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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년 만에 영화 《뷰티풀 데이즈》로 컴백한 이나영

생각 외로 달변가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되물었고 기자의 생각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으며 예민하지도 않았다. 휴대폰에 메모하기보다 연필과 수첩을 이용한다는 그녀는 ‘신비주의’라는 수식어보다 ‘아날로그’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녀가 편안해 보였다. 영화 《하울링》 이후 6년 만의 컴백이다. 그녀를 돌아오게 만든 작품은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다.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엄마(이나영)’와 14년 만에 그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장동윤) 모자(母子) 사이에 숨겨진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나영은 한 여자의 굴곡진 삶을 연기한다.  

 

ⓒ 이든나인 제공


 

오랜만의 인터뷰다. 기분이 어떤가.

“떨리긴 하지만 자신 있게 선택한 작품을 보여 드리러 나온 자리라 기분 좋아요. 하고 싶은 걸 했고 작품도 잘 나와서 만족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평범하게 지냈어요. 공백이 길어진 건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작품으로 자신 있게 연기하고 싶어서예요.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부담도 컸지만 그럴수록 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 이어 이종석씨와 호흡을 맞추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곧바로 하게 된 것처럼 인연이 되는 작품을 만나면 쉬지 않고 연기를 할 거예요.”

독립영화로 복귀한 것도 의외다.

“평소 좋아하는 장르예요. 특유의 매력이 있잖아요. 특히 우문기 감독님의 《족구왕》을 재미있게 봤어요. 독립영화는 촬영 회차가 적기 때문에 현장에서 최대한 집중을 해야 해요. 그래서 그런지 한 장면을 끝내면 엄청난 희열이 느껴지기도 해요(웃음). 앞으로도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돼요.”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대단한 일이 아닌데 알려져서 민망합니다. 많은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좋았고,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확신이 들었고, 미팅을 한 뒤에는 신뢰가 생겼어요. 촬영에 들어간 순간부터 감독님에게 의지했고 디렉션을 따랐어요. 제작사에서 제시한 출연료가 있었지만 공간을 비롯해 영화가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받지 않았어요.”

윤재호 감독은 단편 다큐멘터리 《약속》(2010), 《북한인들을 찾아서》(2012), 《마담B》(2016), 《히치하이커》(2016)로 분단의 현실을 담았다. 중국으로 넘어간 북한 여성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마담B》는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뷰티풀 데이즈》는 윤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뷰티풀 데이즈》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장르도 좋았고, 캐릭터도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윤재호 감독님의 전작인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이번 작품 역시 허투루 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예요. 극한의 사건과 상황이 이어지는 게 불편하지 않게 전개되는 이야기 방식도 좋았어요. 영화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는 이름이 없어요. 그저 ‘엄마’로 통하는데 이 점도 좋았고요. 이름이 없다는 점이 ‘이방인’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탈북 여성’ 역할이다. 힘들진 않았나.

“우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더군요. 스스로 캐릭터를 분석하기엔 ‘살아가는 여자, 살아가야 할 여자’였어요. 생존을 위해 탈북을 하고 살인을 저질러요. 어릴 때 갖가지 일을 겪어서인지 30대가 되니 큰일에도 놀라지 않게 돼요. 14년 만에 아들을 만났는데도 반가운 기색이 없죠. 그래서 이 여성의 삶을 눈동자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눈동자를 부각하는 클로즈업 촬영을 좋아해요. 이 여자의 삶을 떠올리며 눈동자에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어요.”

10대부터 30대를 연기하는 역할이라 의상에도 눈길이 갔다.

“작품을 결정할 때 입을 옷을 상상하는 편이에요. 근데 이번엔 상상이 안 됐어요. 시각적으로 제대로 보여 드리면서 생소함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구제 시장을 직접 돌아다녔어요. 같이 다니고 싶었는데 옷을 갈아입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시장에 가면 서로 사진을 공유하며 옷을 선택했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부여잡고 있었죠. 예산이 적으니 신중해야 했거든요(웃음).”

전체적인 색감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영화 속 제 머리 색을 보면, 20대 때는 금발, 30대는 빨간 머리를 했어요. 자세히 보면 색이 고르지 않고 뿌리는 검은색이죠. 일부러 허술하게 염색을 했어요. 여러 번 탈색했더니 지금도 머리카락이 계속 끊어지고 있지만(웃음), 이 색감 역시 이 영화를 표현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뿐만 아니라 윤 감독님이 기획 단계부터 구성을 신선하게 했어요. 공간별로 분위기와 색감을 달리했죠. 예를 들면 중국에 있는 남편을 만날 땐 푸른빛, 과거 이야기는 붉은 조명, 현재의 모습은 머리 색깔과 재킷 등을 붉은 색깔로 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국내에 우리 영화 같은 색감의 영화가 많지 않거든요.”

영화는 한 여자의 삶을 따라가며 가족에 대해 말한다. 이나영에게 가족의 의미는 뭔가.

“저는 부모님께 짜증도 많이 내고, 그러면서 후회하고, 또 서로 보듬으며 살고 있어요. 거창하지 않아요. 대화가 없어도 밥상에 둘러앉아 된장찌개를 나눠 먹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엔딩 장면이 좋았어요. 다시 만나 가족, 그리고 새롭게 가족이 된 사람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조용히 된장찌개를 먹어요. 그 모습이 은근히 따뜻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흰밥에 된장찌개를 부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제 아이디어예요. 제가 그렇게 먹거든요(웃음).”

‘신비주의’라는 말을 듣는다.

“숨기는 게 아니라 진짜 특별한 게 없어요. 저희 가족도 똑같이 밥 해 먹고, 육아하며 그렇게 살아요. 어느 분들은 저희가 영화같이 살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냥 삶이에요. 심지어 저희 부부는 말도 많아요. 남편과 절친한 친구처럼 지내요. 다양한 곳을 다니진 않지만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면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정선에서 한 스몰웨딩이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렇게 이슈가 될지 몰랐어요(웃음). 저희는 그저 좋아하는 공간에서 기본에 충실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거든요. 국수를 먹고 싶어서 국수를 대접했던 거고요. 요즘도 가끔 남편과 시댁이 있는 강원도 정선에 가요. 휴대폰에서 멀어질수록 새로운 느낌이 생기거든요.”

남편인 원빈씨의 컴백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영화 《아저씨》 이후 8년째 공백이다).

“저와 비슷한 이유예요. 장르물 위주의 시나리오가 많다 보니 공백이 길어지는 것 같아요. 휴머니즘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직 그런 작품이 많지 않아 결정을 못 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한국영화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행복에 대해서 말했다.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특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런 걸 ‘소확행’이라고 하죠? 사실은 오늘 처음 배운 말이에요.” 이나영은 마음도 말투도, 잔잔했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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