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찬반 대립 본격화…'北 찬양' 논란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예고됐던' 남남(南南)갈등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갈등 양상은 찬반 대립에서 '김 위원장 찬양' 논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누가 환영했다고"…'예고된' 갈등 본격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2월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시기와 관련해 "가급적 연내 답방하는 방향으로 북 측과 협의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취재 열기가 가중되자 기자단에 단체 메시지를 보내 "북한으로부터 소식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지만, 기본적으로 김 위원장 연내 답방이 임박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짙다. 이미 물밑 준비 중인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OK' 사인만 기다리는 상태다.
김 위원장의 올해 안 서울 답방은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예고됐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부의 반대를 뭉개고 방남을 약속했다. 참모들의 만류에는 경호·의전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에서 보수층 등 김 위원장 방남에 부정적인 여론이 상당한데다 서울은 판문점이나 평양만큼 통제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 측에서도 엇갈리는 찬반 여론 속 남남갈등이 불거질 경우를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3년차를 앞두고 정국 운영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컸다.
11월 달력이 찢긴 뒤 예고된 갈등은 현실화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2월5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자세한 조사 개요 및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도움 되므로 환영한다'는 응답은 61.3%로 집계됐다.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불과하므로 반대한다'는 응답은 31.3%였고, 모름·무응답은 7.4%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터져나왔다. 자신을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내 주변에서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는 거 환영한다는 사람 단 한 명도 못 봤다"면서 여론조사 결과에 의문을 표했다. 다른 네티즌은 6·25 전쟁을 상기하며 "우리 민족 수백만명을 학살했던 북한의 수장이 남한에 오는데 환영하란 말이냐"고 비판했다. 반면 "남북이 하나돼 지긋지긋한 전쟁의 공포와 대결로부터 벗어나자. 이것 만이 평화와 경제 번영의 유일한 길"이라며 김 위원장 답방을 환영하는 의견도 있었다. 아울러 "반대 31.3%는 남북 평화와 통일을 두려워 하는 이들"이라며 반대 여론을 다시 비난하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관련 기사 댓글란은 수많은 찬반 의견이 상충하며 소리 없는 전쟁터로 변했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12월 5일 국회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 방남을 놓고 여러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며 "동의를 못하고 걱정하거나 북한 비핵화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어 일련의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도 "보혁 간 상충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있는데, 지금도 하루에 몇 개씩 (김 위원장) 팬클럽이 늘어난다"고 전했다.
'찬반' 대립에 더해진 '찬양' 논란
애초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시 예상할 수 있는 돌발변수는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보수 단체들이었다. 최근엔 여기에 더해 김 위원장 찬양 단체 논란도 표면화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집회·시위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매우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KBS 시사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에선 12월4일 '김정은 위인 맞이 환영단'의 김수근 단장을 인터뷰했다. 김 단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체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김 위원장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하며 "김 위원장의 방문을 환영한다. 나는 공산당이 좋다"고 해 화제가 됐다.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선 김 위원장에 대해 "우리 정치인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을 봤다. (김 위원장의) 겸손하고, 지도자의 능력과 실력이 있고, 지금 (북한) 경제 발전이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세습과 인권 문제를 놓고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에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고,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이나 푸틴(러시아 대통령)은 20년 넘게 (집권)하는데 왜 거기는 세습이라고 이야기 안 하느냐"고 반문했다.
해당 방송 후 김 단장의 발언은 물론, 방송 전파를 통해 내보낸 프로그램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KBS 공영노조는 "KBS가 김정은 남한 방문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총대라도 맨 것인가"라며 "국민 모두로부터 수신료를 받아 운영되는 국가 기간방송이 어떻게 현행법에 반국가 단체로 규정된 북한의 김정은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발언을 그대로 방송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답변이 늦어지는 것을 두고 여러 갈등 요소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도 한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추측한다. 만약 주말을 넘겨서까지 북 측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면, 답방이 내년 초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 국정 지지도 하락세 등을 끊어내기 위해 김 위원장 서울 답방이 절실하다"면서도 "대북 정책 기대감이 예전만 못한 가운데 김 위원장 방남은 아주 성공적으로 이뤄지며 남남갈등까지 해소하고 가야 겨우 효과가 날 듯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비핵화 협상 국면 장기화에 따라 정부의 선(先) 변화, 후(後) 갈등 관리 기조에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늦어진 북·미 관계 촉진, 남북 경제협력 등에만 올인하다가 '여론'이란 디테일을 놓치며 화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통일까지 고려한다면 남남은 물론 북북(北北)갈등에까지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소장은 "북한의 2400만 동포들 간 엄청난 한들이 서로 존재할 것이다. 통일이 되더라도 이런 갈등 속에서 자기복수·자기구제 등이 수없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도 친일 문제를 잘 청산하지 못해서 우리가 안고 사는 것처럼 통일 후 북북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하면 껍데기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