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과거 권력·현재 권력·미래 권력이 동시에 한국을 움직인다
조국 혁신당 대표 존재감 급상승
손흥민·유재석·BTS도 10위권에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2024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판을 떠받치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힘의 흐름을 면밀히 읽어낼 수 있다면 시대적 요구를 파악할 수 있다. 민심이 가리키는 시대의 희망과 과제도 찾아낼 수 있다. 마침내 신호와 소음을 구분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각 분야를 움직이는 이들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대한민국 권력 지도’에 이름을 새긴 이들은 민심에 가장 맞닿아 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들의 희망과 요구, 과제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시대상을 담아내는 일이다.
국내 언론 사상 단일 주제로는 최장기 기획인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는 1989년 창간 이후 35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 역시 지난해에 이어 전문가 조사와 함께 일반 국민 조사도 함께 실시했다. ‘국민보다 나은 전문가는 없다’는 인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전문가의 의견과 일반 국민의 선택을 비교해 제시하는 게 좀 더 입체적이면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전문가와 일반 국민의 선택은 대동소이했다. 전문가들이 꼽은 2024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톱10’에는 윤석열 대통령(지목률 51.4%),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39.8%),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1.4%),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9.6%), 김건희 여사(7.2%),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5.8%), 손흥민(4.6%),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4.6%), 고 김대중 전 대통령(4.4%), 고 박정희 전 대통령(3.4%)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일반 국민은 ‘톱10’에 윤석열 대통령(60.8%), 이재명 전 대표(49.6%), 이재용 회장(20.0%), 한동훈 대표(15.4%), 김건희 여사(13.8%), 손흥민(12.0%), 유재석(10.2%), 조국 대표(7.8%), BTS(6.2%), 문재인 전 대통령(4.0%) 등을 꼽았다.
전문가와 일반 국민 모두 ‘윤석열-이재명-이재용-한동훈-김건희’를 ‘톱5’로 선정했다. 순서도 동일했다. 대한민국에 정치와 권력이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위다. 전문가들은 ‘톱10’에 노무현·김대중·박정희 세 전직 대통령을 넣어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진영에 여전히 남아있는 고인들의 영향력을 조명한 반면, 일반 국민은 그 대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손흥민은 전문가와 일반 국민 모두에서 스포츠계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일반 국민은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유재석과 BTS도 ‘톱10’에 넣었다.
1 역대 가장 약한 ‘집권 3년 차’ 尹의 영향력
대통령은 현재 권력의 상징이다. 실제 대통령은 헌법상 국가원수이면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군통수권자의 지위도 함께 갖는다. 대통령 중심제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임기 세 해째를 보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그래서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윤 대통령 영향력의 추세와 정도다. 윤 대통령은 전문가로부터 51.4%라는 지목률로 올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다. 다만 지난해에 기록했던 58.8%와는 7%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일반 국민 조사에서는 60.8%를 얻었다. 지난해(69.0%)보다 떨어졌는데, 전문가 조사에 비하면 영향력 감소 폭이 더 크다.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문재인·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2019년과 2015년 각각 전문가로부터 70.6%와 77.2%의 지목률을 받았다. 윤 대통령과는 19.2%포인트, 25.8%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 67.5%(2010년), 노무현 전 대통령 67.4%(2005년), 김대중 전 대통령 81.6%(2000년), 김영삼 전 대통령 86.9%(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76.9%(1990년) 등도 윤 대통령보다 높은 지목률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적게는 16.0%포인트(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 많게는 35.5%포인트(김영삼 전 대통령과 비교)의 차이를 보였다.
윤 대통령이 앞선 대통령들보다 낮은 지목률을 얻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국정 지지율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총선 패배 이후 주요 여론조사에서 20~30% 초반대로 박스권에 갇힌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5년 단임제라는 특성상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지는 대통령제에서 과연 윤 대통령이 내년에는 시간을 거스르며 더 높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 주목받는 미래 권력, 이재명과 한동훈
권력의 중력은 때때로 시간을 거스른다. 지금 대한민국은 현재 권력과 2024년을 살고 있지만 국민은 벌써 미래 권력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 민심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래 권력은 두 사람이다. 바로 제1야당 대표로 다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전 대표와 집권여당을 이끌고 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다. 두 사람은 모두 전문가 평가보다는 일반 국민 평가에서 훨씬 높은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이재명 전 대표는 전문가와 일반 국민에서 각각 39.8%와 49.6%의 지목률을 기록하며 지금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톱2’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25.4%와 34.4%를 기록했는데, 올해 지목률을 크게 끌어올리며 영향력을 키웠다. 윤 대통령의 지목률과 비교해도 10%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직 넘어서야 할 사법 리스크가 여전하지만 이 전 대표는 여전히 높은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고, 또 행사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은 ‘입법 권력의 꼭짓점’으로서, ‘야권의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서 작동한다는 분석이 많다. 그는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위기를 맞았지만, 지난 총선에서 기록적인 압승을 거두면서 ‘입법 권력’과 ‘미래 권력’으로서의 확실한 입지를 확보했다. 여기에 총선 과정을 통해 제1야당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재편했다. 지금 야권에서 이 전 대표를 위협하는 경쟁자는 찾기 어렵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의 계획대로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고 당대표가 돼서 다음 지방선거까지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영향력은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대표는 전문가로부터는 지목률 9.6%, 일반 국민으로부터는 15.4%의 지목률을 얻어 전체 순위에서 모두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전문가 평가에선 지목률 9.0%, 일반 국민으로부터는 17.6%의 지목률을 기록했다. 전문가 평가에서는 소폭 상승했지만, 일반 국민 평가에서는 다소 하락한 모습이다. 한 대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민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더 높은 영향력을 인정받은 점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총선 패배에도 여전히 민심이 여권의 유력한 미래 권력의 재목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영향력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래 권력으로 떠오른 한 대표는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키면서도, 낮은 지지율에 갇혀 있는 윤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하는 딜레마 같은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만약 한 대표가 ‘김건희 리스크’ 같은 윤 대통령의 역린을 정면 겨냥하며,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에서 그랬듯 ‘살아있는 권력’과 맞붙는 방식을 택한다면 정국은 요동칠 수 있다.
3 역설적인 영향력, 김건희와 조국
현재 한국을 움직이는 힘에는 ‘역설적인 영향력’도 존재한다. ‘조용한 내조’를 말했던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역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 인물들이다. 김 여사는 전문가 조사와 일반 국민 조사에서 각각 7.2%와 13.8%를 기록해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톱5’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6.6%와 12.4%를 얻었는데, 집권 3년 차에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이 더 커진 것이다.
특히 김 여사의 존재감은 역설적이다. 대통령에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임기 초에는 대통령 배우자에게도 상당한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권 3년 차에도 대통령 배우자가 이렇게 주목받았던 적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여권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대선 과정부터 김 여사의 존재감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김건희 리스크’라는 이름으로 호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국 대표는 올해 가장 두드러지게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인물이다. 지난해 전문가 조사와 일반국민 조사에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올해는 5.8%와 7.8%의 지목률로 각각 6위와 8위를 차지했다. 지난 총선에서 예상 밖의 돌풍으로 12석을 얻으며 원내 3당을 차지한 효과로 분석된다. 비교섭단체이긴 하지만 원내 3당이 “3년은 너무 길다”며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탄핵을 공식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우리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니만큼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4 ‘부동의 톱3’ 유일한 경제인,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한민국 경제인 중 유일하게 ‘톱10’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재용 회장은 전문가와 일반 국민으로부터 각각 11.4%와 20.0%의 지목률로 모두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13.4%와 23.6%를 얻었다. 올해 역시 전체 3위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지목률이 소폭 하락한 모습이었다.
전문가와 일반 국민 모두로부터 두 자릿수 지목률로 ‘톱3’에 오를 만큼 경제인 중 이 회장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전문가 평가에서는 20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경제인은 이 회장과 고 이건희 전 삼성 선대회장(지목률 1.4%)뿐이다. 일반 국민 평가에서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20위를 차지했지만, 지목률은 1.6%로 이 회장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5 손흥민·BTS와 유재석, 신구 조화
한국의 파워엘리트에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키는 두 상징이 있다. 바로 축구선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가수 BTS다. 손흥민은 전문가 조사와 일반국민 조사에서 4.6%(공동 7위), 12.0%(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조사에서 스포츠계 인물로 ‘톱10’에 이름을 올린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손흥민이다. 일반 국민 조사 기준으로 손흥민의 올해 지목률(12.0%)은 작년 지목률(9.0%)을 웃돈다. ‘성장하는 월드클래스’로서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BTS의 존재감도 주목할 만하다. BTS는 전문가 조사와 일반 국민 조사에서 2.8%(11위), 6.2%(9위)의 지목률을 받았다. 6.4%(7위), 11.6%(7위)의 지난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멤버 일부가 군에 입대해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스타 유재석이 10위권(전문가 조사 12위, 일반 국민 조사 7위) 안팎에 자리하며 신구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상징적이다.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 대표 스타가 여전히 자신임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각 100명씩 전문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2022년부터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 국민 조사를 신설해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7월2일부터 7월19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 국민 조사는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4.4%포인트다. 올해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