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후보 넥센의 선전, 우승 후보 삼성의 몰락
“섣불리 예상하지 마라.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메이저리그 명감독 케이시 스텐겔이 남긴 말처럼, 야구는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의외성이 지배하는 스포츠다. 매년 시즌 전이면 전문가들과 매체마다 다양한 예상을 내놓지만, 실제 시즌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전 선수의 부상, 사건 사고, 분위기, 트레이드, 그리고 아웃라이어의 등장까지 갖가지 변수가 작용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이제 팀당 20경기 정도만을 남겨둔 2016시즌 KBO리그는 어떨까. 시즌 전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을까.
‘역시나’ NC 강세 vs ‘혹시나’ 두산 1위
시즌 전 대다수 전문가는 NC 다이노스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했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지난해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 전력에 FA 박석민의 가세로 압도적인 우승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NC는 이번 시즌 우승 후보 평가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시즌 내내 승률 6할을 넘나들었고 9월6일 현재 68승 2무 46패로 승률 0.596을 기록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NC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한 팀은 2011년과 2012년의 삼성, 2014년의 삼성과 넥센, 지난해의 삼성까지 5개 팀뿐이다. 예년 같으면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성적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9월6일 현재 순위표의 1위를 차지한 팀은 모두가 우승 후보로 지목한 NC가 아닌,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 베어스다. 시즌 전만 해도 두산에 대한 기대치는 지금만큼 높지 않았다. 대부분 무난하게 4강에 들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우승 후보로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두산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젊고 재능 넘치는 야수들은 지난해 우승 경험을 통해 더욱 기량이 급성장했다. 니퍼트-보우덴-장원준-유희관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KBO리그 역대 최강 선발진으로 꼽힐 만큼 막강했다. 주전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면 그만큼 뛰어난 백업 선수가 그 자리를 메웠다. 9월6일 현재 두산은 79승 1무 44패 승률 0.642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NC와는 6.5게임차다. 2008년 SK가 기록한 0.659 이후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 중이다.
‘꼴찌 후보’ 넥센 3위 vs ‘우승 후보’ 삼성·한화 몰락
넥센 히어로즈의 선전과 삼성·한화의 하위권 추락도 예상을 빗나간 결과다. 시즌 전 많은 전문가는 주전 선수 대부분이 빠져나간 넥센을 하위권 후보로 내다봤다. 한 방송 해설가는 “넥센보다 순위가 낮은 팀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과감한 발언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9월6일 현재 넥센은 69승 1무 53패, 승률 0.566으로 안정적인 3위를 달리는 중이다. 4위 KIA와는 무려 9게임차. 3위 자리를 일찌감치 확정한 가운데, 2위 NC를 3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다.
사실 넥센은 주력 선수 유출을 일찌감치 예상하고, 2~3년 전부터 치밀하게 대안을 준비해 왔다. FA가 된 주력 선수가 다른 팀을 선택한 뒤에야 허겁지겁 차선책을 찾기 바쁜 몇몇 팀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또한 프런트와 현장이 팀의 장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승리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여기에 중고신인 신재영의 깜짝 활약과 같은 ‘행운’도 따랐다. 후반기에는 외국인 투수가 긴 이닝을 던지는 능력을 갖춘 밴헤켄-맥그레거로 교체되면서 불펜 투수들의 부담도 크게 줄었다. 염경엽 감독은 이미 잔여 시즌과 포스트시즌 운영 전략도 세워둔 상태다. 넥센의 선전은 운이나 우연이 아닌, 철저한 계획과 노력이 만든 결과다.
반면 지난해 1위팀 삼성과 최근 3년간 ‘600억원’을 투자한 한화의 몰락은 충격적이다. 지난해 승률 0.611로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던 삼성은 9월6일 현재 53승 1무 66패로 9위로 추락해 있다.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불법도박’ 사태에 연루된 안지만의 이탈, 구단 운영 주체가 그룹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데 따른 미묘한 변화, 장기간 왕조 구축으로 인한 세대교체 실패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 큰 문제는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삼성 퓨처스팀은 30승 6무 60패로 남부리그 최하위인 6위에 그쳤다. 승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퓨처스리그지만 대체적으로는 젊은 유망주 선수가 많은 팀이 좋은 승률을 내게 마련이다. 삼성구단 한 관계자는 “5년 연속 1위의 후유증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팀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화 역시 9월6일 현재 54승 3무 65패로 8위까지 떨어져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화를 상위권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FA 영입과 특급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막강 불펜과 타선을 구축했다’면서도 ‘김성근 감독이 지난해와 달라진 팀 운영을 보여줘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안타깝게도 김성근 감독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심한 투수 혹사와 이해하기 힘든 전략으로 ‘우승 후보’ 팀을 8위로 만드는 놀라운 기적을 선보이고 있다. 한화가 승리를 거둔 경기를 잘 살펴보면, 김성근 감독이 아무런 작전을 내지 않은 경기가 대부분이다. 끝없는 혹사 여파로 시즌 막판에는 권혁·송창식 등 주력 투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태다. 한화구단 한 관계자는 “그저 더 이상 부상 선수 없이, 후유증 없이 시즌이 끝나길 바랄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도 ‘타고투저’ vs 사라지는 ‘발야구’
극심한 타고투저(打高投低)가 3년 연속 이어졌다. 특급 외국인 투수 영입과 단일구 도입 등으로 타고투저가 한풀 꺾일 것이라던 시즌 전의 예상은 빗나갔다. 올 시즌 리그 투수 평균자책점은 5.23으로 타고투저가 극에 달했던 2014년(5.26)과 비슷하고 2015년(4.89)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역대 KBO리그 시즌 중에서도 두 번째로 평균자책점이 나쁜 시즌이다. 9이닝당 홈런은 1.06개로 역대 다섯 번째로 많고, 타율은 0.290으로 1982년 이후 모든 시즌 중에 가장 높다. 힘과 타격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타자들의 기세를 투수들이 전혀 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타고투저 경향과 별개로 누상(壘上)에서의 도루 시도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활발한 뛰는 야구를 기대한 시즌 전 예상과는 정반대다. 올해 KBO리그 전체 도루 시도율은 7.3%로 최근 3년 가운데 가장 낮다. ‘발야구’라는 유행어가 등장한 2008년 이후로는 2011년 다음으로 낮은 도루 시도율이다. 도루 성공률도 66.8%로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올해 팀 도루가 크게 줄어든 NC의 한 선수는 “워낙 팀 타선이 막강하니까 뛰는 야구보다는 타자들에 맡겨두는 게 우리 팀 전략”이라고 했다. 서울 구단의 주루코치는 “투수와 포수들의 주자 견제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단지 포수의 2루 송구만이 아니라 투수가 주자의 타이밍을 뺏고 누상에 묶어두는 기술도 전체적으로 좋아졌다. 주자들이 함부로 뛰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신재영·주권·임정우 뜨고 vs 송승준·장원삼·안지만 지고
마운드에서는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했다. 시즌 전 예상에서는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던 선수들이 속속 리그 개인 성적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선수는 넥센 신재영. 27세 중고신인 신재영은 2012년 NC 입단 후 4년간 1군에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2014년과 지난해는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소화했다. 그러나 올 시즌 면도날 제구력과 예리한 슬라이더를 무기로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좋은 피칭을 이어가고 있으며, 사실상 넥센의 에이스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kt에서는 고졸 2년 차 투수 주권이 차세대 에이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LG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은 임정우, NC의 고졸 2년 차 좌완 구창모, 롯데의 박세웅과 박진형 등도 예상을 뛰어넘는 강렬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다.
반면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실망스러운 성적만을 남겼다. 롯데 송승준은 시즌 초반부터 끊임없이 부상에 시달리며 10경기 1승 2패, 평균자책 8.71에 그쳤다. 9월초 확장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데도 실패했다. 삼성 장원삼도 13경기 3승 7패, 평균자책 7.27로 데뷔 이후 최악의 부진을 보였고, 선발에서 불펜으로 강등됐다. 삼성 안지만은 시즌 전 도박 파문에 휘말린 뒤 부진한 시즌을 보내다 도박 사이트 개설 의혹에까지 휘말렸다. 삼성은 KBO에 안지만의 계약해지를 요청한 상태다. 야수 중에는 LG 이병규, 두산 홍성흔 등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들이 1군에서 거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은퇴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테임즈·로사리오 역시 vs 린드블럼·로저스 부진
최근 몇 해 동안 KBO리그에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출신 강타자들이 속속 합류했다. 이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름값과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선보였다. 지난해 MVP 테임즈는 올해도 여전히 강력한 방망이를 자랑하고 있다. 47홈런-40도루로 KBO리그 최초 40-40 대기록을 달성한 지난해에 비하면 도루 숫자는 줄어들었다(9월6일 현재 12개). 그러나 홈런은 39개로 올해도 40홈런 돌파가 확실시되며, 0.332의 타율에 0.719의 장타율도 리그 최고 수준이다. 한화가 영입한 윌린 로사리오는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 주전 포수 출신의 홈런 타자. 9월6일 현재 31홈런-115타점으로 ‘역대 한화 최고 외국인타자’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테임즈와 로사리오의 활약에 메이저리그는 물론 일본 프로야구 구단들까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두 선수를 내년에도 KBO에서 보기 위해서는, 일부 팬들의 농담처럼 ‘여권을 빼앗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두산 에반스, LG 히메네스, SK 고메즈 등도 현역 메이저리거 출신다운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이다.
반면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운 성적만을 남긴 외국인 투수들도 있다. 지난해 10경기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화 로저스가 대표적이다. 로저스는 지난해 무리한 등판 후유증으로 스프링캠프 때부터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재활치료 후 뒤늦게 합류했지만 지난해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 못하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으로 일관하다 결국 퇴출됐다. 삼성이 영입한 ‘ML 특급 유망주 출신’ 웹스터도 경기마다 극과 극을 오가는 피칭을 하다 부상으로 리그를 떠났다. 지난해 롯데 에이스였던 린드블럼도 8승 11패, 평균자책 5.62로 부진하다. 패스트볼 구속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대부분의 공이 높게 제구되고 공의 힘이 떨어진 게 원인이다. 모 팀 감독은 “작년에는 타자들의 배트가 밀렸는데, 올해는 회전력이 약하다 보니 타자들의 배트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외 LG 소사, SK 세든 등도 예년만 못한 활약으로 팬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준 투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