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부터 《너와 나》까지…다양한 방식으로 ‘그날’ 상기
4월16일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생존자와 유족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날 이후 누군가는 국가가 나의 안위를 지켜주리란 기대를 버렸고, 누군가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위정자들에게 마음이 꺾였으며, 누군가는 부채감에 짓눌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한다. “지겨우니, 이제 그만해라.” 그러나 슬픔은 지겹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슬픔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진실에 응답하기 위해 영화 창작자들은 10년간 이 거대한 비극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그 기록을 돌아보려 한다.
세월호 다큐는 정치적인가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에서 볼 수 있듯 어떤 사회적 비극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창작물로 소환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달랐다. 세월호 침몰과 구조 과정의 문제 등 진상 규명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니만큼,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작업에 빠르게 뛰어들었다. 참사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이 그 시작이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이빙벨》은 세월호 희생자 수습 과정에서 실효성 논란을 빚었던 장비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싼 진실을 다뤘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뜨겁게 담겼다.
첨예한 사회 현안을 빠르게 기록한 용감한 시도와는 별개로 작품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던 게 사실.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가 논의됐어야 할 영화는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초청과 관련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며 작품 외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부산시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을 반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압 논란에 휩싸인 것. “영화제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후 예산 삭감 등의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이듬해 세월호 관련 두 번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2015)가 개봉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다. 유가족들의 분투를 그렸다. 미국에서 자란 재미교포 김동빈 감독이 메가폰은 잡은 《업사이드 다운》(2016)은 외부인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연출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조명했다. 미국에서 참사 소식을 접한 그는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한국에 들어와 세월호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아버지 4인과 전문가 16인의 인터뷰를 영상에 빼곡히 담았다. ‘뒤집어지다’라는 뜻의 제목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배가 뒤집혀있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상식이 뒤집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018년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봉준호의 《기생충》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역시 ‘국가의 부재’에 대한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 다큐도 있었다. 세월호 항로를 기록한 AIS(선박자동식별장치) 항적도를 중심으로 세월호 침몰 원인에 접근했던 김지영 감독의 《그날, 바다》(2018)와 이 영화의 스핀오프인 《유령선》(2020)이다. 방송인 김어준이 제작한 영화이니만큼 그 파급력이 컸는데, 동시에 잡음도 많았다. 그 연장선에서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김어준 총수에 대해 “상상하고 추론하고 음모론을 펼치고, 때로는 영화를 만든다”고 공개 비판한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시간과 함께 깊어진 세월호 다큐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다큐가 담아내는 대상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봤던 ‘보통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운 《당신의 사월》(2021), 세월호 사건 당시 두 달 이상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간 《로그북》(2021)이 대표적이다. 이소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장기자랑》(2023)은 방식 면에서 한층 깊어진 면모를 보여줬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로 꾸려진 극단 ‘노란리본’이 창작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 영화는 마냥 슬프지 않다. 엄마들은 무대 위에서 욕망하고 춤추고 웃고 연대한다.
세월호와 천안함 생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연구한 서울대 김승섭 교수는 저서 《미래의 피해자들이 이겼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타인의 고통에 엄격한 사회에서 유가족은 착하고 비참한 피해자의 전형을 갖춰야 했습니다.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싸우면 싸운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다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실은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인데도 말이죠.” 《장기자랑》은 이러한 피해자다움, 유가족다움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유족들을 그리며 호평받았다.
《장기자랑》이 세월호 유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을 벗겨준 작품이라면, 4월4일 찾아오는 《바람의 세월》은 유족이 직접 카메라를 든 작품이다. 단원고 2학년 딸을 잃은 문종택씨가 3654일간 찍은 영상이 무려 5000여 개.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기 위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모은 기록들이 《바람의 세월》로 만들어졌다. 제목에서부터 야속한 세월의 바람이 부는 느낌이 든다.
조심스러웠던 상업영화계의 행보
다큐멘터리가 세월호를 정면에서 다루는 동안, 극영화들은 상황을 조금 더 예의주시했다. 특히 상업영화계는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행보가 조심스러웠다. 세월호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지는 분위기 역시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2014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을 준비했던 극영화 《세월호》는 재난을 눈요기로 삼는 듯한 완성도 떨어지는 포스터와 홍보 영상으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유가족 동의도 얻지 않고 기획에 들어갔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 부분. 제주도로 향하다 발생한 참사를 소재로 하면서 ‘제주도 숙박권’을 펀딩 리워드로 제시한 발상 또한 역풍을 부르며 제작이 좌초됐다.
여러 우려 속에서 최초로 당도한 세월호 극영화는 《눈꺼풀》(2018)이다. 제주 4·3을 그린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로 한국 영화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의 작품이다. 《눈꺼풀》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으나, 개봉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개봉이 늦어진 이유를 두고 뒤숭숭한 소문이 돌았다. 4·3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오멸 감독이 박근혜 정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이 정권이 바뀐 후에야 밝혀졌다. 《눈꺼풀》 개봉 4개월 후, 옴니버스 영화 《봄이가도》가 관객을 만났다. 그해 봄 고등학생 딸을 잃은 엄마, 구조작업에 투입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 아내를 떠나보낸 남자의 일상이 세 개의 단편으로 흘렀다. 에피소드마다 시 구절이 삽입된 것이 특이점. 한용운의 ‘나는 잊고저’,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정호승의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이 인물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먹먹함을 안겼다.
그리고 세월호 5주기를 맞은 2017년, 두 편의 상업영화가 한 주 차이로 개봉했다. 고(故) 이선균 주연의 《악질경찰》과 설경구, 전도연의 《생일》이 그 주인공이다. 이정범 감독이 연출한 《악질경찰》은 자신의 비리를 덮으려 또 다른 비리를 저지르던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세월호 트라우마를 안은 소녀를 만난 후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 첨예한 소재를 다룬 만큼 영화는 완성본을 언론에 공개하는 날까지 세월호 소재임을 숨겼다. 영화는 세월호라는 비극을 가져오면서 기존에 본 적 없는 질감의 범죄물 느낌을 자아냈다. 아쉬운 건, 이 영화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장르적 쾌감과 세월호 소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날 선 채 부딪쳤다는 것이다. 민감한 소재를 도입한 납득시킬 만한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면서 《악질경찰》은 방법론에서 긴 물음표를 남겼다.
《생일》은 《악질경찰》이 실패한 부분에서 성공한다.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독였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설정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애도로 발화됐다. 그리고 2023년 전에 본 적 없는 애도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그린 영화가 나온다. 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린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다. 두 여고생이 수학여행 전날 겪는 하루의 이야기를 그린 《너와 나》는 소녀들이 사는 도시가 ‘안산’이고 수학여행 목적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이 포개지면서 관객을 과거의 그 시간 속으로 접속시켰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염려하며 말했다. “사랑해”라고. 비극적인 실화를 영화화할 때, 창작가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보여준 수작이었다.
세월호 징후를 담은 영화들
위에 언급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세월호 징후를 담은 영화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익사 사고로 죽은 소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살아남은 아이》(2018),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몰린 소녀를 통해 애도의 방식에 대해 질문한 《죄 많은 소녀》(2018)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재난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 속에서 세월호 흔적을 찾는 이도 늘어났다. 터널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김성훈 감독의 《터널》(2016), 한재림 감독의 항공 재난영화 《비상선언》(2022) 등이 나왔을 때 많은 이가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호출했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이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DNA처럼 깊게 뿌리 박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왜 10년 동안 꾸준히 세월호 참사를 담아왔을까. 그리고 영화와 영화 창작자들은 비극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배우 설경구가 영화 《생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시를 쓰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가수는) 노래를 만들어 추모했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왜 이런 영화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