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3·4번 두산 vs ‘나테이박’ NC
경기 시작을 앞두고 선발 라인업을 짜는 시간이 되면 감독들은 저마다의 고민에 빠져든다. 1번부터 9번까지 이종범과 양준혁만 가득하다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누구를 몇 번에 배치해도 득점이 펑펑 쏟아져 나올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팀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제한된 타자 자원을 갖고 상대 투수와 당일 컨디션을 고려해서 최대한 많은 득점을 낼 수 있는 타순을 구축해야 한다.
타순 짜기에 정답은 없지만 기본적인 법칙은 있다. 발 빠르고 출루 능력 있는 1·2번 타자가 누상에 나가면 힘과 정확성을 갖춘 3·4·5번 중심타자가 홈으로 불러들인다. 8번 혹은 9번 자리에는 팀 내에서 가장 약한 타자를 배치한다. 특히 3·4·5번 중심타선은 팀 내 최고의 강타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강력한 중심타선을 보유한 팀은 득점력은 물론 상대에게 주는 위압감이 다르다. 반면 중심타선이 약한 팀은 점수를 뽑기 어렵고 매번 힘겨운 경기를 펼쳐야 한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도 중심타선의 공격력에 따라 각 팀의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압도적인 강타자들로 확실한 중심을 세운 팀들은 대부분 상위권을 질주하는 중이다. 반면 간판타자의 부진과 부상으로 중심타선이 흔들리는 팀들은 힘든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2016 KBO리그 최강의 중심타선은 어느 팀인지, 각 팀 중심타선의 초반 활약상을 살펴봤다.
압도적 2강의 위력적인 중심타선
용호상박, 아니 ‘용웅상박’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압도적인 ‘2강’ 체제를 구축한 두산과 NC는 중심타선의 위력도 남다르다. 두산 베어스는 3번 타순에서 OPS가 0.979로 리그 2위, 4번 타순 OPS는 0.970으로 5위, 5번 타순 OPS는 0.991로 전체 1위다. 3번 타자로는 주로 외야수 민병헌(10홈런 43타점 OPS 0.961)이, 4번으로는 19홈런에 OPS 1.140의 김재환과 OPS 1.078의 오재일이, 5번에는 리그 최고 포수 양의지(10홈런 33타점 OPS 0.961)가 나섰다. 지난해까지 중심타자였던 홍성흔이 밀려나고, 외국인 타자 에반스가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특히 5월부터는 한 차례 퓨처스리그에 다녀온 에반스의 공격력이 살아나면서 더욱 무시무시한 중심타선이 완성됐다. 에반스는 4월에 1홈런 타율 0.164로 부진했지만 5월 7홈런 0.351, 6월에 7홈런 타율 0.386로 폭발적인 타격을 선보이는 중이다. 부상으로 잠시 주춤한 양의지만 라인업에 복귀하면 두산을 상대하는 투수들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근 15연승을 달리며 두산을 바짝 추격 중인 NC 다이노스의 중심타선도 만만찮다. NC는 지난해 ‘나이테(나성범·이호준·테임즈)’ 트리오에서 더욱 진화한 ‘나테이박(나성범·테임즈·이호준·박석민)’의 4인조 중심타선을 자랑한다. 특히 나성범(14홈런 64타점 OPS 1.010)과 테임즈(22홈런 61타점 OPS 1.255)가 나서는 3·4번 타순은 시즌 내내 거의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으며, 10개 구단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자랑한다. 여기에 최고령 타자 이호준(12홈런 49타점 OPS 0.950)이 맡은 5번 자리도 OPS 0.920(리그 3위)으로 공격력이 괜찮은 편이다.
눈여겨볼 건 4년 96억원 FA 계약으로 영입한 박석민의 행보다. 4월에 3홈런 타율 0.273, 5월 3홈런 타율 0.242로 예상보다는 활약이 미진했던 박석민은 6월 들어 6홈런 25타점 타율 0.448로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박석민의 활약과 함께 팀도 15연승을 질주하며 1위 두산과 본격적인 선두 싸움을 시작했다. 박석민이 6번 자리에서 맹타를 휘두르면서 NC 중심타선은 3번부터 6번까지 피해 갈 곳이 없게 됐다.
삼성·LG·SK, 4번타자는 외딴섬
한편 삼성 라이온즈는 나바로가 떠난 빈자리가 허전하다. 나바로 대신 영입한 발디리스가 1홈런 0.217로 투수코치에게 타격을 배운 듯한 성적을 내면서 중심타선에 문제가 생겼다. 한동안 구자욱(5홈런 OPS 1.046)을 3번으로 돌려 효과를 봤지만, 허리통증으로 엔트리에서 빠지면서 이승엽(14홈런 OPS 0.872)이 3번으로 나오고 박한이(3홈런 OPS 0.800)가 5번에 배치되는 등 변동이 많다. 4번 타자 최형우(16홈런 63타점 OPS 1.106)의 MVP급 활약이 고독해 보이는 이유다.
4번 타자가 느끼는 고독감은 LG 트윈스도 마찬가지다. LG는 4번 타자 히메네스(17홈런 50타점 OPS 1.026)가 MVP 모드로 질주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3번과 5번의 무게감은 4번만 못하다. 3번으로 주로 나서는 박용택(OPS 0.868)과 정성훈(OPS 0.821)은 다른 구단 중심타자에 비해 장타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5번을 주로 맡은 채은성(OPS 0.829)과 이병규(OPS 0.824)도 마찬가지. LG는 팀 득점 332점으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득점이 적은 팀이다. 한편 4번 정의윤(14홈런 OPS 0.913)이 홀로 분투하던 SK 와이번스는 최근 이적생 최승준(10홈런 OPS 0.953)의 활약으로 중심타선에 힘이 붙었다. 시즌 초반 부진했던 이재원이 6월 들어 7홈런 23타점 타율 0.328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고무적이다.
중심타자들의 이름값만 놓고 보면 한화 이글스는 리그 최고 수준이다. 연봉킹 김태균과 메이저리그 출신 거포 로사리오, 여기에 지난해 좋은 활약을 보여준 김경언을 데리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리그 최하위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5월 중순 이후 송광민이 3번에 고정되고, 김태균의 타격감이 살아나며 송광민·김태균·로사리오로 중심타선이 어느 정도 틀을 갖춰가는 모습이다. 김경언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정근우·이용규부터 시작되는 1~6번 타순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넥센 히어로즈는 중심타선에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팀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유한준·박병호·강정호로 이어지는 리그 최강 중심타선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셋 다 다른 팀으로 떠난 상황이다. 시즌 초반 트레이드로 영입한 채태인의 부진, 윤석민의 부상, 김민성의 슬럼프가 겹치며 5월까지는 공격력에 큰 문제를 드러냈다. 다행히 6월 들어 3번으로 자리를 옮긴 김하성의 활약, 외국인 타자 대니돈의 한국 무대 적응, 윤석민의 복귀와 김민성의 타격감 회복으로 팀 득점력이 점점 좋아지는 추세다. 6월 넥센의 팀 득점은 119점으로, NC(131점)에 이은 리그 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