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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숨죽여 지켜보던 재계 특검 이은 검찰 고강도 수사 전망에 전전긍긍

주요 대기업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불똥이 ‘재벌 개혁’ 바람을 타고 재계로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일부 기업은 3월10일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의 여론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사내 법무팀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 헌재 판결에는 빠졌지만, 뇌물수수죄는 박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겼다. 특검은 3월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를 ‘주요 수사 결과 중 하나’로 밝히고, 수사하지 못한 나머지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검찰은 특검으로부터 넘겨받은 관련 사건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내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에 배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와 함께 대기업 수사가 핵심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관건은 검찰이 어떻게 공소사실을 유지할지다. 지난해 10~11월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의 강압에 의해 주요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했다고 보고, 두 사람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검찰과 달리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청와대와 삼성 사이에 진행된 거래를 대가성 뇌물로 결론 내렸다. 직권남용죄와 뇌물(수수)죄는 양형(量刑)부터가 차이가 난다.

 

이러다 보니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특검이 관련 수사를 검찰로 넘기기 며칠 전(3월3일) 우 전 수석이 김수남 총장 등 검찰 수뇌부와 수시로 통화했다는 것을 언론에 슬쩍 흘린 것은 검찰을 옥죄기 위한 ‘더티플레이’”라며 특검에 불만을 표시했다. 검찰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 우 전 수석 수사와 주요 대기업 뇌물죄 수사를 특검 의도대로 끌고 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구속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검찰, 조직 보호 위해 고강도 수사 나설 듯”

 

현재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사건이) 넘어온 이상 수사를 안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을 두고 어떤 법리를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직권남용죄와 뇌물죄는 법리적으로 양립(兩立)하기 힘들다. 물론 공소사실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자칫 검찰 스스로가 지난해 1기 특수본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검찰 내부에서는 공소사실 변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김수남 총장 입장에서는 부담감이 없어지기 때문에 대기업 수사에 주력할 것이며, 다른 기업들도 삼성처럼 뇌물죄로 공소사실을 바꿔 기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합해 보면, 탄핵 이후 고조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고강도 조사는 불가피하다. 정권이 바뀔 경우 대기업 수사와 공직자 비리 척결이 새 정부의 핵심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직 안정을 위해서라도 검찰은 ‘의미 있는’ 수사결과를 내야 한다.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 대선 이후 검찰 개혁이 공론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사는 검찰의 개혁 의지를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당연히 SK·롯데·CJ 등 관련 대기업들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초 특검은 CJ·롯데·SK·삼성에 대한 수사 의지를 표명했는데, 실제로는 삼성 수사에만 그쳤다”면서 “삼성의 경우 40여 곳을 압수수색했고, 60여 명의 임직원이 소환조사를 받은 것을 볼 때 2기 특수본 수사도 비슷한 수준이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수사 결과,  주요 대기업들의 제공 뇌물이 국정 농단의 단초가 됐다고 볼 경우, 대선 정국에서 반(反)대기업 정서가 커질 것이다. 이는 재계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최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은 삼성·현대차·SK·LG·한화·포스코 등이다. 두 재단이 대기업들로부터 받은 돈은 총 774억원에 달하고 있다. 뇌물죄를 적용한다면 어느 기업이 가장 혐의가 짙을까? 법조계에서는 공통적으로 SK를 지목한다. 1월11일 SBS가 보도한 최태원 회장과 김영태 부회장의 녹취록은 SK를 코너로 몰고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부회장이 2015년 8월10일 의정부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최 회장을 찾아갔을 때, 최 회장이 김 부회장에게 “견디기 힘들긴 뭐, 며칠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나와 있다. 이에 김 부회장은 “왕회장(박 전 대통령 지칭)이 귀국(사면)을 결정했다”며 “우리 짐(재단 출연금 및 주요 투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지시)를 줬다”고 말했다.

 

또 이틀 뒤인 1월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재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문자 내용도 SK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당시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2015년 8월13일 안 전 수석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여기서 김 회장은 안 전 수석에게 ‘안종범 경제수석님! SK 김창근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최태원 회장 사면시켜 주신 거에 대해 감사 감사’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후 최 회장은 복역 중인 대기업 총수로는 그해 유일하게 8·15 특사 명단에 포함됐으며, 이틀 뒤 SK는 총 46조원의 투자계획을 밝히는 한편, 미르재단에 68억원, K스포츠재단에 43억원을 냈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면회 녹취록에 나오는 ‘짐’이나 ‘숙제’ 같은 단어는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라는 얘기”라며 뇌물 성격으로 재단에 출연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SK는 4년형을 선고받고 나온 최 회장이 이번 일로 또다시 사법처리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현재 SK하이닉스가 일본 반도체 기업 도시바 입찰에 참여하는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많은 상태에서 이런 문제가 터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SK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법률대리인으로 정하고 검찰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8월14일 0시에 경기 의정부교도소 정문을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광복 70주년을 맞아 형집행 면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받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롯데와 CJ, 동정 여론에 기대

 

롯데는 롯데면세점과 월드타워면세점 특허권 획득에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2015년 면세점 특허권 심사에서 탈락해 면세점 영업이 중단됐지만, 지난해 말 추가 선정 때 포함돼 재영업이 가능해졌다. 현재 롯데는 모든 잘못을 지난해 경영비리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인원 전 부회장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지난해 12월6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지원은 돌아가신 이인원 부회장님을 비롯해 해당 부서에서 결정했다”고 책임을 돌렸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전 부회장이 자살한 이상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 회장 등 롯데 관계자에 대한 사법처리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망자(亡者)가 모든 책임을 진 이상 (검찰이) 수사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롯데로선, 동정 여론도 기대하고 있다.

 

CJ는 이재현 회장이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나오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사면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논란이 일자 CJ는 정권 차원의 압력을 뿌리칠 수 없었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고 있다. 아울러 ‘외삼촌(손 회장)이 희귀병을 앓고 있는 조카(이 회장)의 사면을 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동정론도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만 CJ는 검찰수사가 오래 걸릴 경우 이 회장 복귀 후 탄력을 받은 그룹의 성장 전략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자 이 회장은 지병인 ‘샤르콧 마리 투스’ 치료를 위해 3월6일 미국으로 건너간 상태다. 재계에서는 “유전병 치료가 우선적으로 고려됐지만, 검찰수사에 대비한 측면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중견그룹 중에는 부영이 검찰수사 대상이다. K스포츠재단 회의록에 따르면, 안종범 전 수석과 이중근 부영 회장은 지난해 2월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안 전 수석은 이 회장에게 K스포츠재단의 사업과 관련해 70억~80억원 정도의 자금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최선을 다해서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현재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후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는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법적 처벌을 면하는 건 아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실제 돈이 입금되지 않았더라도 안 전 수석과 최순실씨, 부영 모두에게 제3자 뇌물제공·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 형법에서는 제3자 뇌물제공 등의 구성요건으로 직접 제공뿐만 아니라, 약속 또는 의사표시를 한 것까지를 광범위하게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세무조사 무마를 언급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법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특검의 무리한 수사” 삼성 주장, 힘 빠질 듯

 

헌재가 대통령 탄핵으로 결론 내리면서 삼성 쪽도 다급해졌다. 삼성은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이재용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의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날 헌재는 판결문을 통해 주요 대기업이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주요 이권사업을 청탁했으며, 두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것은 그 일환이라고 판단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헌재 판단이 추후 진행될 이 부회장 재판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도 “헌재 판결과 재판은 별개 사안이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복잡한 법리 관계를 다퉈야 하는 상황에서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으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지적한 이상 ‘특검의 무리한 수사였다’는 삼성 측 주장에 힘이 빠진 것만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헌재 판결문에 현대차·KT·포스코·롯데 등의 기업명이 등장한 것과는 달리 삼성이 나오지 않은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헌재재판관들의 판단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삼성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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