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정형 투자자에게도 초고위험 상품 권유…시중은행 리스크 관리 성패 갈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이 ‘표준투자권유준칙’을 어기고 ‘공격투자형’이 아닌 ‘안정형’ 투자자에게도 초고위험 상품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을 권유 및 판매한 정황이 드러났다. 투자권유준칙이 있음에도 투자자에게 맞는 적절한 상품 권유가 이뤄지지 않아 해당 준칙이 허울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통해 리스크 관리에 철저했던 은행들은 논란을 피해 가면서 DLS를 판매한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 간 희비가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금융권 및 DLS 투자자 등에 따르면 시중은행을 통해 DLS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은행이 ‘공격투자형’의 투자성향이 아닌 일반 투자자에게도 DLS 상품을 권유 및 판매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DLS는 금리·원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이며, DLF는 은행에서 DLS를 사모펀드 형태로 편입해 판매한 파생결합펀드를 의미한다. DLF는 파생상품투자펀드의 일종으로 투자상품 위험등급 분류에서 1등급에 해당하는 ‘초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진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르면 DLS 상품과 같이 원금비보장형인 초고위험 상품은 원칙적으로 ‘공격투자형’인 투자자에게만 권유 및 판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DLS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들은 투자권유준칙을 어기고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일반 투자자에게도 초고위험군에 해당하는 DLS 상품을 권유 및 판매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경제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8월23일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기 판매 혐의로 우리은행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 연합뉴스
경제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8월23일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기 판매 혐의로 우리은행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 연합뉴스

불완전판매 정황 곳곳에서 포착

우리은행과 40년 넘게 거래해 온 VIP 고객이라는 주부 이모씨(61)는 담당 프라이빗뱅커(PB)가 자신의 안정형 투자성향을 알고 있었음에도 DLS 상품을 추천했고, 판매를 위해 이씨가 작성하지 않은 투자성향 설문을 임의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나는 무조건 제1금융권에서만 거래하고, 담당 PB도 내가 안정형 투자성향인 것을 알고 있었다”며 “당시 원금 손실 우려가 없고 선진국 독일의 채권이니 독일이 망하지 않는 이상 손실이 날 일이 없다며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PB의 말을 믿고 4월경 우리은행 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F에 가입했다. 그러나 현재 남은 투자금은 700만원으로, 투자 원금에서 95%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하나은행을 통해 DLS 상품을 가입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은행과 20년 넘게 거래해 왔다는 A씨(59)는 “이사 자금을 위해 예금에 넣어둔 돈이라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면 상품에 가입하지 않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었다”며 “나는 공격투자형 투자자가 아닌데도 DLS 상품을 권유받았다”고 주장했다.

투자권유준칙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50조 1항에 따라 정해진 내용으로 법령과 마찬가지로 구속력을 지닌다. 그럼에도 일부 은행권에서는 준칙을 어기고 공격투자형이 아닌 투자자에게도 DLS와 같은 1등급 초고위험의 금융상품을 권유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대순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는 “준칙도 법령에 따라 정해진 사항이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준칙에 맞게 투자 권유를 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부적절한 투자 권유 사례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이에 대한 확실한 처벌 규정이 미비하고, 처벌된다 해도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DLS 사태가 드러낸 건 비단 투자권유준칙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시중은행의 리스크 관리 실태 역시 드러났다. DLS 상품 전체 판매액수의 96%를 팔아치운 우리·하나은행은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울상인 반면 리스크 검토를 통해 사전에 논란을 방지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미소를 짓는 모양새다.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DLF를 판매하지 않은 신한은행은 해당 부서 실무진에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상품 판매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실무진이 투자상품을 우선 검토한 뒤 상품선정협의회가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실무진은 해당 상품이 수익률 대비 손실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고 투자상품으로 내놓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실무진 검토 과정에서 투자상품으로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내려져 상품선정협의회까지 올라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하나 울고 신한·국민 웃었다

262억원 규모로 비교적 적은 판매실적을 올린 국민은행은 DLS의 기초자산인 해외금리가 낮아질 것을 예상하고 금리가 떨어지는 쪽에 투자하는 역발상으로 상품을 설계해 리버스 구조로 오히려 수익을 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자체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상품 판매의 적합성을 따졌으나 결과는 달랐다. 결국 이번 사태로 두 은행은 고객 신뢰에 금이 가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경우 우리금융지주가 올해 초 재출범하면서 아직 금융그룹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며 “자산운용사를 최근 인수했으나 아직 시너지 효과를 내긴 이른 시점인 데다 증권 부문도 비어 있어 DLS 상품에 대한 리스크 검토 및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나은행 역시 최근 비은행 계열사 인수합병 등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수수료 수익 확대에 욕심을 내면서 이번 사태에 휘말리게 됐다”며 “자산관리 명가로 불리던 하나은행의 명성에 상당한 오점을 남기게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