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도 안 돌았는데…與 내부서도 “김용현·신원식 인선, 이유와 설명 부족”
“외교와 안보는 분리되지 않아”…美·日 안보 카운터파트는 4년 넘게 자리 지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人事)가 연일 논란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을 지명하면서 극단 성향의 강성 인사 기용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최근엔 돌연 외교·안보라인 교체를 결정하면서 그 배경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신임 국방부 장관에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지명하고, 기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실장에 임명하면서 외교·안보라인에 군 출신들을 앞세웠다. 신 신임 실장의 전임자인 장호진 전 실장은 신설된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장호진 신임 특보는 안보실장 임명 7개월 만에, 신원식 실장은 국방부 장관 임명 10개월 만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번 인사를 두고 다수의 외교·안보 전문가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무엇을 위한 인사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보실장도 軍 출신으로…‘사라진 외교라인’
윤 대통령 임기가 2년을 조금 넘긴 시점에 신원식 실장은 김성한-조태용-장호진 전 실장에 이어 4번째 안보실장이 됐다. 김용현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이종섭-신원식 전 장관에 이어 3번째 국방부 장관이 된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선 임기 동안 안보실장 2명, 국방부 장관 3명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선 임기가 절반도 지나기 전에 이미 문재인 정부 때보다 교체 횟수가 많은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11월 미국 대선이 약 석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외교적 불확실성이 매우 큰 시점이다.
특히 국가안보실장은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한·미·일 등 주요 국가의 협상 카운터파트 역할을 하는 직책이다. 그런 만큼 안보실장의 잦은 교체는 외교·안보 전략에서 결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안보실장의 주요 상대인 미국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일본의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보국장은 4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비서관과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제가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에서 37개월 일했고, 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안보실장이 단 2명이었던 것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체제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밖에서 볼 때 상대가 맨날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와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여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안보실장에 군 출신이 임명된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3성 장군 출신인 신 신임 실장은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차장 등을 지냈다. 안보실장이 신설된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김장수)와 2대(김관진) 안보실장 모두 군 장성 출신이었으나 이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들어 최근까지 군 출신이 아닌 외교 쪽 전문가들이 주로 안보실장을 맡아왔다. 과거 보수진영에서 외교·안보 쪽 요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현재 안보실장의 역할은 외교에 더 방점을 찍는 게 맞다. 과거엔 군사적 관점에서 안보를 많이 다뤘지만, 현재는 외교를 빼놓고 국가 안보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
대통령실에선 2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위기에 처한 중동 등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맞춰 안보 강화에 무게를 둔 인사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내고,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과거 청와대(현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등의 근무 경험이 있는 위 대사는 “외교와 안보는 분리되는 게 아니다. 북한 핵 문제 등은 군사적인 부분은 많지 않고, 오히려 다 외교이면서 안보적 함의가 있는 것”이라며 “게다가 굉장히 강성으로 분류되는 신원식 신임 실장이 국가의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선이 공포감만 조성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에서 외교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군사적인 안보는 국방부 장관이 담당하지만, 안보실장까지 군 출신으로 바꾸면서 정부가 마치 당장 전쟁을 대비하는 듯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외교라인을 배제한다는 시각에 대통령실은 외교 관료 출신인 장호진 특보에게 특수한 외교적 역할을 부여할 것이라고 반론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특보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가 장 특보에 대한 경질성 목적이 있던 게 아니겠느냐고 보기도 한다.
특히 이번 인사를 두고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기 위해 얼마 안 된 기존의 장관과 안보실장까지 연쇄적으로 자리를 이동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대선 캠프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자문했던 김 후보자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쭉 대통령경호처장으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곁을 지켰다. 한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윤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상당히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건 여권 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번 인사가 ‘김용현의, 김용현에 의한, 김용현을 위한 인사’라는 말도 나온다”고 귀띔했다.
“‘충암고 선배’ 김용현, 尹 대통령이 상당히 신뢰”
김 후보자는 육사 38기로 임관해 신 실장과 마찬가지로 3성 장군까지 지내며 수도방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애초부터 국방부 장관 자리를 원했지만, 경호처장으로 가게 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후로도 이종섭·신원식 전 장관 추천 등 군 쪽 일에도 꽤 관심을 갖고 윤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역할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관 추천뿐 아니라 이미 김 후보자가 군 내 곳곳에 미친 영향력이 눈에 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후반기 장성 인사에서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중장과 올해 4월 대북 특수정보 수집 기관인 777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종선 소장이 모두 김 후보자,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다만 대통령실은 “특정인을 앉히기 위해 인사가 있었다는 보도는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야권에선 김 후보자의 경호처장 시절 ‘입틀막’ 경호 논란,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연루 의혹 등으로 청문회를 통해 부적합함을 증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도 “더 신중히 인사를 했어야 했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관계자는 “해병대원 사건 같은 경우 현재 정국에서 상당히 민감한 사안인데 굳이 관련된 인사를 국방부 장관에 앉혀야 했는지 아쉽다”고 했다. 또 다른 여당의 보직자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명분과 설명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