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이미 해결”…국제적 여론전도 시작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 등 일본 전범기업에 동원됐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긴 소송이 지난해 11월29일 승소 판결로 끝났다. 한국 사법부가 일본 전범기업들에 책임을 물어 피해자들에게 8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지만, 일본 정부는 직접 나서 판결에 반발했다. 전범기업도 책임을 부인하며 판결에 불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전범기업에 대해 자산 압류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 “매우 유감”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배상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1월6일 방송된 NHK ‘일요토론’ 프로그램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의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과 관련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는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다. 정부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강제 집행에 나선 이유는 전범기업들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일철주금 피해자들은 지난해 말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강제 집행을 신청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미쓰비씨중공업에 대한 한국 내 자산 압류 절차에도 나선다. 미쓰비시가 패소에 대비해 대부분의 유형 자산을 본국에 보냈지만, 피해자 측은 무형 자산인 특허권 등을 찾아 내 이에 대한 강제 집행에 나설 방침이다.
전범 기업들이 이의 신청을 하는 등 일본 당국에서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철저히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에 ‘일한청구권 관련 문제대책실’을 설치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고, 전범기업들에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
특히 아베 총리는 새해 들어 인터뷰와 국회 발언 등을 통해 강경 발언을 더 쏟아내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하며 한국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일례다. 피해자들이 강제로 징용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사로 노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월1일 국회에 출석한 아베 총리는 ‘징용공 판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의 질문에 “이번 재판을 제기한 원고는 징용이 아닌 모집에 응했다”며 “징용공이 아니라 ‘옛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판결 직후부터 모든 문서에 ‘징용공’ 대신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쓰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1월1일 방송된 TV아사히 인터뷰에서도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국제법으로 봐도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며 “사태의 추이에 따라 국제재판 등 모든 옵션을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강경 발언을 계속 해나가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소송에 연루된 기업들을 상대로 대응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요미우리신문은 1월1일 “외무성, 경제산업성, 법무성 등 유관 부처가 공동으로 해당 기업들에 배상·화해에 응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설명회를 2일까지 3회 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NHK는 일본 정부가 설명회를 개최해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상황 파악에도 나섰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유럽과 미국을 상대로 한 여론전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