 안정환 눈치를 보며 힘겹게 축구를 하는 상상은 이렇게 현실화됐다. 마라톤 이봉주, 레슬링 심권호, 사격 진종오 등 다른 스타 선수 출신도 가세했다. 제작진은 신규 출연진도 연예인을 제외하고 운동선수 출신으로만 구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서장훈이 방송가 주요 MC로 급성장했다. 《무한도전》 게스트로 주목받았던 서장훈은 예능계 본격 진출 보도를 극구 부정했다. 하지만 예능 PD들이 그를 그냥 두지 않았고 거듭된 출연 속에 《아는 형님》에서 결국 예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선언했다. 이후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입담과 장신 캐릭터로 활약 중이다. 육아예능을 통해 송종국, 추성훈, 안정환, 이동국, 박주호도 잇따라 주목받았다. 이 중에서 안정환은 육아예능 바깥으로도 영역을 확장해 주요 MC 중 한 명이 됐다.
요즘엔 현주엽 LG 세이커스 감독이 떴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갑질하는 농구 감독 역할로 나왔는데, 개구쟁이 같은 인간미와 폭발하는 먹성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기를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 그의 먹방이 매주 화제가 되더니, 현주엽과 LG 선수들 사이의 우여곡절이 시청자를 몰입시켰다. 급기야 프로농구에 대한 관심까지 이끌어내 침체됐던 농구를 살리는 기폭제 역할까지 하고 있다.
농구 대통령 허재는 거침없는 토크의 ‘예능 신생아’로 사랑받는다. 격투기 김동현도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예능계에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격투기 무대에서 ‘스턴건(전기충격기)’으로 불리던 그가 예능에선 ‘호들이’라 불린다. 호들갑스럽고 겁 많은 반전 캐릭터로 재미를 준다. 이 밖에 이만기, 박찬호, 김연경, 김병현 등 다양한 운동선수 출신들이 예능계의 한 축을 접수했다.
안정환·서장훈·현주엽부터 강호동·김병현까지
한 종목을 호령했던 한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체력이 많이 저하된 상태다. 관절도 삐걱거리고 체중도 늘었다. 그런 몸으로 생소한 축구에 도전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실수 연발에 지쳐 쓰러지기 일쑤다. 최고의 선수들이 평범한 아저씨 같은 허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미를 느끼게 하고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허재는 한때 거칠 것 없는 분노 폭발의 대명사였다. 다른 선수들도 최고봉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안정환의 눈치를 보며 순한 양이 돼 공을 찬다. 이런 ‘웃픈’ 모습도 재미 포인트다. 이 오합지졸 저질 체력의 아저씨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차츰 성장해 간다. 마침내 다른 사회인 팀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순간 시청자들이 그 성장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대리만족하게 된다. 축구팀 이야기가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다른 종목으로의 확장도 가능해 보인다. 허재의 눈치를 보며 안정환이 농구 드리블을 하는 그림도 현실화될 수 있다. 《뭉쳐야 찬다》가 뜨면서 예능계에 운동선수의 존재감이 확고해졌다. 스포테이너의 길을 본격적으로 연 것은 강호동이었다. 천부적인 코미디 연기 감각을 보유했던 강호동은 꽁트 코미디를 통해 예능계에 안착한 후 국민MC 반열로까지 성장했다. 여기엔 《1박2일》 리얼버라이어티를 통해 나타난 그의 체력, 카리스마, 먹성 등도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이것은 운동선수로서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에피소드 부자인 스포츠계 유명인들
연예계와 체육계는 원래 가깝다. 평소 잘 어울리기도 하고 TV를 통해 알려진 유명인이란 점에서 동질감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맥이 연결돼 예능 진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예능계에선 기존 예능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리얼리티가 강화됐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얼굴을 찾았다. 코믹 쪽으로 특화된 기존 예능인은 웃기려고 상황을 설정한다는 느낌 때문에 리얼리티에 맞지 않았다. 그때 빈자리를 메운 새 얼굴 중 하나가 운동선수들이었다. 운동선수는 꾸밈없는 언행을 한다고 간주됐기 때문에 리얼리티 포맷과 어울렸고, 신체조건도 좋다. 리얼리티에 따르는 ‘야생 고생 먹방’ 코드와도 아주 잘 어울렸다. 특히 방송 제작진이 스포츠 스타를 선호하는 것은 이들이 글자 그대로 스타이기 때문이다. 스타도 보통 스타가 아닌 국민영웅이다. 아이돌 스타는 중년 이상 국민이 모를 때가 많지만 스포츠 스타는 전 국민이 다 안다. 이런 인지도를 예능이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또 ‘에피소드’ 부자들이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던 국가대표 경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든가, 천하장사 이만기와 강호동 사이의 전성기 시절 신경전 등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이것이 웬만한 연예인들의 사생활 근황 토크보다 더 시청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PD들이 운동선수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 분야에서 최고에 오른 선수들은 보통 초인적인 노력을 했고, 극적인 실패담과 성공의 서사를 보유한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진정성이 우러나고 때론 인간적인 감동까지 준다. 이런 강점과 더불어 최근엔 운동선수들이 카메라 앞에서의 적극성, ‘끼’까지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테이너 전성시대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