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개설 후 하루 만에 구독자 3000명 달성
비난 우려해 댓글창 막아놓고 수익 창출 노려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실형을 살고 전자발찌까지 찼던 가수 고영욱(48)이 유튜버로 복귀해 논란이다. 고씨는 최근 유튜브에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채널 ‘Go!영욱’을 개설하고 8월5일 ‘Fresh’라는 제목의 첫 번째 동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별 내용이 없다. 처음에는 탁자에 올려놓은 화병과 반려견을 보여주다가 자신의 사진과 함께 미발표 솔로곡만 들려준다. 쇼츠 영상도 4개를 공개했는데 모두 고씨가 키우는 반려견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고씨는 구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영상의 댓글창은 모두 닫았다. 자신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미리 막은 듯하다. 그는 또 논란을 예상하고 X(옛 트위터)에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집에서 넋두리하며 형편없이 늙고 있는 거 같아,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두서없이 유튜브를 시작해 본다’며 채널 개설 이유를 밝혔다.
고씨의 유튜브 채널 개설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해당 기사에는 성범죄자가 유튜버로 복귀하는 것을 비난하는 댓글로 넘쳐났다. 네티즌들은 ‘뻔뻔하다’ ‘범죄자들의 복귀 채널 유튜브’ ‘호기심에서라도 조회 수 올려주지 말자’ 등으로 고씨의 유튜버 활동을 비난하고 나섰다.
피해자는 2차·3차 가해로 고통받아
그러나 이런 비난과는 별개로 고씨의 채널은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채널 개설 하루 만에 구독자가 3000명을 넘었고, 8월14일 오전 11시 현재 5115명이다. 고씨가 올린 영상도 조회 수 29만 회를 넘었다. 성범죄자인 유명 연예인이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길이 열린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제2·제3의 가해가 될 수 있다.
고영욱은 1994년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신정환과 함께 그룹 룰라로 데뷔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룰라 멤버로 큰 인기를 얻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성년자 성범죄자로 전락한다. 2010년 12월 고씨는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안아무개양(14)에게 휴대전화번호를 묻는다. 안양이 알려주자 이름 대신 ‘삼거리’라고 저장했다. 고씨는 얼마 후 안양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제안한다.
유명 연예인에게 연락이 오자 안양은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호기심에 수락한다. 고영욱은 “보는 눈이 많으니 우리 집에 가자”며 안양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술을 먹이고는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고영욱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2년 3월 고씨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모델 지망생 김아무개양(19)과 함께 케이블TV에 출연한다. 그는 김양을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외모라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통해 연락처를 확보했다. 같은 해 5월 고씨는 김양에게 연락해 “연예인 할 생각 없느냐. 기획사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며 만남을 제안한다. 2호선 합정역에서 김양을 만난 고씨는 “내가 연예인이라 남들이 알아보면 곤란하니 조용한 곳으로 가자”며 승용차에 태워 자신의 오피스텔로 이동했다. 그는 김양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유한 후 성폭행한다.
고씨는 경찰에서 성관계 자체는 인정했지만,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며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2년 전에 있었던 안양의 성폭행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고영욱은 구속되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이게 문제였다.
고씨는 그해 12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명지대 근처를 지나가다 여중생인 김아무개양(14)을 만난다. 그는 김양에게 자신을 음악하는 사람, 프로듀서라고 속이고 차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한다. 김양이 거절하자 거듭 요청해 자신의 승용차인 BMW 보조석에 앉혔다. 고씨는 차 안에서 김양을 강제 성추행했다.
미성년자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
성범죄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던 중에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김양은 아버지를 통해 경찰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이 밖에도 A씨는 미성년자 시절인 2010년 “고씨가 연예인이 되게 해주겠다”며 성폭행했다고 추가 고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B씨는 “중학생 때부터 고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씨가 뻔뻔하게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보고 경찰에 고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영욱은 재판에 넘겨지기 전에 이들과 합의하면서 추가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강간이 친고죄였기 때문에 합의하면 고소가 취하됐고,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성폭력에 대한 친고죄는 2013년 6월19일부터 폐지되면서 이때부터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은 고영욱이 증거인멸 및 도주를 할 우려가 있다며 사전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구속된다. 이후 고씨는 모든 지상파, 종편, 케이블 방송에서 영구적으로 출연 정지된 연예인 명단에 올랐다. 당시 출연 중이던 엠넷 《음악의 신》에서도 강제 하차됐다. 미성년자 간음 및 성추행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 기소된 고씨는 자신의 혐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하고, 정보공개 7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고씨는 형량에 불만을 품어 항소했고, 적극적으로 피해자들과 합의에 나섰다. 1차 피해자인 안양은 고씨와 합의했고, 2차 피해자인 김양은 처벌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고씨는 기존의 태도를 바꿔 항소심에서는 성추행 혐의만 인정하고 반성문을 썼다. 2심 재판부는 안양이 고씨와 합의하고, 김양은 처벌불원서를 제출함에 따라 3차 피해자인 또 다른 김양의 성추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로 감형했다.
정보공개도 7년에서 5년으로 2년 줄었고, 전자발찌 부착 또한 10년에서 3년으로 7년이나 줄었다. 고씨는 이것도 형량이 많다며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심 형량을 확정했다. 이로써 고씨는 ‘연예인 전자발찌 1호’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고씨는 경기도 안양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15년 7월10일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동시에 법원의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에 따라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당시 고씨는 교도소 앞에 있던 취재진을 향해 “연예인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큰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며 “이제부터 제가 감내해야 할 것들을 감내하면서 성실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강조했다. 고씨는 전자발찌를 떼기 전까지는 조용히 지냈다. 2018년 7월9일 전자발찌 착용이 해제되자 2020년 11월12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고, 트위터 활동도 재개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강력범죄자 이용 불가 규정에 따라 다음 날 인스타그램 계정이 비활성화됐다. 트위터 계정은 살아있지만 비난이 쏟아지면서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다 올해부터는 적극적인 대외활동에 나섰다. 지난 4월 X(옛 트위터)에 자신이 조깅하는 사진과 함께 ‘재미도 없고 진실성 없는 누군가가 69억 빚을 갚았다고 했을 때 난 왜 이러고 사나 자못 무기력해지기도 했다’며 ‘간사한 주변 사람들은 거의 떠났다’고 적었다.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룰라 동료였던 이상민이 빚을 다 갚았다고 한 것을 저격한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고영욱은 여론의 추이를 보며 대외활동에 나설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본격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범죄자 연예인들도 유튜브 나설 가능성
고영욱은 유튜브에서 채널을 강제로 삭제하지 않는 한 계속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끊임없이 SNS 활동을 모색해 왔고, 수익 창구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채널 개설 이후 비난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고, “전과가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조용히 지내야 되는 게 상책인지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유튜브 측도 고씨의 채널을 강제 삭제하는 등의 조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이 계정을 개설한 지 하루 만에 폐쇄시킨 것과 달리 유튜브는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용약관에 성범죄자의 채널 개설을 불허하는 규정도 없다. 자체 규정만 어기지 않으면 유튜브 활동을 막지 않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고영욱이 유튜브 생태계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을 경우 버닝썬 게이트나 성범죄로 실형을 받은 그룹 빅뱅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 가수 정준영·최종훈, 배우 강지환, 개그맨 박대승 등도 연이어 채널을 개설하고 활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도 모든 방송국 출연 정지 명단에 올라있다.
이들 중 술에 취한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5년을 복역한 정준영은 지난 3월 출소 이후 끊임없이 음악 활동 복귀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그는 대중의 부정적인 반응을 의식해 주변에 가수가 아닌 음악 프로듀서로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력 사건의 주범들이 출소 후 유튜버로 변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해외에서는 범죄자들이 유튜브에 진출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유명 마약 카르텔 두목의 오른팔로 활동하면서 수백 명을 살해한 사건에 관여한 조직원이 가석방되자 유튜버로 변신해 구독자가 120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젊은이들이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경고하려고 채널을 개설했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영상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폭력을 합리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의 손에 살해된 희생자 유족 등은 범죄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며 크게 분노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