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적 승리와 실익 교환하는 지략 필요

나라 안팎으로 경황이 없다. 국내에선 최순실 사태로 인해 정권이 레임덕을 넘어 조기퇴진이 거론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5차 핵실험 이후에 김정은이 참수부대를 방문하는가 하면 최남단 갈도까지 내려왔고, 미사일이고 핵실험이고 언제 다시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다. 중국은 여전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두고 으르렁대고 있고, 러시아는 미 해병대를 주둔시키면 노르웨이를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국이다. ‘악동(惡童)’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7월6일 경북 포항 해병대 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에 참가한 연합군이 침투훈련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당선은 위협인가

 

트럼프 당선이 디스토피아의 시작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정책으로 내세우며 이민자를 거부하고 백인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트럼프의 모습에서 파시스트의 향기를 느낀 이들도 많다. 마약범을 적법 절차 없이 총살하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처럼 트럼프도 미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들린다. 여태까지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기사에 더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이 유력시된다고 언론에서 보도를 반복하다 보니, 트럼프 당선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대한민국과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들은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트럼프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예로 들면서 충분한 주둔비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서 안보 무임승차를 주장했다. 만약 제대로 돈을 내지 않는다면 미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걷어갈 것이며, 이후에 스스로 핵을 개발하든 말든 알아서 해야 할 것이라고 거칠게 말했다. 이 발언은 국내에서 트럼프 후보가 한국의 핵개발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보도되면서 잘못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발언의 핵심은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들으면 한국인으로서 매우 화가 치밀 발언이지만, 실은 미국적 상식과 논리에 바탕한다. 트럼프의 논리는 지극히 간결하다.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도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고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미국이 실익을 본 게 없었다. 따라서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 되도록 외교안보정책을 재조정하자는 것이다. 소위 신(新)고립주의의 발현이라는 평가로 표현되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철학이다. 전통적으로 트럼프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제적 실패로 군사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자산들이 너무도 방만하게 운영돼 외국을 도와주면서 막상 미국 스스로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동맹들이 자기 몫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28개 회원국 가운데 겨우 4개국만이 2%대의 국방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 사우디도 트럼프가 거론한 사례다.

 

 

트럼프의 안보인식과 해결책 

 

셋째, 이런 와중에 우방들이 더 이상 미국이 자신을 지켜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게 됐다.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면서 일만 벌여놓고 막상 후속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우방들이 미국의 안보공약을 더 이상 못 믿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넷째 명제가 도출된다. 넷째로 이제 더 이상 적국이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위협을 하는 동안 넋 놓고 지켜봤고, 중국이 경제적 도발을 하거나 사이버 공격을 해도 반격 하나 제대로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마지막 인식으로 귀결된다. 즉 다섯째로 미국은 더 이상 외교안보정책에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나치로부터 유럽을 구하고 소련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지켜냈던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해체된 이후 외교안보정책은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리비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시민들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킨다고 열심히 폭격하더니, 무정부 상태가 돼 내전으로 무고한 사람이 죽어나가도 방관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리비아가 실패국가가 되자 오히려 이슬람국가(ISIS)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기름 장사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을 꼬집는다. 한마디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大)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트럼프는 3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우선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다. 즉 ISIS나 알카에다 같은 조직으로부터 공격받는 국가들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 내의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아내고 9·11 테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ISIS 척결을 위해 공세적인 합동 및 연합 군사작전을 전격적으로 실시할 것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군사력이다. 과거 500척을 보유하던 해군이 지금은 272척으로 줄었고, 1991년 이후 미 공군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아직도 1955년에 실전배치한 B-52 폭격기가 날아다닌다. 즉 군사력과 경제력을 건설하겠다는 게 두 번째 해결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진정한 이익을 위한 대전략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여태까지의 모든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진영이 갖춰지고 있다. 이제 3~6개월 이내에 트럼프 정권의 세밀한 외교안보정책이 갖춰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가 하기 쉬운 착각이 마치 세계가 한반도 이슈에 관심이 매우 높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핵이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으니 미국이 이젠 알아서 잘 대응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착각이다. 실제로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천지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트럼프 정권의 입장에서 안보의 제1순위는 ISIS 또는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를 격파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중국과 러시아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다음 순서는 오바마 정권에서 서명한 이란 핵협정이다. 북핵은 미국의 주요 안보현안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결코 맨 위 순서가 아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트럼프 정권은 기존과는 달리 모든 정책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어떻게 어필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결국 북핵 문제가 미국에 어떤 위협이 되거나 기회를 가져다줄 것인지 미래를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꺼내는 방위비 분담 문제도, 오히려 줘야 할 돈이 있다면 주고 당당히 전술핵이나 기타 전략자산을 요구하는 것도 매우 타당한 방법이다. 동맹은 서로 간에 이득이 같을수록 오래가는 법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