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권 ‘개혁 대상’ 檢, ‘박근혜 수사’에 사활 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검찰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밀리는 쪽은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박 전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으로 ‘구속 수사’라는 치욕을 당할 수 있다. 검찰은 차기 정권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검찰에서는 최정예 칼잡이들이,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동고동락한 호위무사들이 나선다.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다. 대선이라는 태풍이 눈앞에서 불고 있다. 정치적 외풍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수사 시점에 대한 갑론을박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1600여만 촛불로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던 국민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국민들은 ‘진실 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원하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을 촉구했던 촛불집회에서 항상 흘러나왔던 노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는 촛불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 3월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사저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처음으로 밝힌 자신의 입장이다.
‘뇌물죄’ 적용되면 구속 수사 가능성도
박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진실’은 단순명확하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내용은 물론 헌재가 인정한 탄핵 사유 역시 모두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향후 검찰수사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13개다. 지난해 발족한 검찰의 1기 특수본이 8개를 적용했고, 박영수 특검팀이 5개를 추가했다. 크게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 비밀누설,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제3자 뇌물수수로 분류할 수 있다.
핵심은 역시 뇌물죄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약 300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라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검에 의해 이미 구속됐다. 뇌물죄에서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뇌물을 받은 사람을 가중 처벌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1기 특수본 때 재벌기업들을 강압에 의해 출연금을 낸 ‘피해자’로 규정하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권남용을 적용했다. 3월6일 출범한 2기 특수본이 특검의 ‘뇌물죄’ 판단을 따를 경우 1기 특수본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헌재 역시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의 설립취지나 운영 방안 등 구체적 사항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 경제수석이 주도해 추진된다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했다”면서 기업들의 출연금을 사실상 ‘강요’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뇌물죄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예상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은 물론 SK·롯데·CJ 등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수본은 3월16일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김영태 전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 등 SK그룹 전·현직 수뇌부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전 의장은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는데,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수감 중이던 최태원 회장이 재벌 총수 중 유일하게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SK는 같은 해 11월 미르재단에 68억원을 출연했고, 이듬해에는 K스포츠재단에도 43억원을 안겼다. SK 외의 다른 기업들 역시 검찰의 소환조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시 의혹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했으며,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을 부당인사 조치하고 이상화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 인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역시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청와대 비서실과 문체부 등에 작성 지시를 내린 적도 없고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면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모든 혐의를 미루는 모양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사실관계가 모두 인정되더라도 범죄가 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부합하도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균형 있는 문화예술정책을 강조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자유민주적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편가르기’식 지시가 있었다”면서 “사전 검열이 있었는지, 작품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있었는지,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떤 보복 조치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돼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유신 망령 ‘블랙·화이트 리스트’도 사정권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화이트리스트 역시 검찰의 사정권 안에 있다. 반(反)정부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목록이 블랙리스트라면, 친(親)정부 보수단체들을 지원해 줬다는 의혹이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다. 이 사건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에 배당됐다. 검찰은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전경련 등에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보수·관변 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요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4월 허 행정관을 비롯한 청와대 측이 관제데모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최초 보도한 바 있다().
검찰이 예상외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야당을 비롯해 국민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해 “압수수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압수수색은 수사 초기, 증거수집이 중요한 목적인데 지금은 수사가 정점으로 가고 있다”고 밝히자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하는 질타가 이어졌다.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특검과 달리 검찰의 경우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검찰의 친(親)권력적인 속성 때문에 철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이미 ‘죽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속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더 킹》이라는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그냥 권력 옆에 있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검찰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탄핵이 되고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진 지금은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로 돌변할 것이다. 다음 정권에 눈도장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하지 말라고 해도 수사는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다. 김 총장이야 곧 떠날 사람이고 수사를 맡은 검사들은 다음 정권에서 승진도 하고 출세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이 우병우 사건을 이번에도 제대로 결론 내지 못한다면 새 정부에서 개혁 대상 1호는 검찰이 될 것이다.” 현재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야당 후보들은 이미 검찰 개혁을 천명한 상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비롯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권한을 제한한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야당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검찰의 공정성을 가늠할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그냥 권력 옆에 있어” 檢, 차기 정권 눈치 볼 것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넘어야 할 또 다른 큰 산이다. 검찰 내에서도 “또다시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경우 검찰 조직 전체가 순장(殉葬)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 성적표는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3월14일 서울 청담동의 투자자문업체 M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M사가 우 전 수석이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후에도 자문료 형식의 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우 전 수석 개인 비위(非違) 혐의와 관련해 참고인 5명도 소환조사했다.
이 밖에도 우 전 수석은 공직자 신분일 때 일부 대기업으로부터 수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공무원 인사 부당 개입 혐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내사 방해 혐의,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 등도 포함된다. 특히 2014년 6월 세월호 사건 수사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청와대와의 통화내역이 담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는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서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인적 청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야당은 “검찰 내부에 존재하는 ‘우병우 사단’이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나라를 망쳤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특수본 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특별수사팀 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비롯해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검찰 출신인 최윤수 국정원 2차장 등을 우병우 사단으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