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구상을 내놓았다.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내용이다. 비무장지대 안에 유엔 등 국제기구가 들어와 평화지대가 된다면, 한반도 긴장도 낮추고 북한의 체제 안전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9월25일 새벽(한국 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국제사회에 제안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빈곤퇴치·양질의 교육·기후행동·포용성을 위한 다자주의 노력'을 주제로 유엔총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의 일반토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해 남북·국제사회가 함께 한반도 번영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고, DMZ에 남북에 주재 중인 유엔기구와 평화·생태·문화와 관련한 기구 등이 자리 잡아 평화연구·평화유지(PKO)·군비통제·신뢰구축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DMZ의 평화지대화는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이 선언에서 남북은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충돌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고, 그 다음 달부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확성기방송·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며 그 수단을 철폐해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이 이미 합의하고 일부는 진행된 'DMZ 평화지대화'를 국제사회에 재차 꺼낸 것은 남북의 의지만으로는 실행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유엔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DMZ에 들어와 평화지대화를 추진한다면 북한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속도를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4·27 회담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DMZ 평화지대화 과정을 유엔이 참관하고 이행을 검증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남북 간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DMZ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DMZ에는 약 38만 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한국군 단독 제거에는 15년이 걸린다"며 "'유엔지뢰행동조직'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지뢰제거의 투명성·안정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DMZ를 단숨에 국제적 협력지대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를 실천해 나간다면 국제사회도 이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제 평화지대 구축은 북한 안전을 제도적·현실적으로 보장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한국도 항구적인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허리인 DMZ가 평화지대로 바뀌면 한반도는 대륙·해양을 아우르며 평화·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로 발전할 것"이라며 "동북아 6개 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의 비전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년 반, 대화·협상으로 한반도는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줬다"며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권총 한 자루 없는 비무장 구역이 됐고 남북은 함께 DMZ 내 초소를 철거해 대결의 상징 DMZ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DMZ 평화지대화 제안의 바탕에는 △전쟁 불용 △상호 안전보장 △공동 번영이라는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3대 원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 불용의 원칙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로,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 비극이 있어선 안 된다"며 "이를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정전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상호 안전보장 원칙에 대해서는 "한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북한도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길 원한다"며 "서로의 안전이 보장될 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적어도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국제사회도 한반도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주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번영 원칙과 관련해서는 "단지 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서로 포용성을 강화하고 의존도를 높이고 공동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게 진정한 평화"라며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경제는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하고 동아시아와 세계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급변한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이 한반도의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동력이 됐다"며 "지금 한반도는 총성 몇 발에 정세가 요동치던 과거와 분명하게 달라졌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장은 여전히 건재하고 남·북·미는 비핵화·평화뿐 아니라 그 이후 경제협력까지 바라보고 있다"며 "한국은 평화가 경제협력으로 이어지고 경제협력이 다시 평화를 굳건하게 하는 평화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또 "한반도 평화는 여전히 지속하는 과제이며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한국은 북한과 대화를 계속해 나가며 유엔 회원국들의 협력 속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길을 찾아내고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역 평화 및 안정 문제와 관련해 "동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침략과 식민지배의 아픔을 딛고 상호 긴밀히 교류하며 경제적인 분업·협업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발전을 이뤄왔다"며 "자유무역의 공정한 경쟁질서가 그 기반"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 위에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의 가치를 굳게 지키며 협력할 때 우리는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 문제를 수출 규제로 표출하며 과잉 대응하는 일본을 겨냥한 언급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이웃 국가들을 동반자라 생각하며 함께 협력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아시아 전체로 '사람 중심, 상생 번영의 공동체'를 확장하고자 한다"며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그 초석을 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한국은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평화’ ‘인권’ ‘지속 가능 개발’이라는 유엔 목표를 실현하는 데 책임·역할을 다하고 유엔의 궁극적 이상인 국제 평화·안보가 한반도에서 구현되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며 "국제사회의 지지·협력으로 '칼이 쟁기로 바뀌는' 기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