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부-박정희, 김평우-박근혜, 2대에 걸친 인연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평우 변호사는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으로 활약했다. 헌법재판소만이 아니라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탄핵 무효!’를 외쳤다. 탄핵 이후에는 “헌재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는 신문광고까지 냈다. 비록 3월15일 삼성동 사저를 방문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는 했지만 탄핵 정국 내내 그는 ‘박근혜 수호신’을 자처했다.
이런 가운데 김 변호사의 큰아버지 범부(凡父) 김정설(김범부·1897~1966)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남다른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범부-박정희, 김평우-박근혜의 2대에 걸친 인연이 화제다.
김 변호사의 아버지는 소설가 고 김동리 선생(김동리)인데, 김범부는 김동리의 형이다. 김범부는 한국 사상의 원류를 탐구한 사상가이자 ‘국민윤리’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인물이다. 정신적으로 ‘화랑 정신’ ‘경주’ ‘신라’ 등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45세)에는 사상범으로 검거돼 1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50년(54세) 부산에서 무소속으로 민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화랑외사(花郞外史)》를 1954년 출간했는데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 국군장병의 사상 무장을 위한 교재로 활용됐다.
김범부가 박정희와 공개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63년이다. 하지만 그가 5·16 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펴낸 《최고회의보》에 ‘방인(邦人)의 국가관과 화랑 정신’의 제목으로 기고한 것에서 보듯 이미 서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3년 6월13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5월 동지회’가 창립됐는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회장을 맡았다. 이 ‘5월 동지회’ 부회장이 김범부였다. 5·16 이념에 동의하는 군인을 비롯한 16만 명이 40일 만에 전국 조직화한 단체가 5월 동지회였다. 일종의 정치적 지원 단체였다.
김범부, 16살 어린 동생 김동리 후원자
김범부의 역할과 관련해 그의 사위인 진교훈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국정 자문을 하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김범부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이후 새 국가 건설의 사상적 스승으로 삼은 분이 김범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0년대와 60년대 초기의 혼란을 바로잡는 일에 공산주의 척결, 국민윤리 정립과 교육 그리고 새마을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전개한 것에선 범부 선생의 ‘건국 사상’과 방략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범부는 16살 어린 동생 김동리의 생활 후원자였고 정신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동리는 생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백씨(伯氏·맏형)는 동기로서는 물론 스승으로서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은의를 나에게 끼쳐 주신 분이다”고 말하곤 했다는 기록이 있다. ‘범부연구회’ 회장인 최재목 영남대 교수는 한 심포지엄에서 “범부는 박정희 정권이 사라지면서 함께 잊힌 사상가다. 그는 박 정권의 건국철학을 구상했고, 새마을운동의 기초 단계를 초안한 인물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