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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 결혼·출산 파업 통해 기존 체제에 의문 제기

0.98명. 작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다. 통계청은 이런 내용이 담긴 ‘2018년 출생통계(확정)’ 자료를 8월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5개국 가운데 합계출산율 0명대는 한국이 유일하다.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가임여성 감소, 출산연령 상향, 혼인 감소 등이 꼽힌다. 출산율이 높아질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이 2019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주 출산연령인 만 30~34세 여성 인구는 2017년 169만명에서 2018년 156만명으로 5% 감소했다. 여기에 평균 출산연령은 32.8세로 2017년에 비해 0.2세 높아졌다. 혼인 건수는 2012년 이후 매해 감소하고 있다. 20~49세 여성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9%는 독신이다. 2000년 29.6%이던 여성 독신자 비율은 2016년 49%로 높아졌다. 최근에는 결혼 적령기 남성의 결혼 감소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남성 결혼 적령기로 분류되는 만 30~34세 남성의 결혼 건수는 2017년 전년 대비 10.3% 감소했다. 정부가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수립 시행하면서 지금까지 쏟아부은 예산은 무려 150조원이다. 출생아 한 명당 투입된 예산은 2006년 465만원에서 2018년 6669만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그렇지만 저출산 기조는 바뀌기는커녕 더 가속화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출생아 수 감소는 지속적인 흐름으로 나타나지 않고 계단형으로 급격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미리 대응하는 것이 힘들다. 합계출산율 2명은 통상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간주된다. 한국에서 합계출산율 2명 선이 무너진 것은 언제일까? 1970년 4.53명을 기록했던 합계출산율은 13년 후인 1983년 2.06명을 기록할 정도로 급속히 낮아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시기부터 인구 관리 정책이 시행됐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출산 억제에 초점을 맞춘 인구정책은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유지되다 1996년이 돼서야 폐지됐다. 정책의 관성이 현실에 대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작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5개국 중 합계출산율 0명대는 한국이 유일하다. ⓒ 연합뉴스
작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5개국 중 합계출산율 0명대는 한국이 유일하다. ⓒ 연합뉴스

저출산은 현실에 대한 저항

21세기를 맞이한 2001년과 2002년 우리 사회는 다시 급격한 출생아 감소라는 충격을 경험했다. 2001년 –14.35%의 가장 큰 출생아 감소와 더불어 연간 신생아 60만 명 선이 무너졌다. 2002년에는 –12.76%의 감소에 더해 출생아 수는 40만 명대로 감소했다. 앞선 1983년과는 달리 당시 참여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기본법 제정,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 대처했으나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시야를 넓혀 우리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을 살펴봐도 다들 저출산으로 고민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마카오(0.95명), 싱가포르(0.83명), 대만(1.12명)이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1.6명) 역시 계속 낮아지는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많은 인구에 기반한 저렴한 인건비, 높은 인구밀도를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대도시 주택가격 상승, 과도한 교육열 등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다수가 낙오했으며, 결국 이는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게 만듦으로써 저출산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최근 들어 청년들에 대한 일자리 공급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이 세대들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이라는 경기에 출전하는 대신 경기장을 떠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노동자가 파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자신의 요구와 의지를 받아들여줄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동아시아 청년 세대 역시 출산 및 결혼 파업을 통해 기존 체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극복 아닌 적응을 준비할 때

인간은 문제가 나타나면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경우 그 문제에 적응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에서 점차 적응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변화되는 환경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극복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청년실업, 임금 불평등, 주택가격 상승, 환경오염 등의 문제는 인구 증가가 아닌 인구 감소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담당하고 있던 노동의 영역을 급속히 대처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발전은 일차적으로 인간을 노동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후 새로운 직업과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고용이 필요한 흐름을 보여온 것이 산업혁명 이후 기술 진보의 일관된 흐름이다. 일자리 감소보다 더 빠른 출생의 감소는 사회적으로 볼 때 기술 발전으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함으로써 보다 빠른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저출산은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미래의 부담을 덜어주는 긍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내수경제가 아닌 수출을 통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인구 감소가 발생하더라도 이로 인한 경제적 위축은 경제구조상 크지 않으며, 대외교역 비중의 확대 등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연금은 피라미드형 인구구조와 제조업 위주의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상황을 기본으로 간주한 복지체제로서, 최근 인구 및 고용형태의 변화를 감안할 때 지속 가능성은 높지 않다. 후속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복지체계를 마련한다면 저출산은 결코 복지사회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0명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에서 필요한 것은 돈과 노력이 아니다. 출생률 증가를 위해 노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의 노력 부족이 아닌 창의력 부족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비롯해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산업국가의 공통점은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지금의 저출산 흐름은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집단적 인식의 결과다. 단순히 어린이집이 더 많아지고, 학교에서 더 늦게 아이들을 봐준다고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울 만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삶을 살 수 있고, 타의에 의해 경쟁에 내몰리지 않으며, 결혼이라는 제도에 기대지 않아도 평등하게 삶을 살 수 있고,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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