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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증권사 모두 대규모 손실 현실화…레버리지 구조로 수익률 높였지만 금리 인상에 ‘치명타’

이지스자산운용이 2018년 10월 공모펀드로 출시한 ‘이지스 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는 최근 손실률이 80%를 넘어섰다. 이 펀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하고 있다. 펀드 만기가 다가오자 최근 수익자 총회를 통해 만기를 2년 연장했지만, 트리아논 빌딩 매입 당시 빌렸던 대출 만기가 곧 돌아오기에 미래가 불투명하다. 대주단이 대출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는다면 펀드는 청산에 들어가야 한다. 대출 만기 연장 대신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지연 이자를 내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는데 어떻게든 손실은 불가피해 보인다.
주요 증권사 CEO들이 10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금융투자업계 라운드테이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증권사 CEO들이 10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금융투자업계 라운드테이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색 코뿔소’ 된 해외 부동산펀드

2016년 9월 미래에셋이 출시한 미국 부동산 공모펀드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호’에 가입했던 투자자들도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 펀드가 소유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스테이트팜 오피스빌딩 4개 동이 헐값에 매각되면서 펀드 투자자들은 절반 이상의 원금 손실을 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펀드는 출시 당시 미국 부동산 실물에 투자하는 국내 최초 공모펀드로 화제를 모았다. 매입한 빌딩은 북미 손해보험사 스테이트팜의 본사로 20년 장기 임차계약이 체결돼 있었다. 펀드 판매 당시 연 4~6% 임대수익을 7년 동안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고, 판매 시작 열흘 안에 목표금액 3000억원이 모두 완판됐다. 펀드 만기는 내년 3월이었다. 하지만 올해 현지에서 자산 매각에 난항을 겪다가 최근 5억8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6년 전 매입가는 8억5000만 달러였다. 결국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렇듯 국내 자본시장에서 해외 부동산펀드 부실이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우려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눈앞의 수익에 눈이 멀어 이 같은 경고를 애써 무시해 왔다. 그런 면에서 해외 부동산 부실화는 국내 자본시장에 ‘회색 코뿔소’였던 셈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이후 개인을 대상으로 판매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규모는 1조478억원에 달한다. 법인을 포함하면 총 1조2757억원이다. 이 중 53%인 6755억원 정도가 올해와 내년을 만기로 판매됐다. 해외 부동산펀드뿐만 아니라 해외 부동산리츠 역시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아마존 노르망디 물류센터, 프랑스 크리스탈 파크 등에 투자하는 마스턴프리미어리츠와 미국 페덱스 물류센터에 투자하는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등은 주가가 공모가(5000원) 대비 반 토막이 난 상태다. 해외 부동산 자산의 시장가치는 고점 대비 20~30%가량 떨어졌지만, 해외 부동산펀드나 리츠는 최소 50%에서 심지어 전액에 가까운 손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독일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의 경우 빌딩 매입가는 6억7500만 유로였지만 올해 8월 감정평가액은 4억5300만 유로다. 건물 가격은 33% 떨어졌는데 펀드 손실률은 80%가 넘는다. 이유는 부동산펀드들이 대출 등을 통해 기대 수익률을 극도로 높이는 레버리지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동산펀드나 리츠들은 이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지 대출과 선순위 투자자, 후순위 투자자 등으로 나눠 투자금을 모집했고, 자산을 인수했다.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의 경우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자들로부터 총 3700억원을 모집했고, 현지 금융기관으로부터 약 5000억원을 대출받아 트리아논 빌딩을 매입했다. 이 같은 레버리지 구조를 통해 해외 부동산펀드는 2017~19년 금리가 1%대였던 상황에서 5~6%대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 같은 레버리지 구조는 금리 상승에 취약하다. 금리가 상승하면 대출이자가 늘어나면서 임대료 수입을 갉아먹고 자산 가격도 하락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이자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면 금리가 다시 낮아질 때까지 무한정 버틸 수 있다. 하지만 펀드는 만기가 되면 자산을 매각하고 청산해야 한다. 결국 부동산펀드는 만기 시점의 금리 수준에 따라 최종 수익률이 확정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판매 당시 금리보다 만기 시점의 금리가 더 낮다면 수익률이 치솟겠지만 반대라면 손실을 볼 수 있다.  

금리 인상에 취약한 레버리지 구조

문제는 국내에서 판매된 대부분의 해외 부동산펀드는 미국이나 유럽의 현지 금리가 0~1%대 저금리 시절에 출시됐다는 점이다. 최근 고금리 시대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실상 해외 부동산펀드의 원금 회수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레버리지 구조의 부동산펀드가 손실 상태에서 만기를 맞아 청산하더라도 선순위 투자자들은 후순위 투자자 대비 우선권이 있기에 손실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후순위 투자자들은 전액 혹은 상당 부분 손실이 불가피하다. 선순위 투자자는 은행이나 기관들이 대부분이고 후순위 투자에는 증권사가 많다. 한국은행도 지난 9월 금융안정상황보고서를 통해 국내 증권사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중 일부가 기한이익상실, 이자·배당 중단 등 건전성 관련 특이사항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의 자본 대비 후순위·지분투자 비율은 8.8%로 보험사(5.5%)와 여타 업권(0.8~2.9%) 비율을 상회했다. 상반기 말 기준 건전성 요주의 이하 비율 역시 증권사가 23.6%로 가장 높았다. 국내 증권사들은 해외 부동산 관련 손실분을 충당금으로 설정하면서 실적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올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미래에셋증권은 미국 댈러스 스테이트팜 관련 600억원, 프랑스 마중가타워 관련 480억원 등의 충당금을 설정했다. 메리츠증권 역시 3분기 유럽 오피스빌딩에 대한 감정평가에서 감액된 520억원가량을 실적에 반영했다. 한국투자증권도 해외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 3분기에 400억원가량의 충당금을 설정했다. 김예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증권사 투자은행(IB)부문 수익성과 자산 건전성은 여전히 부동산금융 시장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면서 “대형 증권사의 경우 해외 부동산 투자에 따른 손실 부담이 손익과 재무구조에 앞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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