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위한 필수 절차 ‘압수수색’…강제수사 신호탄이지만 검사도, 판사도 고민 큰 과정
[편집자 주] ‘공수처 1호 검사’ 출신 김숙정 법무법인 LKB 파트너 변호사가 검찰 업무의 속사정에 대해 시사저널에 격주로 연재합니다. 수사 기법과 함께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검사의 내심 등을 그때그때 이슈가 된 형사사건과 연관 지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공수처와 국회, 로펌 등을 두루 거친 김 변호사의 경험이 독자 여러분들에게 생생함을 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가 신고하거나 고소, 고발하는 모든 사건의 혐의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매일 쏟아지는 고소장, 고발장, 진정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양의 사건들이 수사기관에 접수되고 있습니다. 사건을 배당받은 사람은, 신속하게 검토하여 바로 처리할 것인지, 사람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볼 것인지, 자료를 제출받을 것인지, 강제수사에 들어갈 것인지 등등 수사 방향을 정하고 움직여야만 수많은 사건들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제수사란 무엇일까요. 고소장이 접수되었으니 고소의 상대방(피고소인)에게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자신의 떳떳함을 밝히기 위해 수사기관이 요청하는 자료를 모두 제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절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 어떠한 자료도 제출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조사를 위해 소환했는데 출석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소장에 적힌 범죄의 혐의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수사를 해야 할 실익이 있는 사건이라면, 수사기관은 이런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사건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검사...수사 실익 있을 때 영장 청구
강제로 사람을 수사기관에 나오게 하는 힘, 강제로 다른 사람의 집이나 사무실을 뒤질 수 있는 힘, 그렇게 뒤진 물건 중 증거로 사용하겠다며 강제로 가지고 올 수 있는 힘. 이러한 권한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부여한 ‘영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영장에 따라 강제력을 발동하여 수사를 하는 것이 바로 강제수사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검사가 수사관에게 호기롭게 외칩니다. “영장 청구서 작성해 오세요. A기업, B기업, C기업 다 털어보죠.” 그리고 바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A기업, B기업, C기업으로 수사관들이 파란 박스를 들고 뛰어가 종이 한 장을 보여주며 비장하게 말합니다. “영장을 집행합니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은 다릅니다. 실제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수사관이 작성해 온 영장 청구서 한 장에 검사가 도장을 찍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갈 수는 없습니다. 영장을 발부하는 주체는 판사이기 때문에, 검사는 강제수사가 필요한 이유와 근거를 수사관들과 함께 정리하며 밤을 새워 수사기록을 만듭니다.
강제수사란 누군가 숨기고 싶은 내밀한 영역에 침범하여 파헤치는 일입니다. 따라서 판사는 영장 발부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결단을 내린 만큼, 판사를 납득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렇게 발부된 영장에는 ‘반드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겠다’는 수사기관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어렵게 판사를 설득해 받아낸 영장일수록, 온 국민의 관심이 쏟아질수록, 피해자의 피해가 중대할수록, 범죄 혐의가 있는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사람이 거짓말로 일관할수록, 아무런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혹은 거짓으로 의심되는 자료를 제출할수록,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수사기관의 의지는 더욱 강해집니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압수수색을 하다보면 때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관련자들 중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압수수색 과정에서 찾아낸 작은 단서로 진실이 판명되기도 하고, 유죄와 무죄를 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압수수색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절차입니다.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해 증거수집을 하는 수사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것 자체가, 진실 발견을 향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김숙정 변호사 약력
김숙정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검사 출신이다. 2012년 제1회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처음 검복을 입었다. 이후 국회 보좌관을 거쳐 2021년 공수처 출범 당시 몸을 담았다. 2022년 공수처장 1호 표창을 받았고 2023년 공수처 1호 우수검사로 선정됐다. 2023년 말 공수처를 떠나 법무법인 LKB에서 수사대응팀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