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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대 고급 전기차에 中 저가 배터리 탑재 ‘논란’
당국,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화 등 대책 마련 분주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 차량인 벤츠 EQE에 중국 배터리 업체 파라시스의 NCM(니켈‧코발트‧망간)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1억원을 호가하는 해당 차량에는 당초 중국 내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의 배터리가 실려 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깜깜이 배터리’ 문제가 벤츠만의 사정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주요 전기차 회사들이 차종별 탑재 배터리 브랜드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정부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화 등 전기차 시장 신뢰도 제고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명품’ 벤츠는 왜 ‘저가’ 배터리 썼나

8일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에 화재가 난 벤츠의 중형 전기 세단 EQE에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 ‘파라시스 에너지’(Farasis Energy 孚能科技) 제품이 탑재됐다. NCM 타입이며 정확한 모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당초 해당 차량에는 CATL의 NCM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통해왔다.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 벤츠 전기차 개발 총괄이 과거 2022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직접 “EQE 배터리 셀은 CATL이 공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사고 차량에는 CATL이 아닌 파라시스가 실려 있었으며, EQE 차종의 CATL과 파라시스 배터리 공급 비율은 약 4대 6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파라시스는 출하량 규모로 보면 세계 10위 수준이지만,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신생 중소 업체로 통한다. 국내에선 “처음 들어본다, 잘 모르는 브랜드다”라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2018년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2020년 지분 3% 인수 등 벤츠와의 끈끈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뤄냈지만, 품질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2021년 중국 국영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은 발화 가능성 등 제품 결함을 이유로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 3만여 대를 리콜 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95억원 상당의 비용은 파라시스가 부담했다.

초점은 명품 브랜드를 표방하는 벤츠가 왜 저가 배터리를 탑재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쏠린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네이버 ‘메르세데스-벤츠 EQ 클럽’ 등 온라인 카페에서는 “CATL 아니라 파라시스가 탑재됐다고 하면 안 샀다” “이 정도면 사기다” “배터리 게이트 아니냐” “전액 환불해줘도 화가 안 풀릴 것”이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벤츠가 원가 절감을 이유로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벤츠코리아 측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중국 저장성 후저우의 한 공장에서 전기 자동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를 생산하는 근로자의 모습 ⓒ REUTERS=연합뉴스
중국 저장성 후저우의 한 공장에서 전기 자동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를 생산하는 근로자의 모습 ⓒ REUTERS=연합뉴스

‘깜깜이 배터리’ 문제 심각…당국, 정보 공개 의무화 추진

전기차 업체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떤 배터리를 확보했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영업기밀로 통해서다. 또 배터리도 일종의 부품이기 때문에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다. 와이퍼나 사이드미러 등을 납품하는 회사를 공개하지 않듯, 배터리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대신 배터리 용량과 최대 주행거리는 표시하고 있다.

현재로선 일반 차주 입장에서 내 차에 어떤 배터리가 실렸는지 확인할 길이 요원하다. 언론 보도를 참고하거나 제조사에 직접 문의해야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공임비를 내고 차체를 뜯어 눈으로 직접 배터리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방법을 시도할 소비자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확대해, 배터리마다 식별번호를 부착하고 이력을 관리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당초 배터리 인증제는 배터리 안전 기준에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게 골자로, 사전에 국토부장관의 인증을 받고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가 추진되면,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정부 구상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전기차 안전성 전반에 관한 조사와 대응책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화재 예방형 완속 충전기 보급 사업을 강화하고 주차장 화재 시설 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종합 대책은 오는 12일 예정된 관계부처 긴급회의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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