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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인맥이 사회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현지 르포
전쟁 속에 태어난 국가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그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주변 아랍국들의 공격은 너무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하기에 앞서 무장부터 했다. 1921년 탄생한 준(準)군사조직 ‘하가나’는 무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 이미 1933년부터 지하 무기 공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독립을 앞둔 1947년, 이스라엘에는 소총 1만 정에 기관총 700여 정, 그리고 박격포 700여 문이 전부였다. 전차나 장갑차는 물론이고 야포조차 없었다. 영국이나 미국 등의 국가는 유대인들에게 공식적인 무기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항공사를 차린다는 명목으로 B-17 폭격기나 C-46 수송기를 사들였다. 또한 이들은 유럽의 암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소총과 기관총을 사들이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고물 전투기를 들여와서 개조해야만 했다. 게다가 Kar98k 소총이나 메서슈미트 Bf109 전투기 같은 나치 독일제 무기까지 들고 와서 싸웠다. 그러나 여전히 무장이 부족해 병사 3명당 소총 한 자루를 보유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이 대항하는 아랍연맹의 전력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요르단은 영국군으로부터 훈련받은 1만의 정예부대에 야포와 장갑차를 편제해 파병했다. 이라크는 12개 여단 2만여 명의 병력에 영국제 스핏파이어 전투기 100여 대를 갖춘 공군을 보냈다. 시리아는 1만여 명의 병력에 전차대대까지 보냈다. 이집트도 전투기와 수송기를 합쳐 50여 대를 보냈다. 규모가 작으나마 레바논군까지 가세했다. 3만 명도 안 되는 하가나는 무려 5만 명이 넘는 적을 상대해야만 했다. 엄청난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사투 끝에 핵심도시인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지켜낸 것은 물론이고 가자 지구까지 점령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무엇이 이스라엘을 강하게 만들었을까. 유대인들은 나치 독일로부터 국가가 없다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는 처절한 교훈을 이미 얻었다. 국가의 생존이 나 자신의 생존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이스라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골다 마이어 이스라엘 전 총리는 이스라엘의 승리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랍을 상대로 한 최종병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감이다.”“우리의 최종병기,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감”
전쟁으로 태어나고 전쟁으로 지켜진 나라다 보니 국가의 여러 기능 속에 군대라는 코드가 숨어 있다. 우선 이스라엘은 의무복무제 국가다. 그것도 남녀 공히 복무한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의 복무기간을 채워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예외 없이 모두 군대를 가는 것이다. 물론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정통파 유대교 신학생이나 아랍계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필자는 뇌성마비자여서 군 면제 대상임에도 굳이 입대를 해 생활하는 병사를 목격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동료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 병사를 부대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군 복무가 단순히 의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진출의 중요한 발판이 된다. 예를 들어 특수부대나 정보부대와 같은 최정예부대에 복무한다는 것은 미국 예일이나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처럼 엄청난 인맥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국가적 영재를 군이 키워내는 ‘탈피오트’ 같은 제도도 있다. 일례로 신호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정보부대인 8200부대 출신자들은 서로 간의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한 가운데 첵포인트나 팔로알토, ICQ 등 세계 유수의 IT(정보기술)기업을 창업하고 세계 IT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군 시절 인맥이 그대로 사회로 이어지는 진정한 선군사회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군대의 구조다. 이스라엘 군대는 현역이 막고 예비역이 싸우는 군대다. 즉 현역은 예비군이 동원될 때까지 적의 공격을 막는 게 주 임무고, 막상 실제 전투의 대부분은 예비군이 수행한다. 현역은 17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예비역은 44만여 명에 이른다. 가장 최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2014년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와 충돌한 ‘프로텍티브 에지’ 작전에서도 4만 명의 예비군이 투입돼 임무를 수행했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연간 최대 36일까지 복무할 수 있다. 즉 한 달 넘게 전선에 투입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비군은 병사는 40살까지, 간부는 45살까지 대상이 된다. GDP의 6.2%인 186억 달러를 국방비로 쓴다. 참고로 한국은 334억 달러 정도다. 국민 1인당 국방비 부담은 2500달러 수준이다. 1800달러 수준인 미국보다도 상당히 높다. 그야말로 국민은 국방비와 병역의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과연 불만이 없을 수 없겠지만 이들은 이를 당연한 현실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스라엘에는 독특한 군사장비들이 많다. 우선 무인항공기인 UAV가 그렇다. 드론의 시대라고 얘기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UAV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건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미군이 1991년 걸프전에서 사용하면서 성과를 거뒀던 파이오니어 UAV도 실은 이스라엘제 마스티프 UAV를 미국이 가져다 만든 것이다. 늘 병력부족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보니 UAV가 수집하는 정보가 현장의 군부대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서 소대 단위에서도 UAV가 보내주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다.현역이 우선 막고, 예비역이 싸우는 체계
2012년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이라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선보였다. 놀랍게도 아이언돔은 북한의 방사포탄과 유사한 다연장 로켓탄을 속속 막아냈다. 물론 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논란도 많았다. 초기엔 요격에 실패해 사망자도 나왔다. 아이언돔은 2007년부터 개발돼 2011년에 실전 배치됐다. 2006년 제2차 레바논전쟁에서 무려 4000발의 헤즈볼라 로켓공격을 받자 이스라엘이 방어시스템을 확보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불과 4년이란 짧은 시간 내에 실전 배치됐을 때는 그만큼 급박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나 기타 서구 선진국의 기준에서 본다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시스템을 배치한 것인데, 우리나라 같으면 방산비리라고 한 소리를 들었을 만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 중인 국가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단 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기술적 시도는 다 해 보겠다는 자세, 이것이 이스라엘이 늘 승리하는 비결일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방산회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업체 직원과 군인들이 뒤섞여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즉 너나없이 전쟁승리 또는 인명보호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개발해 나가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기술력은 우리나라의 첨단 기업들에 비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늘 엉뚱한 발상에서 기발한 해답을 찾아내면서 길을 제시한다. 이런 노력들이 합쳐져 아이언돔이나 다비드 슬링과 같은 시스템이 등장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방산비리라고 비난받거나 엄격한 규정으로 아예 시도조차 못할 일들이 이스라엘군과 방산업체에선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걸 만들어주면 된다는 실용적 발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안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이스라엘이 거론된다. 1967년 선제공격인 ‘6일 전쟁’으로 주변국을 제압했다가, 1973년에는 기습을 당해 전멸하기 전에 부활한 국가로 칭송받았다. 비슷한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1·21 청와대 기습 등 1968년부터 북한의 치열한 도발이 계속됐다. 그러나 미국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는커녕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하는 등 믿을 수 없는 태도를 보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결심했다. 이런 자주국방에서 중요한 모델이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1970년 군에서는 ‘자주국방제도 연구를 위한 이스라엘 국방제도 연구단’을 현지로 파견했고 내용은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이후 군에서는 이스라엘 본받기 운동이 전개되기까지 했었다.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된 지금, 안보분야에서는 다시금 이스라엘이 거론되고 있다. 적국의 핵위협을 뿌리부터 잘라낸 이스라엘의 선제타격능력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1981년에는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2007년에는 시리아의 알키바 원자로에 대해 정밀 공습을 감행해 위험의 근원을 제거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홀로코스트 범죄자나 뮌헨 테러범에 이르기까지 자국을 공격한 적은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국가적 원칙은 국가를 지키는 근원적인 힘으로 건국 이후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국가기풍으로 자리 잡았다.젊은이는 군대에서 사회인 인정받아 성장
이스라엘은 특히 군사적 보복응징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스라엘의 응징보복작전 기준에 관해 이스라엘 고위 장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응징보복은 억제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단순한 화풀이로 하는 게 아니란 점이다. 둘째로 정확히 의도한 군사적 표적에 대해서만 정밀 타격을 수행하지, 절대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셋째 타국 땅에 해당하는 주권지역인 경우에는 그 정권의 수뇌부에 대해 응징보복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명확한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응징보복작전을 수행한다. 그야말로 적이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한국은 다르다. 이스라엘이 현재 대하는 적은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다. 과거 맹렬한 적이었던 시리아는 내전으로 갈라져 있고, 인접한 요르단이나 이집트와는 진작 평화협정을 체결해 놓았다. 4차 중동전까지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란의 핵위협을 걱정하고 대비하지만 코앞의 일은 아니다. 이에 반해 120만 명의 정규군이 핵무기까지 쥐고 생존을 위협하는 한국보다는 어찌 보면 이스라엘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이 이런 ‘평화’를 맞이하게 된 배경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밀리면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는 절박함이야말로 이스라엘을 싸움꾼으로 만든 힘이다. 그러나 그만큼 삶은 척박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중동국가들의 눈치를 보느라 국제적 자동차 제조사들이 대리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을 견뎌내겠다는 절실함이 있기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정과 노력이 따라온다. 절실함이 국민을 바꾸고 국가를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미사일과 로켓탄이 떨어져도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 공장, 일하다가도 소집명령이 떨어지면 전쟁터로 나가는 예비군, 그 속에서 세계를 리딩하는 IT기업 문화….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젊은이들의 태도였다. 상병이 거의 모든 일을 알아서 끌고 가고 심지어는 외부의 손님까지 에스코트를 한다. 우리나라 군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린 병사들을 믿고 맡기며, 그들도 자부심을 갖고 임무를 알아서 수행하는 문화. 이미 이스라엘의 젊은이는 군대에서 사회인으로 인정받아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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