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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로 연일 쏟아지는 힘 빠지는 뉴스 홍수 속에서도 한국 국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게 굴러가고 있다. 회사에서는 연말 잔업을 처리하고, 짬을 내어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 가족을 돌보고 지인도 만나야 한다. 게다가 이젠 미증유의 국정 파행을 두고만 볼 수 없어 주말에 촛불을 들고 거리도 나가야 한다. 숨 돌릴 틈 없이 짜인 시간이다. 

 

그러는 사이 ‘과로(過勞)’는 한국인들의 일상이 돼버리는 듯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8월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한국 근로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이었다. 하루 법정 노동시간 8시간으로 나누면 365일 중 264일, 그러니까 1년의 70% 이상을 일하며 보내는 셈이 된다.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긴 수치이며, 가장 근로시간이 적은 독일(1317시간)과 비교하면 연간 796시간, 99일을 더 일한 격이다. 통계의 작성기준과 실제 근무시간과의 차이를 고려하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과로가 사망으로 이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산업 재해로 분류되는 과로사(過勞死)의 사전적 의미는 근로자가 일을 지나치게 하거나 무리한 탓에 그 피로로 갑자기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과로사 사망자에 대한 최신 통계는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과로사 사례를 찾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올해 6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의 김아무개 검사. 그의 죽음은 지난달 공무상 순직으로 인정됐다. 그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에는 “한 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잠들고 싶다. 스트레스 안 받고 편안하게…”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심상정 의원실이 1995년부터 2013년 6월까지 근로자 과로사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과로사 산업재해 신청건수는 1만3088건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의 대응은 안일하기만 하다. “바쁘다” “피곤하다”며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듣는 반응은 “나도 그래” “젊을 때 다 그런 거야”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다. 피로감은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훈장인 것처럼 말한다.

 

세계적으로 ‘과로사’란 단어가 일반화돼 사용되는 나라는 두 개 국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한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에서 과로사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질 정도며, 한자어 ‘過勞死(과로사)’를 일본어로 발음한 ‘가로시’는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돼 있다.

 

1980년대 후반 처음 과로사가 사회문제화된 이후 20년이 넘도록 과로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온 일본에선 몇 해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14년 11월 시행된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과로사방지법)을 제정하고 시행한 데 이어, 이 법에 따라 올해 10월 처음으로 ‘과로사 백서’를 공표했다. 총 280페이지 분량의 백서엔 과로사나 과로자살의 현상이나 방지책, 직장인의 잔업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노력에도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시간 외 봉사'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잔업을 공짜로 시키는 곳이 늘어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일본에서 월 80시간 이상의 ‘과로사 라인’을 넘겨 근무한 직원이 있는 기업은 전체의 2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엔 유명 광고회사 ‘덴쓰’에 다니던 한 여성이 과중한 업무와 직장상사의 폭언에 견디다 못해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돼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격화되기도 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일본 과로사방지법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정부 차원에서 산업현장의 문제를 인식하고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며 “이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문제인식은 상당히 미온적이며 최근 들어 이뤄지는 노동개혁조차 기업 중심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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