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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골드삼촌 등 다변화…“사회인식·정부정책 변해야”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10여 년 전에 펴낸 《21세기 사전》에서 이미 일부일처에 근거한 결혼제도의 종말을 예언했다. 그는 “2030년이면 결혼제도가 사라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 풍습에 대해 연구한 미국의 유명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과거 1만 년 기간보다 최근 100년간 결혼 관습이 더 변화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볼 때 앞으로의 변화는 더욱 극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자들의 분석이나 전망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해체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혼인율은 해마다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세대에서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서다. 더 이상 결혼을 일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전통은 계속될 수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대(代)를 이어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에겐 먹혀들지 않는 모습이다.

한때 ‘비혼(非婚)’에 대한 생각을 특정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 범주에서 벗어난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인식하곤 했다. 하지만 세대가 거듭될수록 ‘비주류’였던 그들은 점차 ‘주류’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일러스트 정재환


결혼을 하지 않은 대통령. 그가 누군가와 만나 청와대에서 동거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한국에선 대통령의 동거인을 영부인으로 대접할 수 있을까. 또 재임 기간 동안 동거인과 헤어지고 유명 연예인과 연애를 하게 됐다면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 같은 일은 프랑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2012년 프랑스의 지도자가 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현 환경에너지부 장관)과 22년간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4명의 자녀를 뒀다. 루아얄과 헤어진 올랑드 대통령은 이후 기자 출신의 트리에르바일레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녀를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까지 데리고 들어가 영부인 역할을 맡겼다. 2014년 트리에르바일레와 관계를 청산한 뒤에는 여배우 쥘리 가예와 연애를 시작했다.

한국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법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한 주간지가 성인 10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77%는 “올랑드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이라고 답변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문화 탓도 있지만 결혼에 대한 프랑스인의 인식 또한 반영된 결과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가운데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택한 비중은 31%에 이른다. 신생아의 약 50%는 결혼 가정 외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선 동거나 사실혼이 이미 가족 형태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동시에 결혼과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 데도 배우자가 ‘법적 혼인상태냐, 동거냐’는 의전상 고민의 대상일 뿐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는 아니다. 다양한 결혼의 형태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며, 그 선택은 당연히 존중받고 있다.

非婚 택한 사람들, 그들만의 삶

특정 지역 국가의 특수한 사례일까. 아니다. 한국도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통계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5년마다 실시되는 통계청의 인구 총조사 결과를 보면 혼자 사는 가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가장 흔한 가구 유형은 2005년 4인 가구에서 2010년 2인 가구로, 2015년 1인 가구로 변화했다. 특히 2015년의 경우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로 전체 가구 가운데 27.2%를 차지했다.

결혼 연령은 점차 늦춰지고, 혼인율 또한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서울시의 2015년 통계에 의하면, 초혼 연령이 남자 33세, 여자 30.8세다. 1990년 한국의 초혼 연령이 남자 27.9세, 여자 24.8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혼 시기가 대략 5~6년 늦어진 셈이다. 혼인율은 통계 작성 이후 해마다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나타내는 조(粗)혼인율은 2015년 5.9건으로 전년보다 0.1건 감소했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이른바 ‘삼포세대(연애와 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혼인율 감소의 이유로 꼽고 있다. 취업이 어려운 데다 결혼·주거·육아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결혼을 포기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비혼 추세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경제적인 문제만이 전부는 아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 조사를 보면, 오히려 취업 성공 이후의 고학력층에서 비혼 의향 비율이 더욱 높았다. 전국 만 19~59세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혼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응답은 30~40대(30대 52%, 40대 52.7%), 고학력층(대학원 졸업·재학 55.6%)에서 가장 많았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비혼’과 ‘독신’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연애와 동거, 미혼부·미혼모, 공동체 생활 등 결혼 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살고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각자만의 스타일에 따라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이들은 이미 두텁게 형성된 혼족(婚族) 사회 안에서 각종 동호회나 모임에 활발히 참석하며 자기계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도 한다. SNS 등을 통해 기존 학교·직장 등과는 다른 형태의 모임을 만들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동호회나 취미·친목 등을 위한 소모임을 개설하고 모집해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해 주는 스마트폰 앱 ‘소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 모여 식사를 하는 사이트 ‘집밥’은 누적 방문객 수가 4400만 명에 달한다. 굳이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않아도 스스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혼밥’ ‘혼술’은 더 이상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 덕분에 ‘골드 이모’ ‘골드 삼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결혼하지 않은 이모나 삼촌이 조카 양육을 지원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제력이 있는 고학력 미혼 여성을 일컬었던 ‘골드 미스(Gold Miss)’에다 이모 혹은 삼촌이란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박아무개 차장(41)은 조카 2명의 유치원비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매월 80만원에 달하는 돈이다. 설·추석 등 명절 때마다 조카 선물로 수십만원씩 쓰고, 보험에 가입할 때 피보험자로 조카를 택했다. 김씨는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자신 없지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며 “그만큼 조카를 자식이라 생각하고 애정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혼자 밥을 먹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진은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한 장면 © tvN

최근 혼자 밥을 먹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진은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한 장면 © tvN


미혼(未婚)과 비혼(非婚) 사이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과거 적정한 나이를 넘겨서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편견을 갖고 바라봤지만, 적어도 해당 세대 안에서는 결혼을 선택사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가족·핵가족 등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담당했던 성적·정서적·경제적 기능을 혼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비혼 증가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두 개의 용어가 있다. 미혼과 비혼이다. 두 표현 모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혼은 원래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혼’이라 부른다.

사회는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변화의 과정은 늘 갈등을 동반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이단(異端)’과도 같았다. 통상적으로 윗세대와 아랫세대는 결혼에 대한 생각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로펌에 다니는 김아무개 변호사(31)는 올해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떠났다. 앞으로도 명절에는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유는 친척들이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던진 한마디였다. 안부처럼 가볍게 던지는 말이 스트레스처럼 여겨졌다. 김 변호사도 처음부터 피하진 않았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면 이내 친척 어르신들의 장시간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이후엔 명절 때 결혼 얘기만 나오면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성적 욕구 때문에 결혼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연애나 잠깐의 만남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굳이 결혼해야 할 이유를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세대 내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발생한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이아무개씨(38)는 부서를 옮길 때마다 동료들의 이상한 눈초리에 당황하곤 한다. 아직 미혼인 그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소개하면 ‘동성애자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한때 동거했던 여자친구와 지난해 헤어진 그는 아무리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항변해도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현재 삶에 크게 문제도 없고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데 왜 주변에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래도 최근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태도도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혼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결혼을 안 하면 아이는 누가 낳느냐는 얘기다. 물론 이 논리 속에는 남녀가 결혼을 통해 결합된 제도권 내의 가구 속에서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담론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 제도가 사라진다고 해서 아이가 안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1인 가구, 노키즈족(결혼 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 싱글맘·싱글대디, 공동체 가족 등 가족의 범주가 넓어지면 이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4·13 총선에서 한 후보가 공직선거법이 비혼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다. © 연합뉴스

다양한 가구 형태, 출산율 오히려 높일 수도

하지만 한국의 정책은 결혼·출산을 장려하는 1차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비혼·만혼 추세를 막겠다는 게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신혼부부에게 행복주택을 특별 공급해 내 집 마련을 쉽게 해 준다거나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이런 정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역차별로 다가온다. 자녀 세액공제 정책도 1인 가구에겐 ‘그림의 떡’이다. 심지어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싱글세’ 도입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전통적 가족 개념에만 집착할 뿐, 사회적 불평등과 젠더(gender) 의식은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가족뿐 아니라 사회 변화에 맞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일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프랑스에선 가구 형태를 조사할 때도 결혼, 싱글맘·싱글대디, 동거, 시민연대협약 등으로 세분화해 묻는다. 결혼 형태는 전통적인 결혼뿐 아니라 단순 동거와 시민연대협약으로 나뉜다. 단순 동거는 법적 신분은 아니지만 자녀를 가질 수 있고 정부로부터 결혼 가정과 거의 동일한 지원을 받는다. 대신 경제적으로 완전히 분리돼 있고, 상대에 대한 의무도 없으며 일방적 이별 통보가 가능하다. 반면 시민연대협약은 동거 계약서를 쓰고 법원에 제출하면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서 결혼 때와 같은 권리와 의무를 보장받는다. 계약서 제출 후 3년간 관계가 지속되면 유산도 상속받을 수 있다. 결혼과 다른 점은 서로 원할 경우 복잡한 이혼 절차 없이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 동거와 차이점은 계약 내용에 따라 상호 간 물질적 협조 의무, 일상적인 가사상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 등을 진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은 의무를 지고, 세금도 함께 내는 일종의 ‘준(準)부부 제도’인 셈이다. 시민연대협약 제도 도입 후 프랑스의 결혼 건수는 20%나 줄었다. 하지만 출산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프랑스 외에도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들의 동거 비율은 매우 높다. 또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률혼 외 동거 커플을 위한 입법이 이뤄졌다. 네덜란드에서는 1998년부터 ‘동반자 등록법(National Registered Partnership)’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결혼 커플과 똑같은 법적 의무와 권리를 인정해 준다. 스웨덴에서는 동거 커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인 ‘동거법(Sambolagen)’을 1988년 도입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임신·출산·보육·양육과 관련해 동거 커플에게 결혼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다.

실제로 이들 국가는 대부분 OECD 평균보다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결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가구를 인정한 결과, 출산율이 늘어난 것이다. 단순 동거 커플도 자녀를 가질 수 있고, 결혼 가정과 거의 동일한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OECD의 2008년 출산율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영국·노르웨이·덴마크 등 혼외출산 비중(40~60%)이 높은 나라에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숫자)도 대체로 높게 나타나는 연관성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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