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백, 자신 수사한 경찰관에 앙심 품고 거짓 진술 강요 “타깃은 황운하”
검찰이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반(反)검찰 성향인 황운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현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노리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한 의혹은 이씨를 수사했던 박아무개 전 서울청 형사과 폭력계 반장의 뇌물 사건 재판에서 불거졌다. 박 전 반장은 성매매 업소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박 전 반장에게 앙심을 품은 이씨가 위증을 교사해 뇌물 혐의를 씌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수사책임자였던 황운하 당시 형사과장까지 엮으려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황 청장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검찰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황 청장은 “검찰은 나의 직속 부하직원이었던 박 전 반장을 구속해서 압박하면, 나에 대한 허위사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검찰은 조직을 위해서라면 사건을 조작하기까지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사건의 주임검사는 김태권 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경찰의 수장이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현재 뇌물죄로 기소됐는데, 조 전 청장의 사건에서도 검찰의 표적수사·수사조작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7월26일자 “[단독]판사 스폰서 건설업자 ‘검찰 협박에 거짓 증언’” 기사 참조).
이경백 수사 경찰관, 뇌물죄 혐의 벗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지난 11월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특가법) 뇌물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박 전 반장)은 서울 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하며, 동료 경찰관 정○○이 유흥주점 등 불법 성매매를 일삼는 10여 개의 업소로부터 단속방지·단속정보 제공·단속무마 등의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금품을 수수하며 업소들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고인은 정○○이 수수한 금품 중 일부를 받아내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은 2007년 8월부터 2008년 7월까지 12회에 걸쳐 300만원씩 모두 3600만원을 건네받았다.”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경백 리스트’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사건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박 전 반장은 2007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서울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했고, 2010년 2월부터 2011년 7월까지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일했다. 특히 2010년 3월부터 7월까지는 서울청 형사과 폭력계 폭력2팀에서 근무하며 서초경찰서 강력6팀과 함께 ‘룸살롱 황제’ 이씨에 대한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위반(성매매 알선 등)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2010년 2월경 실종신고됐던 가출 청소년이 이씨가 운영하던 유흥주점에서 일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씨는 1999년부터 서울 중구 북창동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에는 서울 강남 일대까지 진출해 불법 카지노와 유흥업소를 운영했다. 2010년에는 이씨가 운영하는 유흥업소가 12개에 달했다.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소관이다. 그러나 조현오 전 청장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형사과에 이 사건을 맡겼다. 당시 서울청 형사과장을 맡고 있었던 황운하 청장과 이씨의 악연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황 청장은 이 사건으로 다시 한번 검찰과 대립하게 된다. 사건 초기부터 불꽃이 튀었다. 경찰은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로 이씨를 긴급체포했는데 검찰이 이를 불승인한 것이다. 황 청장은 격분했고, 언론 브리핑에서 긴급체포를 불승인한 검사 실명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황 청장은 “이씨가 체포될 때 서울중앙지검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경찰한테 긴급체포되면서 검찰한테 전화를 했는데 긴급체포가 곧바로 불승인된 것”이라면서 “검사가 이경백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아서 수사지휘권을 사적으로 남용한 것이다. 검찰조직이 얼마나 부패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24페이지 기사 참조).
1억7000만원 뇌물죄는 수사도 안 한 검찰
황 청장은 이씨의 비호세력을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씨는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황 청장은 “이경백은 현장 경찰관을 푼돈으로 관리하고, 정작 자신의 비호세력이 될 만한 사람들은 검찰에 구축해 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면서 “이경백은 결국 경찰수사 단계에서 비호세력을 한 명도 얘기하지 않았다. 검찰과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 청장의 생각대로 이씨는 2012년부터 검찰에 뇌물을 상납받은 경찰들을 불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18명의 전·현직 경찰관을 구속했다. 이런 와중에 박 전 반장의 사건이 터졌다. 박 전 반장의 동료였던 정씨가 유흥업소 운영자들에게 1억7000만원의 뇌물을 받아 3600만원을 박 전 반장에게 건넸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이다. 검찰은 그해 6월 박 전 반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3000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고 가중처벌(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는 특가법을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 번째, 검찰은 유흥업소 운영자에게 1억7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스스로 시인한 정씨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1억원 이상의 뇌물 수수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죄다. 정씨에 비해 4분의 1 수준의 뇌물을 받은 박 전 반장만이 수사 대상이 됐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씨는 1억7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자백하였음에도 이에 관한 추가적인 조사나 아무런 징계처분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2014년 명예퇴직까지 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정씨가 형사상, 신분상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피고인(박 전 반장)에게 뇌물성 금전을 교부하였다고 적극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검찰은 정씨를 검사실로 불러 조사할 때 구속돼 있던 이씨도 불러 함께 조사를 했다. 정씨는 2012년 6월11·15·19일, 8월2일 네 차례에 걸쳐 서울지방검찰청 1104호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이씨와 무려 3번(6월11·15·19일)이나 함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정씨의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 정씨의 뇌물 1억7000만원 중 이씨가 준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이는 정씨와 이씨 모두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검찰 소환일정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이씨와 정씨의 소환일자 중 3일이 겹치는 점에 비추어 같은 검사실에 소환된 이씨와 정씨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씨의 진술 여하에 따라 징계, 나아가 형사처벌이 문제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있었던 정씨를 회유하여 피고인(박 전 반장)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피고인에 대한 뇌물공여 사실을 진술하도록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운하 노리고 검찰이 사건 조작”
이씨와 정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로, 이씨는 정씨의 비위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으며 이를 협박해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법정에 나와 검찰 진술서가 이씨의 협박에 의한 거짓이었음을 직접 증언했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을 때 정말 두려웠다. 당시 경찰관이 검찰에 가면 다 구속됐다. 검찰에 들어갔더니 이씨가 있었다. 이씨는 ‘형님(정씨)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진술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불법업소에서 받은 돈 중 (매달) 300만원을 피고인(박 전 반장)에게 줬다고 허위로 진술했다.”
문제는 검찰이 이씨의 이와 같은 위증교사를 방조 내지는 동조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검찰은 이씨가 정씨를 만날 수 있도록 해 협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이씨는 검찰의 소환일정을 미리 알고 있기까지 했다.
“이씨 또는 이씨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 검찰에서 부르면 걱정하지 말고 출석하라고 했다. 그 후 검찰에 소환돼 갔더니 이씨가 있었다.”
또한 이씨는 검찰의 수사 방향까지 알고 있었다. 이씨가 수사 타깃을 말해 주는 대목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다음은 또 다른 증인인 김아무개씨의 증언이다. 김씨는 박 전 반장에게 900만원을 받았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이경백이 ‘타깃은 형이 아니다. 피고인(박 전 반장)과 황운하가 타깃이다. 형은 걱정하지 말고 검찰에서 물어본 내용에 진술 잘하라. 형이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하라’고 했다.”
이씨는 자신을 검거한 박 전 반장과 이를 총괄한 황 청장에게 앙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이처럼 석연치 않은 수사를 벌인 것일까. 황 청장은 이번 사건의 경우 이씨의 긴급체포를 불승인한 검사 이름을 공개했고, 그 이전부터도 ‘검찰 저격수’로 유명했다. 2011년에는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검찰과 대립하기도 했다. 황 청장은 “검찰은 사건을 조작하기도 한다. 궁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의 사건을 덮어주면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사건도 조작하려면 건더기가 있어야 한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가지고 나를 엮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면서 “내 직속 부하가 구속될 것 같은 위기에 처했고, 직속 부하를 협박하면 없는 얘기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박 전 반장을 통해 소설 하나 써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청장과 함께 대표적인 반검찰 인사로 이경백 사건 당시 경찰청장을 지낸 조현오 전 청장도 “검찰의 표적수사·사건조작에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전 청장은 건설업자 정 아무개씨로부터 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기소됐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1심을 깨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씨가 대법원에 “검찰이 나를 협박해 모든 증거를 조작했다”는 양심고백을 담은 자필 진술서를 보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진술서에 따르면, 정씨는 “수사 과정 자체가 회유와 협박의 연속이었다”면서 “조현오와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떳떳하다는 취지로 여러 번 검사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러나 검사는 뇌물을 줬다고 진술하지 않으면 횡령죄로 잡아 넣겠다고 협박했다. 어쩔 수 없이 위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