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통해 세탁된 ‘검은돈’ 빼돌렸나
검찰이 최근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서 벌어진 횡령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경제범죄와 다른 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3대 펀드 사기’ 중 하나이자 5000억원대 피해를 발생시킨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의 주역들이 수사선상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옵티머스를 통해 세탁된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문제의 회사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옵티머스 사태’ 수사의 연장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부동산 개발업체인 그린홀딩스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그린홀딩스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아무개씨의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와 관련해서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그린홀딩스 본사는 물론 김씨와 그의 측근들 자택까지 포함됐다.
이번 압수수색은 옵티머스 사태 수사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옵티머스 사태의 시작점으로 지목되는 ‘해덕파워웨이 무자본 인수합병(M&A) 사건’의 주역들이 대거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조폭 양은이파 부두목이자 해덕파워웨이 실소유주이던 고(故) 박아무개 옵티머스자산운용 고문과 그의 오른팔 격인 고아무개 전 세보테크 부회장이 그 장본인이다. 이번 수사의 주요 피의자인 김씨 역시 박 고문의 측근 중 하나였다.
시간은 2018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박 고문은 선박용 부품 제조업체인 해덕파워웨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당시 전라남도 최대 조폭인 국제PJ파 부두목 조규석씨와 ‘개미 도살자’로 악명을 떨친 기업사냥꾼 이상필씨, DJ 정부 시절 ‘이용호 게이트’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이용호 전 G&G그룹 회장 등이 인수 자금을 지원했다.
그 직후 해덕파워웨이와 자회사인 세보테크는 사내유보금 370억원 이상을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에 투자했다. 이는 후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돌려막기를 위한 위장 투자로 밝혀졌다. 이처럼 허위로 투자된 자금은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가 지배하는 트러스트올과 셉틸리언 등을 통해 세탁된 후 다시 박 고문에게 돌아왔다.
이후 박 고문은 세탁된 자금의 투자처를 물색했다. 그리고 서울시 서초구의 한 상가 리모델링 분양 시행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박 고문이 부동산 매입 자금으로 80억원을 투자하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으켜 원금을 포함해 100억원을 선지급받고, 사업 종료 후 400억원대로 예상되는 수익 중 100억원을 배당하는 조건이었다. 80억원을 들여 120억원의 차익을 남기는 투자였다.
박 고문은 사업 주체를 그린홀딩스로 정했다. 고 전 부회장이 소유한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였다. 박 고문은 2019년 2월부터 5월까지 49억원의 현금을 그린홀딩스에 대여했다. 또 김재현 대표가 셉틸리언을 통해 보유 중이던 25억원 규모의 필로시스헬스케어(당시 토필드) 전환사채(CB)를 부동산 매수 대금 잔금 지연에 대한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사업 초기 그린홀딩스 지분은 고 전 부회장과 김씨가 차명으로 36.7%와 33.3%를 각각 보유했다. 이들은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을 뿐, 사실상 소유주는 박 고문이었다. 그러나 2019년 5월 돌발변수가 생겼다. 박 고문이 해덕파워웨이 인수 당시 전주(錢主) 역할을 한 조규석씨에게 납치돼 살해된 것이다. 대여금을 제때 상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인 잃은 돈’ 차지하기 위해 혈안
그 직후 ‘주인 잃은 돈’을 차지하기 위한 김씨의 행동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이번 검찰 수사도 바로 이 때문에 이뤄졌다. 우선 김씨는 허위 금전소비대차계약서 등을 이용해 그린홀딩스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2019년 2월 사망한 박 고문의 투자금이 사실은 자신의 대여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린홀딩스에 자금을 대여했다는 내용의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김씨는 금전소비대차계약서상 대여금 변제 명목으로 그린홀딩스로부터 2019년 8월 38억원, 2020년 7월 26억8000만원을 각각 지급받았다. 그러나 이후 박 고문 유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그린홀딩스에 대한 투자금 출처는 박 고문으로 밝혀졌다.
용역비 명목으로 그린홀딩스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김씨는 페이퍼컴퍼니인 에셋코너스톤를 설립한 후 2019년 부동산 매입 중개와 점포 세입자 퇴거 업무 관련 용역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그린홀딩스는 2020년 2월 에셋코너스톤에 용역비 명목으로 총 13억2000만원을 지급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실제 용역 업무가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씨는 2020년 4월 그린홀딩스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가장납입을 한 혐의도 받는다. 당시 김씨는 그린홀딩스가 실시한 1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49.3%까지 끌어올렸다. 그 직후 시행사업을 위해 박 고문이 외부에서 영입한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전업주부이던 부인 전아무개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검찰은 김씨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12억원을 예치하고 잔액·잔고 증명서를 발급받은 직후 해당 자금을 모두 인출한 정황을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김재현 대표가 담보로 제공한 필로시스헬스케어 CB를 횡령한 혐의도 있다. 그는 옵티머스 사태 관련 수사로 김재현 대표가 구속된 직후인 2020년 8월 필로시스헬스케어 CB를 3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셉틸리언은 필로시스헬스케어 CB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김재현 대표의 구속으로 소송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패소했다.
김씨는 필로시스헬스케어 CB 인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 당시는 필로시스헬스케어가 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키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주가가 급등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2020년 9월 주식전환권을 행사해 확보한 필로시스헬스케어 주식을 전량 매도해 186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다만 김씨는 시행사업 수익금은 배당받지 못했다. 그린홀딩스 투자금 출처가 박 고문이라는 민사소송 판결이 나온 이후 그의 유족들이 리모델링이 완료된 건물에 가압류 및 본압류를 걸어놨기 때문이다. 현재 압류된 호실은 공매를 앞둔 상황이다.
‘입막음’ 위해 금품 전달한 정황도
물론 그사이 고 전 부회장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당초 김씨를 상대로 총 8건의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고 전 부회장은 김씨를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과정에서 고소장 및 의견서 등을 통해 ‘그린홀딩스 투자금은 김씨의 대여금이 아닌 자신과 박 고문이 조달한 자금’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고 전 부회장은 2020년 9월 돌연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보유 중이던 그린홀딩스 22만 주 전량을 김씨에게 양도했다. 당시 1주당 가격은 액면가 500원으로, 총 거래가격은 1억1000만원이었다. 400억원대 수익이 예상되는 법인의 지분을 헐값에 넘긴 셈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고 전 부회장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과도한 조건까지 내걸었다.
실제 2020년 9월 두 사람이 체결한 주식매매계약서를 보면, 기존에 제기한 민형사상 소송 취하 외에도 유상증자로 발행된 240만 주에 대해 이의 제기 및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추후 외부에서 불거질 수 있는 법적 분쟁에 협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런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위약벌로 5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런 점으로 미뤄 검찰은 김씨가 횡령한 그린홀딩스 자금 중 상당 부분이 고 전 부회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씨는 예금보험공사에 1500억원의 채무를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그는 차명으로 보유 중인 초고가 주택에 거주하고 에셋코너스톤 명의의 롤스로이스 등 슈퍼카를 타는 등 호화생활을 영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린홀딩스 자금 횡령 의혹이 그의 호화생활과 무관치 않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한편, M&A 업계는 이번 검찰 수사로 고 전 부회장이 구속될지 여부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옵티머스 사태의 주요 피의자 가운데 유일하게 구속을 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고문이 대부분 혐의를 떠안고 사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 결과 고 전 부회장은 2021년 4월 상장사 무자본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세보테크 유보금 30억원을 횡령한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됐다. 그러나 횡령금을 변제한 점이 참작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면서 고 전 부회장은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