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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브레이크처럼 뇌 활동 억제…조기 치매 위험 2~3배 증가

67세 남성이 보호자와 함께 내원했다. 보호자 말로는 최근 기억력이 많이 감퇴하고 분노가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오래된 수면 장애로 자기 전에 매일 소주 반 병에서 한 병씩 마시는 습관이 20년 전부터 있었다. 과도한 음주가 미치는 건강 악영향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간질환·위장질환·췌장질환은 물론이고 뇌의 인지 기능에도 음주는 영향을 미친다. 음주는 뇌의 해마와 전두엽 등의 구조와 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중앙처리장치(CPU)가 손상되는 것처럼 정보 처리와 저장, 분석 등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경우 기억력, 집중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저하로 이어진다. 

음주가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알코올이 뇌의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미치는 영향과 연관된다. 알코올은 특정 수용체(GABA)를 활성화해 뇌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이는 자동차 브레이크를 계속 밟고 있는 것과 같다. 낮은 농도의 알코올은 항불안 효과를 나타내지만, 높은 농도에서는 다른 수용체를 통해 알코올 중독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알코올은 특정 수용체(NMDA)를 차단해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을 방해한다. 마치 주행 중 필요한 도로 표지판이 가려진 것과 같다. 알코올은 뇌의 아세틸콜린(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는 물질) 수준도 감소시키는데, 이는 자동차 엔진오일 부족으로 엔진 성능이 저하되는 것과 같다. 알코올은 90%가 간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거쳐 아세트산으로 대사되어 배설된다. 이 과정에서 속도 조절 효소인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H)의 대사 속도는 제한돼, 빠른 속도로 알코올을 과량 섭취하면 중간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축적된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뇌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체조직에 세포독성이 있는 물질이다. 또 알코올은 뇌혈관을 손상시키고 뇌 조직의 만성적인 저산소 상태를 유발할 수 있어 산화 스트레스와 신경 염증을 촉진해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하는 병리 기전을 가속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시사저널 사진 자료
ⓒ시사저널 사진 자료

동양인은 음주로 뇌 손상 위험 더 커

역학 연구를 살펴보면, 알코올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대조군에 비해 인지기능·집행기능·기억력·주의력 등이 유의미하게 저하된 것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코호트 연구에서는 하루 알코올 섭취량이 30g(17도 소주 기준 4잔) 이상인 사람이 비음주자보다 23년 후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3배 이상 높았고, 혈관성 치매 발병 위험도 2배 이상 높았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발표된 프랑스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알코올 장애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의 조기(65세 이전) 발병 위험이 약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 분해효소의 유전적 다형성에 따라 사람마다 알코올로 인한 인지기능 저하 위험도가 다를 수도 있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 활성도가 낮으면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가 지연되어 뇌에 더 많은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효소의 활성도가 낮은 동양인은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뇌 손상 위험이 더 커진다는 보고가 있다. 

날씨가 다시 조금씩 따듯해지면서 회식과 술자리가 늘어나는 추세다. 과도한 음주는 뇌의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쳐 인지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알코올이 뇌의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미치는 영향, 뇌의 만성적 손상, 영양결핍, 간 기능 저하,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기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개인의 질병력이나 유전적 특성 등을 고려해 음주량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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