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노트7이 스마트폰 역사상 최단기 단종모델로 기록됐다. 8월2일 미국 뉴욕에서 ‘언팩 행사’를 통해 공개된 갤럭시노트7은 출시 직후 IT전문매체들의 리뷰에서 극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스펙을 자랑했다. 하지만 배터리 발화로 인한 ‘안전’ 이슈 앞에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애플과 함께 치열한 스마트폰 경쟁을 끌고 나갔던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고 주가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원인은 아직 정확하지 않다. 당초 글로벌 리콜 발표 때는 삼성 SDI가 제조한 배터리 결함을 문제삼았지만 이후 다른 원인이 있는지도 논란거리가 됐다.
갤럭시노트7에 들어간 배터리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배터리로 사용하는 리튬 이온 배터리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충전 및 재사용이 가능하며 무게가 가볍고 많은 에너지를 담아둘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전극의 이동을 이용한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다소 불안정한 면도 있다. 하지만 얇은 두께, 가벼운 무게, 빠른 충전 속도와 오랜 사용량 등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까다로운 조건을 두루 충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양산 가능한 배터리로 각광 받았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방전 과정에서 리튬 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며, 충전할 때는 리튬 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다시 이동한다. 만약 두 전극 사이에 합선이 일어나면 엄청난 속도로 발열작용을 일으키며 이는 발화와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리튬 이온 배터리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전극을 철저히 분리시켜 놓는 것이다.
‘갤럭시노트7 사건’은 해외 IT업계에서도 가장 핫한 이슈였다. 외신들은 관련 기사를 계속 쏟아내며 ‘스마트폰 강자’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와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배터리 발화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와이어드', '더버지', '씨넷' 등 해외 IT전문매체들은 문제가 된 리튬 이온 배터리의 원리와 함께 이 배터리가 유독 갤럭시노트7에서만 잦은 발화를 유발한 것에 주목 중이다.
■ 씨넷 “배터리 구조상의 결함이 화재 불렀다”
이들 매체들은 대체로 리튬 배터리 내 전극 합선이 발화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합선을 유발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내놓았다. IT 전문지 '씨넷'은 “배터리가 눌리면서 배터리 내에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고 있는 얇은 플라스틱 막에 구멍이 뚫려 합선이 일어났을 수 있다”며 배터리 내부 구조의 결함으로 인한 발화 가능성을 원인으로 점쳤다.
미국 MIT의 돈 새도웨이 교수는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스마트폰 배터리에는 많은 구성요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이걸 말 그대로 눌러 담는 방식으로 배터리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새도웨이 교수는 배터리를 얇게 만들기 위해 배터리를 누르는 과정에서 지나친 압력에 의해 음극과 양극 분리막 사이 구멍이 생겼거나 애초에 분리막 자체가 압력을 견뎌내기에 지나치게 부드러운 재질이었을 것이란 가설을 내놨다. 여기에 더해 음극을 리튬 메탈로 둘러싸는 ‘플레이팅’이란 과정에서 ‘덴드라이트(dendrites)’라는 작은 돌기가 생성되고 이것이 전극 분리막에 구멍을 내어 합선을 유발했을 수도 있다는 게 새도웨이 교수의 의견이다.
■ 더버지 “과도한 배터리 경쟁이 갤럿니노트7 사태 불렀다”
IT전문잡지인 '더버지'는 댄 스테인가트 미국 프린스턴대 재료과학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충전 과잉이 발화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스테인가트 교수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은 고무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과 같다”며 “너무 많이 잡아당기면 고무줄이 끊어지듯 배터리 역시 과부하에 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린든 아처 코넬대 재료과학부 교수는 “오늘날의 기술력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배터리 사용 수명의 90%까지 현실화했다. 제조업체들이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효율을 끄집어내려고 무리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기술적 한계에 도달한 시점에서 업계는 점점 더 과잉 충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결국 실패한 모델을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최악의 형태가 바로 발화와 폭발이다”고 설명했다.
■ 와이어드 “열에 민감한 리튬 이온 전지를 은박지로 싸서 접착제로 붙여놨다”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는 휴대폰 본체에 (일반적으로 배터리 고정에 사용되는 나사가 아닌) 접착제로 붙어있었다. 갤럭시노트7에서 배터리를 분리해내는 작업은 마치 뇌수술을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칫하면 수술환자가 화염에 휩싸일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IT전문매체 '와이어드닷컴'은 10월11일 전문 엔지니어가 직접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를 해체한 후기를 올리며 배터리 발화의 원인을 분석했다. 이 매체는 “(문제가 된) 배터리 제조업체는 이론적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가 낼 수 있는 최고용량의 90%에 달하게 만들었지만 두께나, 속도, 전력 등에 대한 타협 없이 몰아붙이기만 했다”며 “얇아진 스마트폰에 리튬 이온 배터리를 담아내기 위해 방화 가능성이 있는 이 장치를 얇은 은박지에 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이 얼굴에 갖다 대는 스마트폰 안에 붙여 넣은 것이다”라고.
■ 블룸버그 “아이폰 의식한 삼성경영진 조급증이 일 키웠다”
'블룸버그'는 기술 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모든 문제의 근간에는 애플의 신제품 출시를 의식해 무리하게 제품 출시 일정을 잡은 삼성전자 경영진의 판단 미스가 있다는 주장이다. '블룸버그'는 9월18일 ‘소식통’을 인용해 “올 초 새로운 아이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삼성전자 경영진이 애플에 앞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무리하게 갤럭시노트7 출시 일정을 앞당겼다”며 결국 이런 판단이 넓게 보면 갤럭시노트7 판매 및 생산 중단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올해 초부터 스마트폰을 총괄하는 무선사업부장을 맡은 고동진 사장 등 삼성전자 임원진은 앞당겨진 마감 일정을 맞추기 위해 부품 생산자들을 압박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한 관계자는 출시일자가 가까워오면서 삼성전자 개발자와 생산자들은 수면시간과 통근시간을 줄이면서까지 근무시간을 늘려야 했다.”
이 관계자는 “그 어떤 때보다 업무 압박이 심했으며, 삼성전자는 우리가 수주하는 다른 기업 고객들 중 가장 압박 강도가 심한 업체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산업체 관계자 역시 “삼성전자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제품 스펙과 작업 공정을 변경해 같이 일하기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을 의식해 무리하게 출시 일정을 앞당겼다는 의혹을 제기한 '블룸버그'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지 않았다. 다만 보도자료를 통해 “제품의 출시는 제품의 완성도와 시장 출시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무선사업부에서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